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 천불천탑의 성지 운주사를 가다.
일 시 : 2015. 11. 10
천불산 다탑봉 운주사는 천불천탑으로 세간에 널리 알려져 있다. 우리 불교의 깊은 혼이 서린 운주사는 우리나라의 여느 사찰에서는 발견 할 수 없는 특이한 형태의
불사를 한 불가사의한 신비를 간직하고 있다.
1481년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의 기록 ‘운주사 재천불산 사지좌우산척 석불석탑 각일천 우유석실 이석불 상배이좌(雲住寺 在天佛山 寺之左右山脊 石佛石塔 各一千 又有石室 二石佛 相背以坐)라는 유일한 기록이 있다. 이는 ‘운주사는 천불산에 있으며 절 좌우 산에 석불 석탑이 각 일천기씩 있고 두 석불이 서로 등을 대고 앉아있다’는 내용으로 보아 정말 그때까지만 하여도 석불 석탑이 일천기씩이 실존했다고 보아야 할것이다.
또한 조선조 인조 10년(1632)에 발간된 능주읍지에는 ‘운주사 재현남이십오리천불산좌우산협석불석탑 일천우유 석실이석불상배이좌(雲住寺 在縣南二十五里千佛山左右山峽石佛石塔 一千又有 石室二石佛相背而座)’ 운주사는 현의 남쪽 이십오리에 있으며 천불산 좌우 산 협곡에 석불 석탑이 일 천씩 있고 석실에 두 석불이 서로 등을 맞대고 앉아있다는 기록이 있는 걸로 봐서 일천씩의 석불 석탑이 있었던 게 분명하고 그 말미에 금폐(今廢) 라는 추기가 있어 정유재란으로 인해 소실 되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 후 조사한 기록을 보면 석탑이 22기, 석불이 213기가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석탑 17기, 석불 80여기만 남아있어 역사 속에서 끝없이 유실되어온 뼈아픈 세월을 살아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1984년부터 1991년까지 전남대학교 박물관에서 네차례의 발굴조사와 두차례의 학술조사를 하였으나 창건시대와 창건세력, 조성 배경에 대한
구체적인 확증을 밝혀내지 못하여 운주사 천불천탑은 여전히 불가사의한 유적으로 남아있다.
운주사 불상들은 천불산 각 골짜기 바위너설 야지에 비로자나부처님(부처님의 빛, 광명)을 주불로 하여 여러기가 집단적으로 배치되어있다. 크기도 각각 다르고 얼굴 모양도 각양각색이다. 홀쭉한 얼굴형에 선만으로 단순하게 처리된 눈과 입, 기다란 코, 단순한 법의 자락이 인상적이다. 민간에서는 할아버지부처, 할머니부처, 남편부처, 아내부처, 아들부처, 딸부처, 아기부처라고 불러오기도 했는데, 마치 우리 이웃들의 얼굴을 표현한 듯 소박하고 친근하다. 이러한 불상배치와 불상제작 기법은 다른 곳에서는 그 유형을 찾아볼수 없는 운주사 불상만이 갖는 특별한 가치로 평가받는다.
또한 운주사 석탑들은 모두 다른 모양으로 각각 다양한 개성을 나타내고 있다. 연꽃무늬가 밑에 새겨진 넙쩍하고 둥근 옥개석(지붕돌)의 석탑과 동그란 발우형 석탑, 부여정림사지 5층 석탑을 닮은 백제계 석탑, 감포 감은사지 석탑을 닮은 신라계 석탑, 분황사지 전탑(벽돌탑) 양식을 닮은 모전계열 신라식 석탑이 탑신석의 특이한 마름모꼴 교차문양과 함께 두루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운주사 탑들의 재료로 쓰인 돌은 석질이 잘 바스라져서 오히려 화강암질의 강한 대리석보다 더 고도의 기술을 습득한 불모(석공)님이 아니면 제작이 불가능하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이다. 그 석질로 빚어만든 탑이 이렇게 수많은 세월의 풍상을 버티어 전해져 오는 것을 보면 이곳의 조형자들의 기술이 가히 최고 수준이었다는데는 반론의 여지가 없을 듯 싶다.
운주사 서쪽 산능선에는 거대한 두 분의 와불(미완성석불)님이 누워있다. 조상 대대로 사람들은 “이 천번째 와불님이 일어나시는 날 새로운 세상이 온다”는 말을 전해왔다. 아마도 운주사 천불천탑은 우주법계에 계시는 부처님이 강림하시어 하화중생의 대 설법을 통한 불국정토의 이상세계가 열리기를 간절히 염원하는 마음으로 조성한 대불사가 아닐까한다.
