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대 명산 (산림청 선정)
o 예로부터 경기 5악의 하나로서 경관이 수려하며, 도심지 가까이 위치한 도시자연공원(1968년 지정)으로 수도권 주민들의 휴식처인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o 주봉은 연주대(戀主臺)로서 정상에 기상 레이더 시설이 있음. 신라시대 의상이 창건하고 조선 태조가 중수(1392년)한 연주암과 약사여래입상이 유명
ㅇ산행일시 :2007.07.22
근 1년만에 친구와 산행을 하는것 같다. 일요일 쉬는것이 쉽지 않고 쉰다해도 아찌랑 지방산행을 가다 보니 더욱 산행은 힘들었다
일요일 산행할수 있으니 친구들 소집해봐 애기나리에게 전화했다. OK!
다음날 사당역 만남의 광장 10시 답장이 왔다. 아침에 바삐 준비하다 보니 물도 냉동실에 넣어놓고 그냥 오고 손수건도 빠트리고 그리고
지각하고 ㅎㅎ 난 항상 지각대장인데 오늘도 오랜만에 만나면서 변함없는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혜숙이 명자 인재 미안혀~~
관악산도 근 2년여 만에 찾아왔나보다. 교통이 은근히 불편하고 시간나면 북한산으로 쪼르르~~ 가곤해서 가깝고도 먼산인듯 했다
애기나리도 어제 남덕유 산행을 했다하고 나도 팔봉산 산행을 한터라 해도 뜨겁고 짧게 산행하고 계곡에서 발이나 담구자고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많이 더운 날이었다
친구는 연주대서 육봉 거쳐 과천으로 하산하자고 했는데 모두 연주대에서 하산하자고..
관악산 레이다기지는 어느 곳에서도 눈에 띈다.
관악문
지도바위
바위 사면을 따라 줄잡고 바위 잡고 통과해야 한다
관악산 정상 곧 가을이 오려나 고추잠자리떼가 머리위에 맴돈다 고추 먹고 맴맴~~달래먹고 맴맴
레이더기지와 연주대 응진전 너무나 멋지다...
연주대 (시도 기념물 20호)
관악산의 봉우리 중에 죽순이 솟아 오른 듯한 모양을 한 기암절벽이 있는데 그 위에 석축을 쌓고 자리잡은 암자를 연주대라 한다.
원래는 의상대사가 문무왕 17년(677)에 암자를 세우면서 의상대라 이름했었는데 고려 멸망 후 조선을 반대하며 고려에 충성을 다하던
유신들이 이곳에 모여 멀리 개경쪽을 바라보며 고려를 그리워하여 연주대(戀主臺)로 이름을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조선 태종(재위 1400~1418)이 셋째왕자 충녕대군을 장차 태자로 책봉하려 하자 이를 눈치챈 첫째 양녕과 둘째 효령대군이 궁을 나와 관악산에 입산 수도하면서 이 연주대에 올라 왕궁을 바라보며 왕좌를 그리워하었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연주대에 얽힌 이러한 이야기들은 모두 연민을 불러 일으키는 내용인데 이것은 연주대 주변 경관이 매우 뛰어난 절경인데다 한눈에 멀리까지 볼 수 있기 때문에 붙여진 것으로 여겨진다.
지금의 건물은 3평 남짓한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며 조선 후기에 지어진 것이다. 이곳에는 석가모니와 나한들을 모신 불당인 응진전이 있다.
여기서 냉막걸리 한잔에 식사를 하고 뒤이어 오기로 한 친구와 전화하니 발빠른 친구이긴 하지만 날쌘돌이 벌써 다와간다. 우린 놀매놀매.. 더워 더이상 못가서 요기 아래 사당역으로 내려가겠노라고..
