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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두산 순교 성지

by 아 짐 2006. 1. 4.

이 성지는 한강변 최고의 절경으로 유명하며 봉우리의 모양에 따라 가을두(加乙頭)·용두봉(龍頭峰)·잠두봉(蠶頭峰)이라고도 불렸다.

절두산이라고 불리게 된 유래는 1866년 병인양요(丙寅洋擾) 당시 프랑스 함대가 이곳 양화진(楊花津)까지 진격해온 적이 있었는데, 이에 흥선대원군은 "양이(洋夷)로 더럽혀진 한강의 물을 서학(西學) 무리들의 피로 씻어야 한다"고 하면서 전국 각지에 척화비(斥和碑)를 세웠으며 이와 함께 수많은 교인들을 붙잡아 양화진 근처의 이 산봉우리에서 목을 잘랐다고 하는 데서 비롯되었다. 절두산에서 가장 먼저 순교한 사람은 이의송(李義松)으로 1866년 10월 22일 부인·아들과 함께 처형당했다. 그후 신원을 알 수 없는 사람까지 헤아려 천주교측에서는 약 1만 명가량의 순교자가 이곳에서 처형당했다고 한다. 특히 선참후계(先斬後啓)라 하여 심문과정 없이 바로 처형했기 때문에 많은 인명 피해가 있었다고 하며 이때문에 처형당한 사람들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전해지지 않고 있다. 잘린 목은 그대로 한강에 던져졌고 머리가 산을 이루고 강물이 핏빛으로 변했다고 한다. 순교 100주년이 되던 해인 1966년 순교자기념관이 건립되었으며, 기념관은 성당·박물관·경당(經堂)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편 양화진에는 개신교가 전래되면서 한국선교에 헌신했던 많은 외국인 선교사들이 묻혀 있는 외인묘지가 있다.

 

 

기념관은 궁궐의 기둥과 같은 화랑의 원주, 옛 초가집 지붕처럼 포물선을 그리며 미끄러져 내린 추녀, 조상들이 쓰던 갓 모양을 하고 있는 성당의 천개, 이런 하나 하나가 우리에게 옛 정취와 포근한 정감을 일으키고 있다. 또한 성당의 평면은 부채살형으로써 초점인 제단에서의 성찬과 말씀이 반사되어 바깥 세계로 퍼져 나가 모든 인간에게 전해지는 이미지가 내포되어 있다.

 


순교자 기념탑은 절두산에서 순교한 것으로 확인되는 이의송 가족을 비롯한 28위의 순교자와 수많은 무명 순교자들을 기리기 위해 2000년 9월 20일 세워졌다.
순교기념비 주탑에는 형틀을 상징하는 조형물 아래 16명의 순교자들 모습이 새겨져 있고, 우측탑에는 절두된 머리가 올려져 있어 절두산의 지명을 암시하며, 주탑과 함께 33명의 순교자 모습이 새겨져 있다. 좌측탑은 일종의 오벨리스크 형식으로 제작되어 절두산에서 순교한 무명 순교자들의 모습을 새겨놓았다.

 

세계 성체대회 기념관

 

 

외국인 선교사 묘지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히기보다 한국에 묻히기를 원하노라." H.B 헐버트

 

해거름에 묘지를 어슬렁 거리니 무섭다기 보다는 좀 음산한듯

찬바람과 함께 묘비와 나무등 자그마한 봉분.. 음영이 짙어진다

많은 이름모를 묘지, 우리가 익히 알고있는 선교사 등...

오늘은 여기서 돌아섰다

다음에 십자가의 길 14처를 돌아보고 싶다

 

강가에 내려서니 어둠이 내려 멀리 국회의사당과 유람선에 불빛이 빛난다

 

 

잠두봉 선착장 카페

맞바람 맞으며 걷기가 힘들다

얼굴을 손으로 감싸도 파고드는 추위를 막을수 없다

모자를 잔뜩 눌러쓰고 장갑낀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뒷걸음으로 걸었다

어서 가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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