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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북한산 라운드 트레일 - 월간 사람과 산 -

by 아 짐 2009. 3. 20.

 

창간 20주년 기획  북한산 라운드 트레일

산기슭 따라 옆으로 가는 산행

글 사진|신준범 기자  도움|KTC(Korea Trail Club)

잡한 도시를 떠나 산을 찾을 땐 싱그러운 초록의 호젓함을 기대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주말 북한산에 가면 압구정동 로데오거리 못지않은 인파로 북적인다. 오직 산마루만 향해 오르는 사람들… 누가 추월이라도 할라치면 속도를 내 따라잡으며 지지 않으려는 사람들… 비슷한 옷차림으로 비슷한 코스로 향하는 사람들의 넘쳐나는 발자국과 소리… 아니 소음… 과연 이런 데를 산이라 할 수 있는가?

앞만 보고 헉헉대며 산마루에 올라 성취감을 느낀 뒤 8천미터나 오른 듯 서둘러 하산하는 것, 도시 삶의 궤적과 다른 것이 무엇인가? 입산해서만큼은 속된 마음 잠깐 물려두고 자연의 소리를 경청하는 것도 좋지 아니한가?

이 북한산을 새롭게 바라보고 걷기 위해 언저리를 따라가는 산행에 나선다. “산마루는 결단코 가지 않으리라”가 핵심이며 2~3부 능선을 타고 옆으로 옆으로 도는 것이 산행의 방식이다.

언저리 산행을 구상하고 몇 년간의 답사를 통해 코스를 완성한 것은 KTC(Korea Trail Club) 멤버들이며 주도적인 역할을 한 이는 코오롱등산학교 독도법 강사 박승기(우정산악회)씨다. 1968년부터 인수봉 등반, 77년 도봉산 오봉 우정길 개척, 80년 76일간의 태백산맥 종주, 86년 K2 원정대원, 87년 체육훈장 백마장을 수상한 산악인이다.

그는 오랫동안 시행착오와 답사를 통해 북한산 라운드 트레일 코스를 완성했다. 환경을 감안해 모든 길은 기존에 있는 길을 활용해 이었다. 그러나 거미줄처럼 엮인 길이 워낙 많아 독도 전문가인 그도 잘못된 길을 갔다 되돌아오기를 수차례 반복해야 했다.

트레일 첫구간 들머리는 정릉동 탐방안내소, 모인 사람은 7명이다. 차준근 KTC 단장, 박승기 산행대장, 홍원기(한결산악회), 신동우(어쎈트산악회), 김현대(하이얀산악회), 이정숙, 최오순(운정산악회)씨로 코오롱등산학교를 통해 연을 맺은 동문과 강사들이다.

입산하여 바로 옆길로 샌다. 대성문이나 보국문으로 향하는 오름길을 버리고 북악터널 쪽으로 방향을 튼다.

비어있는 겨울 산. 바싹 야윈 나무들을 보며 문득 기아에 시달리는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떠올린다.

단조로운 풍경을 천천히 밟으며 20분, 신성천 샘터다. 수질검사를 통과했다는 안내문이 있으나 서울 땅의 샘들은 믿음이 안 가 입만 헹군다.

벤치에서 쉬고 간다. 오르내림이 이어지지만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정도는 아니며 땀이 살짝 나는 수준이다. 굳이 따지자면 산책과 산행의 중간 정도다.

쉬운 길이지만 쉽지 않다. 등산지도에 없는 갈림길이 걸음을 계속 멈춰 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동네 주민이 아니고선 가늠하기 힘든 2부 높이의 산 언저리 길이다.

김현대 회원이 갈림길마다 표지기를 매달아 라운드 산행자들의 길찾기를 돕는다. 이번 구간을 세 번째 탄다는 박승기씨는 주요 기점을 GPS로 기록하며 트레일 마무리 작업을 한다.

오르막이 이어진다 싶더니 형제봉에서 동쪽으로 흘러내린 능선 위다. 주말답게 능선에는 등산객들의 발걸음이 줄을 잇고 있다. 능선을 버리고 다시 옆으로 내려서자 등산객들은 간 곳 없고 호젓한 길만 남는다.

한참을 가니 연세 지긋한 어르신 두 명이 맞은편에서 온다. 동네주민인 듯 가벼운 복장이다. “산에 가려면 이 길로 가면 안 돼”하며 길을 일러 주지만 라운드 트레커들은 “네”하고 대답만 할 뿐 계속해서 옆으로 향한다.

북악천 샘터를 지나자 저만치 서광사가 보인다. 갈림길에서 절쪽으로 가는가 싶더니 옆으로 난 산길로 빠진다. 이런 길은 지도에 일일이 표시하기가 어렵다. 2부 산 언저리다 보니 막상 길을 잃어도 위험할 건 없지만 표지기나 이정표가 있어야 초행자들이 제대로 길을 찾을 수 있다. 새로운 산행문화 보급을 위해 관리공단과 구청의 지원이 필요하다 할 수 있겠다.