운주사의 천불천탑도 유명세를 떨치지만 으뜸은 단연 부부와불이다. 불자도 아닌데 무엇이 궁금해서 밤새 달려 화순까지 왔는지 ㅎ
덤으로 백아산 산행을 마치고 입장료 3천을 내고 천천히 관광 모드로 돌입한다. 적벽도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적벽은 미리 예약을 해야해서 아쉽지만 갈 수가 없다.
운주사 안내문에 보면 천불산이라 안내하는데 일주문에는 영구산이라 쓰여있다.
전각 배치도를 보며 천천히 둘러 보자.
보물 제796호 구층석탑이 선두로 석탑이 도열하고 있다.
일반적인 탑과는 달리 별도의 기단을 구축하지 않고 암반 위에 여러 단의 방형, 좌대를 조각하고 직접 세웠다. 탑신부에 그 안에 곷이 새겨진 마름모꼴의 기하학적인 문양이 가득히 조각되었다. 특히 하부에 사선이 새겨진 지붕들은 납작하고 넓을 뿐만 아니라 경쾌하여 전체적으로 웅장하면서도 세련된 형식을 하고있다. 운주사의 여러
석탑 중에서 제일 높지만 상대적으로 지붕돌이 넓어 안정된 모습을 보여준다. 조성수법으로 보아 고려시대 후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운주사 층상응회암. 응회암은 백학기 화산쇄설물이 쌓여서 응고된 암석이라고 안내판에 기록되어 있다.
불상은 대체로 코가 길쭉한게 특색있다.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76호 칠층석탑
상자모양으로 다듬은 기단 위에는 원형의 1단괴임을 만들었고 그 위에 신라석탑의 전형적인 모습을 갖춘 탑신부가 자리 잡고 있다. 초층과 2층 탑신은 4매의 판석으로
되었고 각 면의 모서리에는 기둥형식이 조각되었다. 3층 이상의 탑신은 모두 1매석이며 각 면에는 우주가 모각 되었다. 각층의 두툼한 지붕돌은 정교하게 잘 만들어졌고
추녀와 처마가 직선형으로 표현되었다. 상륜부는 유실되었지만 비교적 단정하고 소박한 신라 전형양식을 계승한 우수한 석탑이다. 석탑의 높이는 9.6m로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고개를 들어 언덕 위를 바라 보니 그곳에도 탑이 있다. 어디로 고개를 돌려도 탑이 보인다.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77호 쌍교차문 칠층석탑
이석탑은 운주사에서 유일하게 광배를 갖춘 석불좌상 바로 앞에 위치하고 있다. 이 탑 역시 높고 큼직한 방형의 기단석 위에 1단의 방형 좌대를 만들고 그 위에 탑신부를 얹었다. 비교적 안정되고 깔끔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 석탑의 외형은 신라 전형양식을 따르고 있으면서도 각층 탑신석에 특이한 쌍교차문과 측면의 마름모꼴의 형태를 장식하는 등 국내석탑에서는 그 유례가 없는 양식을 보여 주고 있다. 제작 시기는 고려시대이다.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74호 광배석불좌상
광배석불좌상은 운주사 석불 가운데 마애여래좌상과 함께 유일하게 광배가 표현된 불상이다. 사다리꼴 판석에 조각된 광배는 두광과 신광의 구분이 없고 불신 주변으로 선각에 의한 화염문을 음각하였다. 광배는 고부조된 불상에 비해 두께가 얇은 편이다. 불신은 광배에서 약간 도드라지게 표현되었으며 수인(손모양)과 코, 눈썹, 귀는
양각하였다. 전체적으로 상호는 원만상이며 눈에 비해 약간 높게 표현된 눈썹과 기다란 코, 두툼한 입술을 표현하고 있다. 귓바퀴가 묘사된 큰 귀는 눈썹 부근에서 입술 아래까지 길게 늘어져 있다. 운주사 광배석불좌상은 석불군 가운데 드물게 광배가 표현돼있어 불상으로서의 가치와 형식을 갖추고 있다. 제작시기는 양식적인 불상 표현을 보았을 때 고려시대로 추정된다.
석조불감 앞면과 뒷면에 불상이 따로 모셔져 있다.
