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
선암마을, 선돌, 장릉, 청령포.. 정선 영월 관광하고자했던 소귀의 목적을 달성하고 마지막 풍류와 해학의 시인인 김삿갓 유적지에 들렀다.
죽장에 삿갓쓰고 방랑삼천리[放浪三千里], 흰구름 뜬 고개 넘어 가는 객이 누구냐,
열두대문 문간 방에 걸식을 하며, 술 한 잔에 시 힌수로 떠나 가는 김삿갓,. 오래전의 유행가 가사로 불리우던 김삿갓의 주거지를 찾아 본다.
돌아온 김삿갓님이 이곳에서 낮에는 생활하신다. 젊은 청년들에게 이곳 김삿갓묘역이 있는 지형의 특색을 설명해주시고 기를 받아가라고 모두 앞마당에 데리고 나와
큰소리로 아하하하 하고 호탕하게 웃으라고 시키니까 기를 받아간다고 잘 쫓아 한다. ㅎ
묘역에서 생가로 가는동안 이렇게 충북 단양과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이 11번이나 바뀐단다. 이곳이 마대산 들머리인데 험하지 않은 1.8Km동안 계속 팻말이 보인다.
좌측 다리를 들머리로 삼으면 김갓갓집 돌탑 뒤를 날머리로 삼아 마대산을 산행 할 수 있다. 이틀을 산행을 했는데도 또 욕심이 난다.
아무리 욕심이 난다 한들 지금은 시간이 오후 2시가 넘었고 비가 계속 오고 있어서 산행은 불가하니 미련을 접을수밖에..
자식을 교육 시키고자 이런 외딴 산속에 숨어서 살며 글을 가르치던 어머니의 힘이 지금 나에게도.. 저 아이의 엄마에게도 있을까?
아무것도 모르고 조부를 비판하는 글로 장원급제를 한 김병연은 사실을 알고 삿갓을 쓰고 떠돌이 방랑 생활을 했다고 한다. 참 가슴아픈 일이다.
김삿갓이 장원급제했던 시제는 홍경래의 난때 최후의 순간까지 충절을 다하다 죽은 가산군수 정공을 찬양하는 한편 선천부사 김익순의 비겁한 항복을 개탄하는 글이었다.
선천부사 김익순이 누구인가? 바로 김병연의 조부이다.
< 대대로 나라의 신하였던 김익순아 들어 보아라. 가산의 정군수는 하찮은 벼슬로도 오히려 충사를 하였다.
한나라 이능은 흉노에게 항복하여 두고 두고 욕을 먹지만 공신의 화상을 모신 기린각에는 소무의 그림이 늘 높기만 하다.
이 일을 생각할때 시인의 가슴은 터질듯 떨려서 가을 물가에 앉아 오히려 칼을 매만지며 슬픈 노래를 읊게만 한다.
선천땅은 자고로 대장이 지키던 곳이라. 가산땅에 비하면 훨씬 더 의를 지켜야 할 곳인데 먼저 항복 하다니 우리 청명한 조정에 정군수와 너는 한임금 밑의 신하였건만
죽는 마당에서 어찌 두마음을 품었느냐?
태평한 세월 신미년에 반란이 서관에서 일어남은 웬일인가 주나라에 변이 일어남은 노중련 같은 충신이 많았고 망해가는 한나라의 부흥에는 제갈량 같은 충장이 많았는데
이나라에도 정가산같은 충신이 있어 맨주먹으로 싸우다가 충사했으니 가릉의 소리가 구국의 깃폭을 높이 들어 추천백일하에 그 빛을 떨쳤구나
그 혼은 남쪽 들에 묻혀도 그 절개는 악비에 비할 것이요 뼈는 서산에 묻혀도 그 기개는 백이에 비할 수 있으리라
이때 선천의 김익순이 굴복했다는 소식이 있었으나 참으로 어이 없는 일이로구나
너의 가문은 이름 높은 장동 김씨요 이름은 장안에서 떨치는 순자 항렬이고 보면 성은도 남달리 두터워 백만대군이 쳐온다해도 어찌 그 의를 저버릴 수 있었으랴.
하물며 청천강물에 고이 씻은 병마와 철옹산같은 활과 칼을 지니고도 임금님 앞에서나 끓던 무릎을 흉적 홍경래 앞에서 긇었다니
네 혼은 죽어서 홍천에도 못가리니 거기엔 우리 선대왕의 영혼이 계신 까닭이다.
임금을 저버린 동시에 조상마져 잊어 버린 너는 한번은 고사하고 만번 죽어 마땅하다. 도대체 역사의 준엄한 기록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뭏든 이 치욕적인 일은 이 나라 역사에 길이길이 전해 지리라. >
선령에 대한 모독과 저주를 범한 병연으로서는 울어도 울어도 그 비탄의 죄과를 씻을 길이없었다.
비운의 시제.. 이렇게 하여 병연은 벼슬를 단념한체 무언가 자기 나름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에 이르렀다.
부질없는 공명심과 하잘것없은 재주로써 백일장의 장원까지 한일이 어이없게도 조상을 욕하게 했으며 이제까지 몰랐던 자기 가문의 내력을 알게 된 그는 인생이
허망하고 무상하여 이젠 진지하고 올바른 의미의 글은 쓰고 싶지가 않았다. 자조와 농세의 글로 세상이나 실컷 저주하고 싶었다. - 김삿갓 전집에서-
이 필체는 아래에서 만난 돌아온 김갓갓 아저씨가 쓰신 글인가보다. 청년들을 보내고 대금을 부시길래 들어가 듣고자했더니 아직 배우는 단계라고 대금은 밀쳐놓고 커피나 한잔 하고 가라고 커피폿트에 물을 끓여 일회용 컵에 일회용 커피를 타주신다. ㅎ 어딘지 언바런스하지만 인간미 넘치는 모습이다 ㅎ
돌아온 김삿갓님이 이곳에서 생활하신지도 벌써 6년째라고 하신다. 하얀 모시옷을 입고 있는 모습만큼이나 집도 정갈하다.
신이 젖으면 무거우니까 안빠지려고 안간힘을 ㅎ
이곳에선 이제 계곡물에 발담그는것도 마지막이라고 일부러 한참을 이곳에 서있었다. 휴가 마지막 계곡의 맛이다.
베틀재 삼풍정
국도변 차창에서 바라본 소백산
도담삼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