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딴지
활달하신 어머니는 밤이면
가끔 아버지에게 바가지를 긁었다
여우하고는 살아도 곰하고는 못산다면서
벽을 보고 아무 말도 없는 아버지에게
벽창호라고 말하셨는데
벽창호라는 뚱딴지 같은 말이
그때는 무슨 말인지 통 감이 없었다
뚱하고 아무말이 없고 엉뚱하게 딴짓 잘하는 것
그런 성격을 뚱딴지라고 어렴풋이 알면서
세상에는 아버지 같은 사람들도 사는 걸 알았다
천리 그 깊은 속을 아직도 모르지만
아버지는 왜 어머니 앞에서 벽창호라는
뚱딴지 같은 말을 들으면서도 아무 말도 안 했을까?
아침에 뚱딴지 같은 말을 들었다
< 너 때문이야 >
뭐라고 말을 하긴 해야 하는데
하늘에 대고 우물쭈물거리다가 말았다
이제야 아버지가 아무 말도 없었던 이유를 조금씩 알면서
아버지가 뒤뜰 담벼락에 열심히 심으시던
아무런 쓸모가 없는 그 뚱딴지의 그
노란 꽃잎과 멀쑥한 키가 생각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