국립중앙박물관 (백제, 가야, 신라, 발해)
토우는 사람, 동물, 일상에서 보여지는 물건을 본떠 만든 작은 흙인형이다. 주로 굽다리접시의 뚜껑이나, 목항아리의 목 부분에 붙어있는
것으로 대략 5cm 내외의 크기로 장식성은 물론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신라인들의 정신세계를 표현해주고 있다.
때로는 과감하고 솔직하게, 때로는 익살스럽고 낙천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토우의 형상들은 당시 신라인들의 일상적인 생활 모습이나 그들의
믿음과 바람이 담겨져 있다. 또한 신라사람들의 생김새나 옷차림, 그들이 먹고 사냥하고 길렀던 다양한 동물들을 엿볼 수 있다.
간단한 손동작만으로 만들어진듯한 토우는 신라가 강력한 국가로 성장하는 시기에 집중적으로 만들어졌다. 주라의 주묘제인 돌무지덧널
무덤이 아닌 작은 돌덧널무덤에서 대부분 출토 되었다.
남녀가 사랑을 나누는 모습, 남녀 성기, 코와 귀가 과장되게 표현된 토우의 모습에서 다산, 풍요, 재생을 바랬던 신라인들의 소박한 마음을
헤아려 볼 수 있다. 또한 뱀. 개구리. 거북이.물고기, 새, 말, 용, 개, 소, 토끼, 원숭이.물개등 다양한 동물은 단순히 신라인들과 함께 했던
것으로써의 의미 뿐만 아니라 각 동물들이 가지고 있는 상징적 의미(재생, 풍요, 부활. 다산, 영매)가 담겨져 있다.
신라실에 전시된 토우는 대부분 경주 황남동 돌덧널무덤에서 출토된 것이며 작은 토우의 기억들을 끄집어내어 연결한다면 천오백년전 신라인의 일상적인 모습, 신라의 전반적인 모습을 되살리는 다양한 학문분야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할 것이다.
사랑... 탄생...Love.. Birth..
남겨간의 사랑을 나누는 모습이 과감하게 표현된 토우로 남녀가 온몸을 맞대고 누워있거나 여자는 누워있고 남자는 앉아있는 모습도 있다.
출산중인 토우는 아직 아이를 낳기 전이라 배가 불러 있으며. 아이를 낳는 고통으로 눈과 입이 커다랗게 표현된 것과 얼굴 표현이 생략된
것이 있다. 이러한 남녀의 결합이나 남자의 성기나 여자 가슴의 과장된 표현, 그리고 출산은 다산과 죽은 이에 대한 재생을 기원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즐거움
죽음
말탄사람 토기 국보 91호 신라5~6세기
배모양 토기 경주 금령총 출토 신라5세기
굽다리 위에 배를 붙인 것으로 배의 내부에 노를 젖는사람의 모습이 표현되어있다.
배는 말과 함께 고대의 중요한 운송수단으로 죽은이를 저 세상에 배를 태워 보낸다는 의미로 만든 토기로 생각된다.
배에 앉아 있는 사람은 악기를 연주하듯 편안한 모습이다.
그릇 청동 삼국(신라)시대 6세기
국자 청동 삼국(신라)시대 경북 경주 식리층 5세기
굽다리 접시 삼국시대 신라5세기 경북 경주
토용 남북국시대(통일신라) 8세기 경북 경주 용강동 무덤 출토
십이지상(토기) 곱돌 남북국시대(통일신라) 8세기 경북 경주 김유신 무덤
뼈단지 남북국시대(통일신라) 경북 경주
연꽃무양 꾸미개 금동
건물의 난간을 꾸민 것으로 세련되며 화려하다. 삼국사기에 보이는 임해전의 수준 높은 건축미를 느낄 수 있다.
바리 청동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9~10세기 전남 광양 마로산성 출토
뼈단지
그릇받침 삼국시대(가야)4~5세기 부산 복천동 무덤
발 해
발해는 대조영이 고무려 유민들을 모아 만주 동모산 일대에 세운 나라이다. 전성기의 발해는 대동강 이북의 한반도 북부지역
중국의 라오닝성, 지란성, 헤이룽장성과 러시아의 연해주 일대에 이르는 넓은 영토를 차지하였다. 중국에서 바다 동쪽의 융성한
나라로 칭송할 정도로 수준 높은 문화를 이루었으며 전진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각종 제도를 정비하였다.
