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초 1
봄인가 하고 얼굴 내밀었을 때
우연히도 때늦은 눈이 왔다
얼어죽지 않으려 안간힘을 다하며
가까스로 눈을 헤치고 피었다
아 ! 눈 속에 피는 꽃
온갖 찬사와 카메라를 들이대고
얼떨결에 나 아닌 또 다른 내가 되어야 했다
소문은 그렇게 났고
모진 인식은 나 아닌 나를 용납치 않아
모두들 내가 눈 속에서 피는 줄 믿지만
세상에 얼어죽지 않는 풀이 어디 풀이랴
당신의 그 여물지 못한 틀 속에서
나는 아직도 버리지 못한
또 다른 나를 꿈꾸고 있다
복수초 2
아프지 않고 사는 것을 복이라 하고
오래오래 사는 것을 수라고 했는데
벽에 난초 치지 않고 배 곯지 않으며
병 없이 오래 사는 것만이 복수만은 아니다
쭈그렁 밤송이 삼년 달리다고 골골 팔십으로 사는 노인을 보면서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냐고 스스로 반문하지만
욕심 같아서는 병도 없고 아프지도 않고 돈도 많고 권세도 많고
재미도 많고 룰루랄라 즐겁게 9988234 하는 것이 행복이라지만
죄많은 나로서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참을 정도로 아프면서도 그 아픔에 지지 않고
모자란 듯하면서도 빠듯한 살림에 허우덕대지 않고
티격태격하면서도 결코 서로에게 포기하지 않는 사람과
죽기 전날까지 이웃에게 무엇인가 베풀며 사는 것이 내 꿈이다
이 이루기 힘든 꿈을 향해
오늘은 또 얼마나 모질게 버리고 잊고 잃어야만 하는가
이 세상을 축만 내면서 오염만 시키면서
저 잘난 맛에 혼자 사는 사람들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