보물 제797호 석조불감
불감이란 불상을 모시기 위해 만든 집이나 방을 뜻하는 것으로 일반적인 건축물보다 그 규모가 작은 것이 일반적이다. 운주사 석조불감은 건물 밖에 단독으로 만들어진 감실의 대표적인 예이다. 운주사에 산재한 다양한 형태의 석탑과 석불 중 석조불감은 골짜기의 중심부에 위치하며 앞뒤로 각각 탑이 1기씩 있어 야외 불당의 주존불 구실을 하는 배치를 보이고 있다. 불감은 팔작형태의 지붕을 갖추고 그 위에 용마루 등이 조각되어 있는 목조 건축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감실 내부는 남북으로 통하게 하여 불상 2구가 등을 맞댄 형태로 배치하였다. 이들 좌상은 단순화된 형태를 보이는데 경직되고 도식적인 평면화 된 표현은 고려시대의 지방화 된 불상양식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거대한 석조불감을 만든 사례를 찾을 수 없으며 등을 맞댄 쌍배불상 또한 유례가 없는 특이한 형식으로 주목된다.
보물 제798호 원형 다층석탑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원형석탑이다. 탑의 구성은 하나의 돌로 된 거북이 모양의 지대석 위에 두툼한 원형 단을 만들고 탑을 세웠다. 기단 면석은 5매석을 조립하여 8각을 이루고 원형의 갑석에는 연꽃을 선으로 표현하였다. 원형의 탑신과 옥개석은 모두 각각 하나의 돌로 되어 있다. 이색적인 면이 보이는 이 원형탑은 고려시대 석탑으로 추정된다. 전체 높이는 5.8m이다.
야외 석탑과 석불군을 구경하고 사찰 안으로 들어가 본다.
대웅전 앞 마당에 있는 다층석탑과 요사채의 모습이다.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80호 대웅전 앞 다층석탑
운주사 대웅전 앞에 위치하고 있다. 탑신은 4층의 옥개석까지 남아 있고 그 이상 부재의 존재 여부는 알 수 없다. 지붕돌인 옥개석 상부는 일반적인 탑의 곡석 형태가
아니고 전탑과 같은 3단의 층급형으로 이뤄진 모전석탑 유형이다. 즉 돌을 작은 벽돌모양으로 만들어 쌓은 것이 아니라 통돌을 계단형으로 깍은 것이다. 특히 호남지방에서는 드문 예로서 각 층 옥개석의 모서리 부분에서는 가벼운 반전이 있으며 강진 월남사지 모전석탑과 비교된다. 전테 높이는 3.23m이며 제작 시기는 고려시대이다.
대웅전 옆면 탱화
대웅전의 아름다운 문살과 연꽃
대웅전을 둘러 보고 산책로 같은 산으로 오름길을 따른다.
발형 다층석탑
명당탑으로..
명당탑과 또 하나의 탑
명당탑
불사바위
불사바위에서 바라보는 운주사 골짜기의 모습
대운전과 지장전 앞 다층석탑
거북바위라는 거대한 암반 위에 세워진 오층석탑
거북바위교차문 칠층석탑
거북바위 아래 위치한 불상
와불 아래 시위불
유형문화재 273호
세계에서 하나뿐인 유일한 형태의 와불이다. 이는 열반상(부처님이 옆으로 비스듬이 누운 상)과는 다르게 좌불(앉은 모습)과 입상(선 모습)으로 자연석 위에 조각된 채로 누워있다. 이렇게 좌불과 입상의 형태로 누워있는 부처님은 세계에서 하나뿐이라는 것이다. 이 부처님은 좌불 12.7미터, 입상 10.26미터의 대단히 큰 불상이다. 나침반을 갖다대면 거의 정확히 남북으로 향하고 있어 이 천번째 부처님이 일어나면 곤륜산의 정기를 이 민족이 받아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지상 최대의 나라가 된다는 전설이 전해져 온다.
운주사의 좌불은 비로자나부처님이고 옆에 입상은 석가모니불이다. 그리고 이 두 분을 지키는듯 아래 서있는 노사나불(머슴부처, 시위불, 상좌불)도 옆에서 떼어내 세운 것이 분명하다. 그러기에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한 삼불 신앙의 형태로서 떼어서 어딘가에 세우려 했던 것인데 과연 어디다 세우려했을까에 대한 의문과 더불어 역사의 기록에서 이런 대단위 불사가 사라진 까닭을 생각해 보면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와불을 보고 내려서며 건너편 능선에 있는 석탑을 본다.
천천히 보려고 노력했는데 그래도 뭔가 아쉽다. 왕복 700Km가 넘는 먼 거리에 있는 쉽사리 갈 수 없는곳을 다녀 왔다. 불교문화는 알수없는 오묘함이 있다.
오는길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제2중부로 오는데 공사로 엄청 지체되었다. 뒤에 앉아서도 피곤해 죽겠는데 운전하던 동배씨 얼마나 힘들었을까..
다음은 백화산을 가자고 선 약속을 했는데 언제 가게 될지.. 반야사 대웅전 뒤로 호랑이 모양을 한 너덜지대가 참 특색있는곳인데 ㅎ
자주쓴풀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