왕녕사에서 다시 왼쪽 산길로 든다. 2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 이 길을 찾기 위해 KTC멤버들은 3시간을 헤맸다고 한다.

그런 경험이 있어선지 회원들은 서두르거나 조급해하지 않는다. 30분 산행 10분 휴식, 혹은 터 좋은 곳마다 쉬어갈 정도로 여유 있다. 라운드 트레일을 개척한 이들답게 성향 또한 길을 닮아 있다.

다시 일주문 앞, 여래사다. 주차장부터 법당까지 시멘트로 중수하여 스님들이 편안하게 수행할 수 있을 듯하다. 뒤편에는 납골당도 널찍하게 만들었다. 국립공원 밖이므로 가능한 것이다.

구청에서 깔끔하게 정비한 계단길을 잠깐 오르니 ‘하늘마루정자’ 체육시설이 있는 공원이다. 국립공원을 벗어나 북악산 쪽으로 접어든 것이다.

이제 등산복보다는 츄리닝 차림의 사람들이 더 많다. 우리도 아스팔트 도로 옆 보행자 길을 따른다.

신수 좋은 팔각정이 솟은 전망대, 북악산 팔각정 휴게소다. 비봉능선을 조망하기 좋은 명당이지만 구름이 산자락을 백지로 만들었다.

휴게소 칼국수집에서 점심을 먹고 편하게 길을 나선다. 날씨 덕에 조망이 없어 일행들과 제법 긴 대화를 나눈다. 같은 길을 걸으며 나누는 대화는 사람 사이를 담백하게 이어주는 자연스런 힘이 있다. 언저리 산행은 이렇듯 부담이 없어 등산초보자나 노약자, 어린이를 동반하기 좋다.

창의문으로 내려서는 북악산길, 도로 옆으로 난 보행자 길이다. 지루할 정도로 편하다. KTC 회원들은 언저리산행 외에 암·빙벽도 틈날 때마다 한다. 등반에 비해 스릴이 너무 없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최오순씨는 “스릴이 왜 없어요? 언제든지 길을 잘못들 수 있기 때문에 얼마나 스릴 있는데요?” 하며 길찾기가 가장 큰 관건이라 한다.

골목길을 빠져나와 창의문(彰義門) 앞에 선다. 4대문 사이에 둔 4소문 중 하나 북소문이다.

2007년에 개방된 북악산 성곽길을 가려는 사람들이 북적인다. 창의문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관광객들. 그 틈에서 KTC회원들도 그들처럼 기념사진을 남긴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 이렇듯 진부한 사진도 다 추억이 될 것이다.

횡단보도를 건너 정맥 종주하듯 다시 산으로 향한다. 탕춘대성벽을 따른다. 탕춘대성(蕩春臺城)은 1715년(숙종 41년) 쌓였으나 전쟁에는 한 번도 사용된 적이 없는 종이호랑이 같은 성이다. 지금은 성곽을 따라 산책로가 조성되었으니 산의 한 부분이 되었다고 보는 게 맞을 듯하다. 이렇듯 언저리 산행은 서울이 지닌 세월의 언저리도 거슬러 오르고 있다.

인왕산 줄기를 묵직하게 버티고 선 탕춘대성, 그 무게만큼이나 발걸음이 무겁다. 평소 같으면 여느 산 오름길과 별 차이 없겠지만 아침부터 쭉 널럴하게 걷다 이제야 가파른 오름길을 만났으니 숨이 제법 차오른다. 땀 흘려 올라선 능선엔 시원한 마당바위가 기다린다.

인왕산은 높이가 낮고 사면으로 이어진 길이 없어 능선으로 길을 잡은 것이다. 덕택에 이곳에서 꼭지 메인사진 쯤을 건질 수 있을 듯하다.

정릉을 출발해 남쪽으로 이어서 북악산, 거기서 서쪽으로 가 만난 인왕산에서 다시 북쪽으로 향한다. 서대문구와 종로구 일대의 부연 풍경을 훑어보며 내려서니 세검정로타리 근처다.

횡단보도를 건너 1구간 종착지인 홍지문 앞에 선다. 1921년에 허물어진 것을 1977년에 다시 세운 것이다.

‘북한산 300리 트레일코스 개척’을 기념해 만든 현수막을 펴 사진을 찍는다. 그러나 박승기씨가 GPS 자료를 분석해보니 트레일의 총 거리가 약 70킬로미터라고 한다. 반올림해도 200리다. 어쨌든 가야할 길 100리가 줄었으니 즐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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