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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

태화산 할인봉423m(충남 공주) & 마을으로 떠나는 산사 산책길 마곡사

by 아 짐 2025. 11. 6.

일 시 : 2025. 11. 02 (일)

참 가 : 아찌랑 나랑

코 스 : 마곡사주차장- 솔바람길- 마곡사- 할인봉- 생골- 백련암갈림길- 은적암갈림길- 마곡사- 주차장

 

 

아침 7시에 일어나 친구집에서 아침밥 얻어 먹고 차에 온갖 농작물을 싣고 아쉬운 인사를 남기고 공주로 향한다.

이번 태화산 산행은 전적으로 공주 마곡사를 보기 위함이었다.

春 마곡, 秋 갑사라고 하는데 봄에 마곡사를 오고 싶어 안달을 했는데 기회가 닿지 않아 못오다 이번 보령땅을 밟으며 인근의 공주 마곡사의 단풍이 절정이라는 인터넷 글을 보고 秋 마곡을 택했는데 단풍은 생각보다 많이 들지 않았고 단풍 때문데 찾는 마곡사는 아니고 고풍스런 사찰 모습에 한번쯤은 와볼만한 곳이란 생각이다.

문제는 태화산 산행에서 뜻하지 않은 대형 알바를 하면서 고생을 엄청 했다.

이래서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말을 실감했다.  아니다 싶으면 즉시 빽을 해야 하는데 또다른 길을 찾아 보겠다고 길아닌 길을 얼마나 헤맸는지 마지막 내려와서는 산행에 대한 의욕을 완전 상실했는데 그래도 전의를 다져서 짧은 코스로 태화산을 오를 수 있음이 천만 다행이었다.

 

 

주차장에 장민호 팬클럽 대형버스가 주차되어 있다.  팬클럽.. 저런 열정이 어디서 나올까?  

하기사 저분들은 산에 다니는 나를 이해 못할수도 있겠지 ㅎ

 

 

어마어마한 차량이 마곡사로 밀려 들고 있다.  간신히 주차 자리 찾아서 파킹하고 마곡사로..

 

 

마곡사 일주문을 지난다.

 

 

마곡사가 한국의 산지승원으로 유네스코에 등재되었다고 한다.

7개의 사찰이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에 등재되었다.  통도사, 부석사, 봉정사, 법주사, 마곡사, 선암사, 대흥사

모두 가본 사찰이고 내가 좋아하는 사찰이다.  고풍스런 모습이 좋은..

 

 

파란선 따라 할인봉, 나발봉을 가려고 했는데 처음 마곡사에서 부터 길을 잘 못 들어서 어만데서 고생만 실컷 하고 내려 왔다.  어째 그렇게 감이 없을까 ..  하기사 누굴 탓해 똑같지 ㅠ

 

 

마곡사 가는 솔바람길

 

 

마곡사로 들어가는 극락교가 보인다.

 

 

경내에 천막이 뭐하는곳인가 했는데 천막에서 장이 펼쳐졌다.  아마 바자회 같은 느낌이었다.

 

 

春마곡’이란 별칭에서 알 수 있듯이 봄볕에 생기가 움트는 마곡사의 태화산은 나무와 봄꽃들의 아름다움이 빼어 납니다.

마곡사지에 따르면 '마곡사는 643년(의자왕 3년)에 신라의 고승 자장율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오고 있으며 고려 명종(明宗) 때인 1172년 보조국사(普照國師)가 중수하고 범일(梵日) 대사가 재건하였다고 합니다.
도선국사(道詵國師)가 다시 중수하고 각순 (覺淳) 대사가 보수한 것으로 전해오고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세조가 이 절에 들러 ‘영산전(靈山殿)’이란 사액(賜額)을 한 일이 있었습니다.

신라의 고승 자장율사가 창건할 당시만 하더라도 30여 칸에 이르는 대사찰이었으나 현재 마곡사는 대웅보전(보물)을 비롯한 대광보전(大光寶殿, 보물), 영산전(보물), 사천왕문·해탈문(解脫門,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 등의 전각들이 가람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도량의 성보(聖寶)로는 5층 석탑(국보)과 괘불(掛佛, 보물) 1폭, 범종(梵鐘,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 목패(木牌), 청동 향로(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 세조가 타던 연(輦, 충청남도 민속문화유산)이 있으며 감지은니묘볍연화경(紺紙銀泥妙法蓮華經) 제6권(보물)과 감지은니묘법연화경 제1권(보물)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탁되어 있습니다.  -마곡사 홈페이지-

 

 

스님들이 판매를 하시고..

