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기와 오후 선릉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2시에 연락하기로했는데 선릉역에 도착하여 전화를 하니 받지를 않는다
참내 ~~ 이동네 볼일도 없는데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나 싶다
은행 볼일도 보고 이래저래 시간을 떼워도 연락이 없다
할수없이 가까이 사는 다른 친구와 연락이 되어 무작정 길을 나섰는데
돌다보니 봉은사가 보여 한번쯤은 가보고 싶은 호기심이 있던 곳이라 들어가 둘러 보았다
봉은사는 신라 원성왕 10년(794년)에 연회국사가 세웠고, 견성사라고 했다.
1498년 성종의 계비 정현왕후가 성종의 능(선릉) 동편에 있던 이 절을 크게 중창하고 절이름을
봉은사로 바꿨다.
본래는 서남쪽으로 1km가량 떨어진 선릉에 있던 것을 조선 명종 때 보우가 옮겨 지었다.
추사 김정희가 쓴 현판이 걸린 판전에는 화엄경, 금강경 등 13가지의 불경 경판 3,479판이 보관되어 있다.
매년 음력 9월
9일에는 사부대중이 함께 경판을 머리에 이고 법성게를 독송하면서 법계도를 따라 행진하는 정대불사라는 의식이 행해진다.
강남구 삼성동 수도산에 있는 절.
입구 오른쪽에 자리한 부도탑비, 공덕비
대웅전과 3층석탑
대웅전 앞 천도재일 연등
법왕루
법왕루 옆 탱화
영각에는 지장보살이 모셔져 있고, 벽면으로는 봉은사의 개산조인 연희국사를 비롯 조선불교의 중흥조인 보우스님 · 사명스님 · 영기스님 · 영암스님의 진영(眞影)이 모셔져 있다.
영각 아래쪽 작은 부처님
1996년에 완공된 미륵대불은 봉은사의 새로운 성보(聖寶)로서 높이 23m로 국내 최대의 크기이다
독버섯인지 나무에 핀 색깔이 너무나 아름답다
범종각
조선 말의 흥선대원군 비와 추사 김정희의 비가 있다.
흥선대원위영세불망비
판전에는 화엄경소초 81권의 판본과 15종의 불경 등 총3,438매의 경판이 보존되어 있고 진리를 상징하는 비로자나 부처님이 모셔져 있다.
종루에는 범종, 법고, 목어, 운판이 있다
보우당 <2000년 9월에 건립된 보우당은 지하1층 지상2층으로 한국불교 중흥조인 보우선사의 뜻을 계승하기 위해 지어졌으며 대강당의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봉은사 절마당에서 바라본 무역센타 건물
강남 삼성동 봉은사에 가게 되면
입구에 비석같은 비문이 있으면서 뒤에는 스님들의 행장을 적어놓은
비석이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한 스님이 어렸을 때 문둥병을 앓았는데
이 문둥병 소년의 양쪽 부모님은 이미 돌아가셨고누나만이 한 사람 있었다.
이 누나가 결혼할 나이가 차서 시집을 가게 되었는데
시댁에서 문둥병 환자를 어떻게 하겠느냐고 하자
누나가 문둥병 동생을 거두어 준다면 고맙게 생각하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시댁에서 헛간같은 방을 하나 짓고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루 밥 세끼와 갈아입을 옷만 주었다.
그런데 하루는 이 동네에 문둥병 환자들이 무리를 지어서
동냥을 하러 왔다.
마침 시댁에서 시부모가 문둥병 환자들에게 음식을 잘 차려
대접을 잘 하면서, 내가 돈을 넉넉하게 줄테니 저 문둥병 아이를
제발 데려가 달라고 하였다.
그래서 그 아이는 문둥병 무리에게 합류가 되어서 전국을 떠돌아다니게 되었는데
하루는 심원사라는 절을 가게 되었다.
마침 주지스님이 음식을 잘 차려 대접하면서 떠날 때에 문둥병 무리에게
저 나이 어린 아이는 데리고 다니려면 짐이 될텐데
이 심원사 절에 두고 가라고 하였다.
마침 문둥병 무리들도 나이 어린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것이
짐스러웠던 터라 쾌히 승낙하였다.
그때 주지스님은 문둥병 아이에게 지장보살을 부르면서
하루 천배를 절을 하게 하였다.
그렇게 일년쯤 절을 하였는데
꿈에 스님 한 분이 나타나서 얼마나 힘들었느냐고 하면서
온 몸을 어루만져 주었는데꿈을 깨고 나니 문둥병이 깨끗하게 낫는 일이 생겼다.
그 후로는 신심이 나서 지장경을 우리 말로 번역하여 퍼뜨리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는데 하루는 이 스님이 뚝섬 봉은사에 주지로 임명하게 되었다.
이 주지스님이 현재 봉은사 판전에 모셔진 화엄경 대장경 목판을
불사 중이었을 때,마침 서울 한양에 있던 판서의 부인이 일찍 남편을 여의고
홀몸이 되어서 지내고 있었는데 하루는 봉은사에 왔다가 스님에게 반하여
화엄경 대장경을 빨리 마치고 스님과 결혼하여 살기를 원했다.
그래서 부지런히 시주를 하여 화엄경 불사가 원만히 회향하게 되었는데,
회향하기 전날 주지스님은 모든 회향준비를 다 마쳐놓고
밤에 바랑을 지고 혼자 만행을 떠났다.
이튿날 회향식날 반가운 마음으로 사찰에 도착한 판서 부인은
스님이 없어진 것을 알고 산에 올라가 스스로 목을 메고 자살하였다.
이후로 이 스님은 가는 곳마다 우환이 생기고
이 스님이 떠나야 그 사찰에 우환이 없어지곤 하였다.
몇번 이 스님이 머무는 사찰마다 이런 일이 생기자
각 사찰에서는 이 스님이 오는 것을 두려워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하였다.
이 스님이 생각하니 자기가 어렸을 때 문둥병 환자였을 때
문둥병을 낫게 해 준 심원사 지장보살님이 생각났다.
심원사를 찾아간 스님은 죽은 보살의 사십구재를 법답게 지내주기로 마음먹고
어렸을 때 지장보살님을 부르면서 천배를 하던 그 때와 같이
죽은 보살의 사십구재를 위해서 하루에 천배씩을 매일 하였다.
첫번째 칠일 때는 스님의 머리가 아프고 머리가 깨어질 듯이 고통스러웠다.
두번째 칠일 때는 죽은 보살님이 자신은 결코 천도가 되지 않겠노라고
스님과 함께 지옥에 가기로 결심했다는 꿈을 꾸었다.
세번째 칠일 때는 조금 수그러지는 모습을 보였고
사십구재 되던 날은 보살이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내가 잘못했는데 앞으로는 선신이 되어서 세세생생 스님을 보호하고
하는 일이 잘 되게끔 도와주겠다고 하였다.
이러한 글이 봉은사 비문에 뒷면에 적혀있고
판전에는 지금도 당시에 불사한 화엄경 대장경이 목각판으로 모셔져 있다.
법광사 신도들도 지장경 사경을 정성스럽게 하여
동참천도재에 참석하여 법광사 신도님들의 조상님들이 모두 천도가 되면서
조상님들이 법광사 신도님들을 하는 일마다 잘 보살펴주리라고
믿으면서 다음 생에는 다함께 성불하기를 축원한다.
-법봉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