발해는 넓은 영토를 효과적으로 다스리기 위하여 5정을 두었고 여러차례 수도를 옮겼다. 도성인 상경, 중경, 동경에서는 잘
지어진 궁전 건축물과 화려하게 장식된 기와, 벽돌, 용머리, 토기, 각종 불상등이 출토되어 발해 사람들의 높은 문화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발해는 당나라와 신라는 물론 일본과도 활발하게 교류하면서 발전하였다. 발해는 멸망한 후에도 유민들중
일부가 고려로 들어와 우리 민족사에서 큰 획을 이어 갔다.
글씨가 있는 불비상 사암 남북국시대(발해) 834년 일본 오하라미술관 소장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가르침을 듣는 승려와 보살이 새겨져 있다. 위에는 용으로 보이는 동물 2마리가, 아래에는 글씨와 인왕상이 각각
새겨져 있다. 글씨는 함화 4년(834) 발해 허왕부의 관리였던 조문휴의 어머니가 모든 불제자들을 위해 만들었다는 내용이다. 이를 통해
발해에서 함화(咸和)라는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였으며 허왕이 관할하던 관청이 있었고 그 허왕 위에 발해 황제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짐승얼굴기와 남북국시대(발해) 8~9세기 헤이룽장성 닝안시 상경성 일본도쿄대 소장
금방이라도 튀어나올듯한 부리부리한 눈, 크게 벌린 입에 날카롭게 튀어나온 송곳니와 길게 내민 혀, 벌룸거리는 코 등 사납고 험상궂은 짐승
얼굴을 형상화하였다. 여기에 짙푸른 녹색 유약까지 입혀져 더욱 기괴한 인상을 주고 있다.
방울 철 남북국시대(발해) 8~9세기 헤이룽장성 닝안시 상경성 일본도쿄대 소장
말탄 인물상 청동 남북국시대(발해) 8~9세기 헤이룽장성 닝안시 상경성 도쿄대소장
말을 타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간결하게 표현하였다. 말 등에는 구멍이 뚫여있어 끈을 꿰어 매달았다.
발해의 용머리
건물 기단에 끼워 넣어 장식하였던 것으로 벽면에 튼튼하게 끼워질 수 있도록 뒷부분을 쐐기 모양으로 길게 깍아내고 고정하기 위한 홈을
팠다. 상경성을 비롯한 발해의 도성에서 몇 개가 출토되었지만 형태와 조각 기법은 모두 같다. 귀밑까지 찢어진 입, 날카로운 이빨, 툭 튀어나온 두 눈, 머리에서 귀 뒷부분까지 이어진 갈퀴등이 어떤 악귀도 얼씬하지 못할 상서로운 용의 모습이다.
부처 남북국시대(발해) 8~9세기 헤이웅장성 닝안시 상경성 서울대박물관 소장
크기가 작은 불상으로서 금박을 하거나 유약을 입힌것이 발견되기도 한다. 법당의 벽면이나 불단에 조성된 천불에 사용되었던 것이다.
부처 석회암 남북국시대(발해) 8~9세기 지린성 훈춘시 팔련성 일본도쿄대 소장
석가와 다보 두 여래상이 나란히 앉은 모습을 표현하였다. 광배에는 연꽃은 통하여 다시 태어나는 동자상 5구를 돋을새김 하였다. (복제)
불교 조각
약사불 통일신라 9세기 경주 남산 삼릉곡 출토
감산사 미륵보살 국보81호, 아미타불 국보 82호
이 두 불상은 감산사터에서 옮겨온 것으로 빼어난 조각 솜씨를 보인다. 광배 뒷면에는 이 불상을 만든사람, 만든 목적등이 자세하게 새겨져 있다. 명문에 따르면 이 불상들은 김지성이 부모의 은혜와 임금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성덕왕 18년에 만들기 시작한 아미타불과 미륵보살이다. 그러나 만드는 도중 김지성이 성덕왕 19년에 죽자 김지성의 명복도 함께 빌게 되었다.
미륵보살은 온화한 표정과 허리를 약간 비튼 자세를 보이며 아미타불은 엄숙한 표정으로 곧게 선 자세를 취하고 있다.
