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1.27
왜인지 그리움처럼 가고 싶던 곳 송광사
조계산 북쪽 기슭에 자리잡은 송광사는 합천 해인사, 양산 통도사와 함께 한국
삼보사찰 (三寶寺刹)중에 하나다.
신라말엽 혜린선사가 작은 암자를 짓고 길상사라 부르던 것을 시작으로 보조국사 지눌스님이
정혜결사를 이곳으로 옮겨와 수도, 참선의 도량으로 삼은 뒤부터 승보사찰이 되었다.
보조국사 지눌스님을 비롯한 16국사를 배출했다.
왜 여행을 추운 겨울에 하려 했는지 밤차로 떠나는 여행자는 베낭 짊어지고 바쁜 걸음을 재촉한다.
지금은 명절 앞날이라 차표를 얻기도 하늘의 별따기다
무조건 고속버스 터미널로 갔다
이미 순천행 좌석은 매진 상태다
승차하지 못한 손님의 차표를 얻어볼까하고 한참을 기웃거려도 쉽지 않고 순천행 호객행위를
하는 관광버스 모리꾼들이 창구쪽에서 손님을 끈다
좌석도 좁고 불편하지만 기왕 떠나려 무작정 떠난 길인데 다소 불편해도 선택의 여지가 없다
어렵게 출발한 여행이지만 내가 가고 싶은 송광사가 거기 있기에 난 참아야 했다
새벽에 도착한 낯선 순천
선암사를 먼저 거쳐 조계산 산행을 한뒤 송광사로 하산하려 했으므로 선암사행 버스를 탓다
힘든 산행뒤 도착한 송광사
선암사와 같은 절집이지만 느낌이 많이 다르다
지리산 화엄사와 쌍계사가 다르듯이 규모부터 가람의 배치, 스님들의 행보 모두가 뭔가 다르다
전문가가 아니니 평하기는 힘들고 송광사가 훨씬 웅장하고 굳이 비교한다면 쌍계사 같은 느낌이 들고 선암사는 화엄사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계획대로라면 선암사 들려 송광사를 보고 화순 운주사까지 가고 싶었는데 역시 무리였다
산행 후 오후 4시경에 송광사에 도착했는데 왠일인지 디카의 배터리가 벌써 껌벅거리며
배터리 없음 경고표시를 하기 시작한다
당황스럽다. 내일 무등산 산행도 계획하고있어 여유 배터리까지 모두 충전해왔는데
뭐가 잘못된것인지 두개가 모두 방전 상태다
송광사를 돌아보며 사진도 마음대로 찍을수 없었고 어서 광주로 나가 배터리 충전을 해야했기에
마음이 초조해 진다
얼마나 어렵게 내려온 순천인데 너무나 아쉽다 정말 속상하다 ...
아름다운 송광사의 모습을 찬찬히 돌아보려 메모도 많이 해갔는데 날씨탓인지 대웅전, 승보전,
지장전, 등등... 모두 문이 꼭꼭 닫혀있어서 당당하게 열어볼 배짱도 없고 밖에 보이는 경치만
눈에 담고 디카에 담으며 초조함에 팔딱거리며 그렇게 송광사를 다녀왔다
조계산에서 하사하며 송광사 일주문을 통과하여 들어가야하는데 시간을 절약하려 스님의
허락하에 지름길인 개울 건너 선방을 통과하여 절마당으로 들어섰다
침계루(枕溪樓) = 삶을 뉘이는 곳
앞면 7칸, 옆면 3칸의 2층 누각이다. 원래는 절에 재가 있을 때 영가의 대기장소 등으로 쓰였고, 근대에는 승려들이 이곳에서 목련극(目蓮劇)이나 팔상극(八相劇)을 공연하기도 한다
우화각(羽化閣) : 전라남도 지방유형문화재 제 59호
우화’라는 말은 몸과 마음이 깃털처럼 가벼워져 하늘나라로 떠올라 신선이 된다는 의미이다.
즉 몸과 마음을 가볍게하여서 부처님의 이상세계로 가자는 의미에서 이 다리를 건넌다고 한다.
또한 이곳은 우화청풍(羽化淸風)이라 하여 송광사 내 팔경중 하나로 경치가 빼어나고 그
시원한 바람이 일품인 곳이다.
대웅보전 보물 제 1243호
정면 7칸 측면 5칸의 ‘아(亞)’자(字) 형 구조로 독특한 지붕을 이루고 있다
비사리구시 = 송광사 3대 명물 중 하나이다
비사리구는 우선 크기가 보는 이를 압도한다. 1742년 남원 세전골에 있었던 큰 싸리나무가
쓰러지자 이것을 가공하여 만들었다고 전해지며 송광사 대중의 밥을 담아 두었던 것으로
쌀
7가마분(4천명분)의 밥을 담을 수 있다고 한다.
*송광사 3대 명물 = 비사리구시, 능견난사, 쌍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