 

 

해탈문은 마곡사의 정문으로서 이 문을 지나면 속세를 벗아나 불교 세계(法界)를 들어가게 되며 해탈을 하겠다는 마음을 갖게 된다고 하여 해탈문이라 한다.

중앙 통로 양편에 금강역사상과 보현, 문수동자상을 모시고 있다.  고종1년(1864)에 중수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그 이전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금강역사와 문수동자상

 

 

마곡사 경내의 단풍은 절정을 이루고 있다.

 

 

용과 여의주를 들고 있는 남방 증장천왕과 당과 채과바구니를 들고 있는 서방 광목천왕의 모습

 

비파를 들고 있는 북방다문천왕과 검을 들고 있는 동방지국천왕의 모습이다.

마곡사 사천왕상은 국가보물에 지정되었다고 한다.

 

 

숲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명부전은 죽음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보면서 그 동안의 업장을 참회하고 소멸하는 기도 처입니다.

 

 

대광보전 삿 자리를 짠 앉은뱅이 전설이 있다.

그날은 그가 부처님께 공양 올릴 삿자리를 짜기 시작하면서 앉은뱅이로서의 삶을 거두고 걸을 수 있게만 된다면, 그 자비광명을 얻게 만 된다면 이생을 넘어 세세생생 보시하는 삶을 살겠노라고 맹세하고 부처님께 의지하며 생활한지도 어느덧 100일째 되는 날이었다. 그는 이미 자신이 너무도 주제 넘는 소원을 품었던 터라 더없이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내가 가진 업보가 그 얼마나 큰데 감히 부처님께 그런 소원을 빌다니! 얼마나 더 공덕을 쌓아야 그 동안 지은 억겁의 죄업을 다 씻을 수 있을 것인가, 슬프도다 슬프도다.’

지난 100일 동안의 기도 끝에 깨달은 것은 첫째도 참회요, 둘째도 참회였다. 그러한 나날이 계속 될수록 그는 걷게 되는 것을 염원하기보다는 길가에 무심히 핀 들꽃이 소중하고 그것이 살아있음을,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며 그 무엇에건 감사하게 되었다. 들꽃과 함께 호흡하고 나를 느끼는 것 자체만으로도 그는 부처님께 감사했다. 일체의 삼라만상에 부처님의 자비를 회향하겠노 라고 다짐하는 날이 늘어갔다. 그렇게 100일이 채워졌던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삿자리가 완성되었다. 그는 부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성치 않은 다리를 끌고 부처님께 기어가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지극한 마음으로 절을 올리고 법당을 나왔다.

그런데 이것이 어찌된 일인가? 그가 걸어 나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자신도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그는 어느새 걷고 있었다. 그는 그 파란 하늘과 푸른 숲, 무심히 흐르는 마곡천을 바라보며 부처 님의 자비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는 다시 한 번 또 다짐했다. 이 같은 부처님의 자비를 하늘과 바람과 나무와 숲, 그리고 모든 살아있는 이들에게 회향하겠노라고, 그리하여 나누는 삶, 자비의 삶을 살아가겠노라고.

 

 

관음전

 

 

대웅보전 올라가는 길

 

 

2층으로된 통층 전각 내부에 싸리나무가 있는데 이걸 안고 돌면 아들을 낳는다는 설이 전해져 온다고 한다.

 

 

마곡사 대웅보전은 보물로 1785년에서 1788년에 걸쳐 중수되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을 중심으로 양옆에 약사여래부처님과 아미타부처님이 모셔져 있습니다. 이때의 부처님들은 공간적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三世)를 대표하므로 삼세불이라고도 부릅니다.

 

 

나는 산행지를 아찌한테 모조리 일임을 하고 따라 다니고 있는데 태화산은 나무 쉽게 생각하고 마곡사에서 원점회귀가 가능하다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온거 같다.

들머이가 어디인줄 모르고 있다.  사찰 뒷쪽 둘레길을 따라 오니 여기는 등로는 아닌거 같아 다시 사찰로 돌아 갔다.

 

 

대광보전 옆 관음상

 

 

다시 계곡 돌다리 옆으로 와서 사찰 뒤 길이 보이니 여길 올라 갔다.  등로가 맞는가 물으니 올라와 보라고 한다.

위에 올라가서 보니 길은 확실한데 이정목도 없고 맞나 싶어 망설일즈음 남자분 혼자 올라오시길래 태화산 등산로를 물으니 이곳으으로 오르면 한바퀴 돌 수 있다고 한다.  그래?  맞는갑다 하고 둘이 무작정 오른다.

