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타

백두대간 지명 바로 찾기

by 아 짐 2006. 1. 13.


민족혼 어린 명산, 본래 이름 되찾는다

 마니산 → 마리산, 계족산 → 봉황산 된다
 일제 때 바뀐 전국의 산 이름이 원래의 우리 이름으로 되돌려진다. 산림청은 지난해 10월부터 ‘우리 산이름 바로 찾기’캠페인을 벌여 국민으로부터 제안받은 잃어버린 우리 산 이름 39건을 바로잡아 해당 자치단체에 넘겼다. 일제는 민족 정기를 말살하기 위해 ‘창씨개명’(創氏改名)과 마찬가지로 이처럼 ‘창지개명’(創地改名)을 했다.
 
 강화도 마니산(摩尼山)도 원래 마리산(摩利山)이다. 이는 곧 머리산을 뜻하는 것으로 뭇 산의 머리가 되는 숭고하고 거룩한 성산을 상징한다. 『고려사』『세종실록』에 마리산(摩利山, 또는 두악頭岳)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현지 주민들도 그렇게 부르고 있다. 단군 성조가 몸소 단을 쌓고 상제님께 제를 올린 참성단이 이 산에 자리하고 있다.
 
 대전의 계족산(鷄足山)은 그 산줄기가 봉황새 형세로 뻗어있어 당초 봉황산(鳳凰山)으로 불렀으나 일제가 닭발로 격하시켜 계족산으로 바뀌었다(정상의 팔각정자는 봉황정으로 부르고 있다).
 
 서울의 북한산은 세 봉우리가 나란히 솟아있다 해서 삼각산((三角山)으로 불렀다(고려 때부터 천여 년간 사용). 그러던 것이 1915년 조선총독부 고적조사위원을 지낸 이마니시 류(今西龍)가 삼각산을 북한산으로 소개하면서 사용한 후 1983년 북한산국립공원 지정과 함께 북한산이란 명칭이 공식화되었다.
 
 한편, 계룡산과 속리산의 최고봉인 천황봉(天皇峰)은 원래 천왕봉(天王峰)이었으나 일제가 일본 천황을 뜻하는 ‘황’(皇)으로 바꾼 것이다.

 

대전(大田)원래 지명은 태전(太田)
 대전의 본래 지명은 태전이다. 역사적으로 태전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게 된 것은 경부선 철도의 개통과 함께 한다고 볼 수 있다. 〈대한매일신보〉와 〈황성신문〉의 기사에 태전이라는 지명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이후 모든 공식자료(대한제국 정부의 공식문서)에 이곳의 공식지명이 태전으로 기재되었다.
 
 그러던 태전이 ‘대전’으로 그 지명이 바뀌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무엇인가? 일본인 전중여수가 지은 『대전발전지』에 그 내막이 나온다. 국권피탈 되기 한 해 전인 1909년 1월의 일이다.
 
 당시 순종황제를 호종하여 태전을 지나던 이등박문 통감이 이곳의 그 주변의 수려한 산세와 이름을 보고는 그 자리에서 아랫사람에게 태전의 태(太)자에 점을 뺀 대전이라 부르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것이다. 이렇게 이름을 고쳐 부르게 한 것은 민족정기를 말살하기 위하여 금수강산 곳곳에 혈자리에다 쇠말뚝을 박거나 경복궁 앞에 ‘日’자 모양의 조선총독부 건물을 지은 것과 동일한 맥락이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왜 이등박문은 태전(太田)을 대전(大田)이라고 부르게 했던 것일까? 한마디로, 이름을 왜곡시킴으로써 그 지세의 기운을 꺽고 나아가 지기(地氣)를 받는 조선사람의 기운을 제어하고자 함이었다. 이렇듯 대전은 조선 침략의 원흉, 이등박문이 강제로 개명시킨 오욕의 이름이었던 것이다.

‘지명은 아직 일제강점기...창지개명(創地改名) 그대로'


녹색연합, 석달간 백두대간 조사결과 22곳이 일제 강점기 하 지명이라고 밝혀

 

광복 60돌을 맞는 올해, 일제 강점기 때의 창씨개명한 이름을 쓰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우리 국토의 지명에는 일제 강점기 하 ‘창지개명(創地改名)’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있는 가운데 이를 바로잡아 일제 잔재를 없애고 민족정신을 곧추세우려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고문헌(사진왼쪽)에 있는 속리산 천왕봉 표기와 현재 천황봉에 있는 표식주의 모습. [사진=녹색연합]
녹색연합은 28일 기자회견을 열고 백두대간에 남아있는 일제 강점기에 창지개명으로 왜곡된 지명들을 바로 잡는 ‘백두대간 우리 이름 바로 찾기 운동’에 돌입했다. 녹색연합이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백두대간에 일제 잔재가 남아 있는 지명은 모두 22곳에 이른다.

이번 조사는 백두대간이 걸쳐 있는 32개 시·군의 산과 봉우리, 마을 이름 등 자연지명을 대상으로 각 지자체와 문화원, 지역주민 현장방문조사와 함께 고문헌과 고지도를 일제 강점기 이후 만들어진 지도와 비교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제가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깎아 내리고 부정하기 위해 행한 대표적인 사례는 지명을 한자 동음이의어나 비슷한 말로 바꾼 것이다. 일제는 주로 원래 왕()이었던 것을 왕()이나 황()으로 변경했다. 속리산 천왕봉(天峰)을 천황봉(天峰)으로, 가리왕산(加理山)을 가리왕산(加理山)으로, 설악산 토왕성폭포(土城)를 토왕성폭포(土城) 등으로 왜곡한 것이다.

여기서 왕(王)과 왕(旺), 황(皇)의 차이는 뚜렷하다. 왕은 임금 또는 군주, 여럿 중에 으뜸을 의미한다. 그러나 황은 천황의 황으로 일본의 천황을 일컬으며, 왕은 일()에 왕()을 더한 것으로 일본 왕을 상징한다.


일제 강점기에 왜곡 된 백두대간 우리 땅 이름 [자료=녹색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