친구 도착하기 전에 연주암에 다녀오자고 서둘러 배낭 짊어지고 내려가 몇번이고 보았던 절이지만 철따라 모습도 다르고 변함없는것은 많은 인파뿐이다. 공사중이라 어수선하긴 하지만 주변의 모습은 더할나위 없이 아름답다
연주암
연주암이 위치하여 있는 관악산은 예로부터 개성의 송악산, 파주의 감악산, 포천의 운악산, 가평의 화악산과 더불어 경기 5악의 하나로 불리었다. 서울의 남쪽 경계를 이루고 있는 이산은 줄기가 과천 청계산을 거쳐 수원의 광교산에 닿아있다. 곳곳에 드러난 암봉들이 깊은
골짜기와 어울려 험준한 산세를 이루고 있으나 산의 규모가 그다지 크지 않고 도심에서 가까워 가족을 동반한 당일 산행 대상지로서 많은 이들이 찾는다.
연주암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사찰과 암자가 있는데 아슬아슬한 벼랑 위에 자리잡고 있는 연주암은 관악산의 모든 등산로가 집결하는
곳이다. 연주암은 관악산의 최고봉인 연주봉에 자리잡고 있는 연주대 남쪽지점에 있다. 연주암은 관악산의 모든 등산로가 집결하는 곳인
데 남쪽 능선을 계속 따라가면 장군바위에 다다르게 되고, 북쪽 능선을 따라가면 마당바위를 만나게 된다. 또 왼편으로는 무너미 고개를 지나 삼성산에 닿게 되며, 오른쪽으로는 자하동천이 펼쳐져 있다. 연주암에서 자하동천 계곡을 따라 과천시로 내려가기까지 1시간 정도가 걸린다. 연주암은 본래 신라 문무왕 17년(677년)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관악사로 불리던 오늘날의 연주암은 조선 태종 11년(1411년) 태종의 첫째, 둘째 왕자인 양녕대군과 효령대군이 현재의 자리로 옮겨 놓았다 한다. 정상에 이웃한 연주대는 관악산의
대명사처럼 되어 있는 절경으로 이곳에 오르면, 서울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친구는 벌써 관악사지에 도착하였노라고.. 하여 거기서 합류하여 다시 오던길 되집어 하산
관악사지 우물
관악사지 (효령대군의 얼이 서린 호국 도량)
관악사 창건에 관해 연주암지에 신라 문무왕 17년 의상조사가 의상대를 창건하는 동시에 관악사를 개산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태종 11년(1411)양령대군과 효령대군이 충령대군에게 세자위를 전위한 후 관악산에 올라 전위에 따른 심정을 달랬다고 하는데 효령대군은 이곳에서 2년간 수양을 하며 관악사를 고지(古址자)로부터 현 위치로 이축하면서 40간의 가람을 건설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그러나 1999년 과천시가 단국대학교 매장문화연구소에 의뢰하여 발굴조사를 한 결과 도자기편, 기와편 등 출토유물이 15세기전반부터 18세기까지 나오고 있어 이곳 관악사지는 효령대군이 이전 조성한 것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관악사지는 적어도 6개이상의 건물이 있었으나, 이는 일시에 건립된 것이 아니고 시기에 따라 일정한 가람을 건립하고 이것이 수해에 의해 폐사되며 인근으로 옮기거나 혹은 그 자리에 대지를 조성하여 새로운 가람을 건립하여 명맥을 유지하다 18세기에 폐사된 것으로 조사되었다. 사찰건물은 급경사 지역에 석축을 쌓아 평탄하게 만든 후 평탄대지를 따라 누층적으로 축조하였는데 이는 지형을 최대한 이용하면서 인공적인 건물과 자연지형과 조화를 꾀하려는 전통적인 산지 가람의 배치 방법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유일하게 소실된 것으로 조사된 연주대 바로 밑의 다지구 건물은 구국기도사찰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된다.
무더운 날씨임에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관악산을 찾았다. 하산길에 계곡에서 잠깐 씻고 다시 산등성이 돌아 처음 올랐던 남현동으로 내려가 시원한 맥주로 더위를 날려보내고 집에 가니 벌써 9시다. 아찌는 쇼파에 앉아 축구 경기를 구경하다 도끼눈을 하고 뭐하고 이제와 한다. 다른 친구들은 아직 더 놀고있는데.. 내년이면 5학년에 진학하는데 이렇게 눈치보며 살아야하나 에이~~ 짱난다
그래도 어쨌거나 일찍오길 잘했다.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버서 피하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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