관음보살
갸름한 얼굴에 화려한 장식으로 뒤덮인 상체 등에서 라마 불상 양식의 영향이 엿보인다. 가부좌한 자세에서 오른쪽 무릎을 세우고 그 위에 오른팔을 자연스럽게 돌려놓은 뒤 왼손으로 바닥을 감는 왕좌의 앉음새를 취하고 있다.
반가사유상
보살 경주안압지 출토 통일신라 7세기말~8세기초
석조지장보살좌상 보물 1327호
지장보살은 지옥에서 고통 받고 있는 중생을 위하여 영원히 부처가 되지 않는 보살이다. 다른 보살상과 달리 민머리의 스님 모습이거나
머리에 두건을 쓴 모습으로 표현된다. 대좌 밑에 정덕 10년 3월에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중종 10년(1515)에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지장보살과 같이 머리에 두건을 쓴 지장보살상은 고려 말부터 조선 전기에 걸쳐서 많이 만들어졌다.
연가 칠년이 새겨진 부처 경남의령에서 출토 고구려 539년 국보119호
이 불상은 1963년 경상남도 의령군에서 우연히 발견되었다. 불상의 광배(光背) 뒷면에는 총 4행 47자의 글귀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이 명문(銘文)에 의하면, 연가 7년 기미년(己未年)에 평양(고구려의 수도)의 동사(東寺)에서 천불(千佛)을 만들어 유포하였는데, 이 불상은 그 가운데 스물아홉 번째 부처님인 인현의불로 여겨진다. 이러한 명문이나 불상양식을 비록 고구려의 영토가 아닌 경상도에서 발견되었으나, 이 불상은 고구려에서 제작된 불상임을 알 수 있다. "기미(己未)"라는 간지와 전체적인 조형 양식으로 보아 이 불상은 539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관음보살 서울 삼양동 출토 삼국시대 7세기전반 국보127호
머리에는 삼각형의 관(冠)을 쓰고 있고, 얼굴은 살이 올라 통통해 보이며, 입가에는 엷은 미소를 짓고 있다. 상체는 어깨가 좁아 위축된 모양이며, 배를 앞으로 내밀고 있어 옆에서 보면 활처럼 휘어진 모습이다. 배와 무릎 근처에 이중으로 걸쳐져 있는 두꺼운 옷은 U자형으로 늘어져 있다. 치마는 두껍게 입어서 다리의 윤곽이 뚜렷하지 않으며, 옷주름은 몇 가닥의 선으로 단순화시켰다. 오른손은 허리 근처에서 정병(淨甁)을 들고 있으며, 왼손은 위로 올려 엄지와 검지를 V자형으로 곧게 펴고 있는 특이한 모습이다. 보살이 서 있는 대좌(臺座)에는 엎어 놓은 연꽃무늬를 새겨 놓았으며, 꽃잎은 그 끝이 뾰족하여 보살상의 부드러움과 대비된다.
물가풍경무늬 정병 고려12세기 국보92호
‘부처님 앞에 깨끗한 물을 바치는 데 쓴다’해서 정병(淨甁). 한가로운 물가 풍경이 한 폭의 그림처럼 표현돼 뛰어난 작품성을 자랑한다.
버드나무 아래 갈대와 수초 사이로 날아가는 오리와 고기잡이 배, 낚시꾼의 모습이 담겨있다. 표면에 홈을 파고 은선을 두드려 박은 입사
기법이 돋보인다.
감은사 터 동탑 사리갖춤 경북 경주 통일신라 682년경 보물 1359호
감은사터 동탑 집모양 사리기 경북 경주 통일신라 682년경 보물 1359호
시공사 쇠북 통일신라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쇠북으로 옆면에 새겨진 '함통육세을유'라는 글귀를 통해 865년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북은 쇠북의 초기 형태를 잘 보여주는 것으로 원형의 테두리 외에는 어떠한 무늬도 없이 간결하다.
천흥사 종 고려1010년 국보280호
이 종은 천안 성거산 천흥사의 종으로 조선시대에는 남한산성에서 시간을 알리는데 사용되었다. 고려의 용이 정면을 응시하며 보주를 물고 있는 점과 제작 연대를 밝힌 글귀를 위패 모양 안에 새긴 것은 고려종의 새로운 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