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부터 영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는 오로지 걷는 자만을 위한 길들이 만들어져왔습니다. 적게는 수천 킬로미터에서 많게는 십수만 킬로미터까지 나라마다 제각각의 이름으로 다양한 색깔을 가진 길들을 찾아 조성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도보 여행자들은 그 길을 따라 걸으며 자연의 아름다움과 독특한
지역의 문화에 매혹되기도 하고, 내면의 소리에 귀기울이기도 합니다.
우리에게도 오래 전부터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참 고운 옛길들이 많았습
니다. 장돌뱅이들이 봇짐을 메고 무수히 넘나들던 고갯길과 들길, 마을 사람들이
장을 보러가던 길, 영남대로라 하여 한반도를 가로질러 한양으로 가던
길까지.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계량할 수 없는 삶의 길들이 지천이었습니다.
지금은 그런 길들이 거의 사라지고, 사람들도 잘 걷지 않게 되었습니다. 자동차를 위한 도로만이 전 국토를 거미줄처럼 연결하고 있습니다. 빠르게 가기위해 장소의 고유성을 상실하고 있으며, 현대인들은 점점
병들어 가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두 발의 힘만으로 걸으며 국토의 아름다움과 독특한 지역의 문화를 보고 느끼고 자기 내면과 대화하며
걷는 <걷는 이를 위한 길>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근력의 차이 없이 누구나
쉬이 걸으며 길 위에서 만나는 모든 생명들과 대화할 수 있는 영성의 길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속도의 길이 아니라 느림의 길을, 정상으로만 치닫는 수직의 길이 아니라 유유히 걸을 수 있는 수평의 길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자연뿐만 아니라
지역의 고유한 역사와 문화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공간으로서의 길을
찾아내어 복원하고 이어야 합니다.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과 몸의 병은 치유될 것이며, 좋은 길과 다양한 문화자원을 가지고 있는 지역은 길을 걷는 사람들, 길 위에
머무르는 도보 여행자들로 인해 풍요로워 질 것입니다. 마을의 자연과 고유한 문화를 파괴하지 않고도 이 길을 통해 잊혀져 가던
지역은 사람 냄새나는, 도시와 지역을 이어주는,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살맛나는 공간이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