 

 

길이 사라졌다.  아니다 싶으면 빽해서 돌아와야 하는데 계속 숲을 헤치고 정상 등로를 만나려고 위, 아래로 풀에 뜯기며 한참을 갔다.  아래에서 물소리, 사람소리는 들리는데 길은 없다.  무작정 내려가더라도 절개지를 만날것 같아 맴돌다 도저히 길을 찾을 길이 없어 무조건 아래로 내려 갔다.

나는 의외로 별로 뜯기지 않았는데 아찌는 손가락장갑을 껴서인지 온 손가락에 긁힌 흔적이 역력하다.

콘크리트 길이 보여 쳐다보니 위쪽에 암자가 있어 무작정 또 올라 갔다.

관심에도 없었던 청련암이라는 암자였다.  태화산 등산로 정반대로 올라 정말 사정없이 남의 다리 긁다 내려왔다.

산에 다닌 연수가 얼마인데 이런 황당한 산행을 할 수 있을까?  둘다 하산을 해야 겠다 ㅠ

 

 

기분 꿀꿀한데 여태 남아 화사함을 보여주는 물봉선이 기분좋게 해준다 ㅎ

 

 

인적이 없어 문을 열어 볼 엄두도 나지 않고 살며시 다녀 간다.

 

 

다시 콘크리트 길 따라 내려 간다.

 

 

쥐꼬리망초

 

 

꽃향유

 

 

이삭여뀌

 

 

매자나무과에 속한 남천

 

 

이곳이 내려온곳이다. 

 

 

마곡사 입구 내가 걸었던 반대편으로 내려 와서 다시 마곡사로 간다.

 

 

산행 들머리는 마곡사 경내로 들어가지 말아야 한다.  처음 은적암, 마곡사 보이던 이정목 위 작은 주차장 옆에 들머리가 있다.  머리를 들어 위를 조금만 쳐다 보았어도 이렇게 등산로 안내도가 있는데..  어쩌겠어 고생 사서 하는거지 ㅠ

 

 

할인봉, 나발봉 코스로 간다.

 

 

이렇게 좋은 길을 놔두고 열나 고생을 했으니..  유구무언이다 

 

 

나무 사이로 마곡사 경내를 바라 보고..

 

 

오늘 2코스를 간다.  원래 계획은 3코스 할인봉, 나발봉 다 돌아 원점회귀였는데 주말이라 귀가시간도 생각해야해서..

 

 

할인봉 정상에 도착했다.   김빠져서 의욕 제로였는데 그래도 산길 걸으며 의욕 충전시켜 여기까지 왔다.

 

 

시그널이 잔뜩 달려 있는데 어느 방향인지 모르겠다.  이젠 아는길로만 가기 ㅋ

 

 

나발봉 방향으로 간다.

 

 

여기 나발봉 갈림길에서 나발봉은 포기하고 하산 한다.

 

 

쓰러져 있는 남성을 일으켜 세워서 찍은 천남성 열매

 

 

마지막 산길 내려와 우틀 한다.

 

 

공주 특산물 밤나무 단지를 감싸고 있는 울타리 따라 간다.

거창 밤나무단지는 누가 주어가는 사람이 없는지 막아 놓치 않아 나같은 어리버리가 밤을 주어 왔다.

 

 

김구 선생이 기거 했다는 백련암 130m 밖에 안되는데 아찌가 가길 거부한다.  어쩔수 없이 나도 못갔다.

말은 안해도 아찌도 지쳤을것이다.  

 

 

자주달개비

 

 

불모비림이란 사찰에 불화 또는 불상, 단청을 제작한 사람을 뜻하는 불모들의 비를 모은 숲이라는 뜻으로 우리나리에서는 이 마곡사 밖에 없다고 한다.  대 사찰 마곡사에서 이렇게 글씨를 읽기 힘든 안내판은 교체해야 되지 않을까?

도저히 읽을수가 없다.  눈아퍼..

 

 

춘 마곡을 다시 찾아 차분하게 다시 돌아 보고 싶다.  세조가 썼다는 영산전은 왜 못봤지?  마곡사에 사람이 많아 휘휘 둘러보고 나온 덕택이다.  언제 와도 인파에 밀릴것 같긴 하지만 평일에 오면 좀더 낳을것 같다.

29일 집을 나와 5일 만의 귀가다.   집 나오니 시간이 너무 잘 간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