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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두타산(1,355m),쉰움산(五十井688m)

by 아 짐 2006. 9. 30.

 100대 명산 (산림청 선정)   

o 무릉계곡 등 경관이 아름다운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o 삼화사(三和寺), 관음암(觀音庵), 두타산성(頭陀山城)이 있음. 바위에 50여개의 크고 작은 구멍이 패여 산이름이 붙여졌으며, 예로부터 기우제를 지내는 등 토속신앙의 기도처인 쉰움산(五十井山)이 유명

일  시 : 2006.10. 1

코  스 : 천은사 - 쉰움산 - 산성갈림길 - 두타산 - 박달령 - 무릉계곡 - 주차장

참가자: 자이언트산악회

 

<동해시와 삼척시의 경계선상 백두대간의 주능선에 있는 청옥산 및 두타산과 무릉계곡은 산수가 겸비된 동해안 4대 명승지

(설악산과 천불동계곡, 내연산과 보경사계곡, 청옥. 두타산과 무릉계곡, 노인봉과 청학동소금강)의 하나이다.

쉰음산과 두타산. 청옥산을 잇는 약 7Km의 능선에는 수림이 울창하고 쉰음산에서 두타산까지 약간 오르막길로 이어지다 두타산에서 청옥산 구간은 완만한 내리막길로 이어진다.

쉰음산 정상의 너럭바위에는 구멍이 움푹움푹 파여져 있고 주변은 기암으로 둘러싸여져 있는데 굿 터로서도 유명한 곳이다.

두타산 정상에 오르면 3개의 봉우리 중 전망이 제일 좋은 지점인데 동해 바다가 장쾌하게 바라다 보이고 쉰음산을 내려다보는 경관 또한

좋다. 그리고 청옥산 정상은 수림에 가려 조망이 좋지 않다.

주변에는 빼어난 계곡이 많은데 그 중에서도 무릉계곡이 제일 수려하다. 무릉반석에는 수많은 시인 묵객들이 남긴 시구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조선 선조때 4대 명필가고 알려진 양봉래의 "武陵仙院中坮泉石頭陀洞天"이라 깊이 음각된 글귀가 시선을 끈다.> -펌-

 

< 동해휴계소에서 바라다 본 동해바다 >

산을 찾는데 이렇게 파란 바다를 볼 수 있다니.. 잔잔한 호수와 같은 바다에 두어척의 배가 떠다니고

아침 햇살에 바다와 하늘과 너무나 멋진 모습이다

 

고려시대 최대 수난기에 살았던 사람 이승휴,
그는 지행합일정신(知行合一精神)과 민족의 자주적인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삼척의 옛 고도(古都) 실직(悉直)의 두타산(頭陀山) 천은사(天恩寺)에서 민족의 역사서이며 서사시인 "제왕운기(帝王韻記)"를 지어 임금에게 바치면서 자주적이고 진취적인 민족기상으로 나라를 보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려사"에 의하면 이승휴는 경산부(京山府;지금의 성주) 가리현(加利縣)사람으로 되어 있으나, 그가 가리현에 어떤 실제적 연고 관계가 있었는지 전혀 알 수 없다. 그의 가계는 물론 부친도 일찍 여의였다고 했을 뿐이다.


<제왕운기>

고려시대에 이승휴가 1280년(충렬왕 6년) 권문(權門)과 부원세력을 비판했다가 정계에서 쫓겨나 강원 삼척의 두타산 천은사(天恩寺)에서

은둔하던 중 7언시(七言詩)와 5언시로 총 3,620자로 저술하여 1287년에 왕에게 올린 역사책이다. 보물 제895호이며 목판본이고 2권 1책(상, 하)로 되어 있다. 현재 동국대학교 도서관 소장하고 있다. 권수에 1287년(충렬왕 13)에 쓴 이승휴의 인표(引表)가 있고 권미(券尾)에

정소의 발문과 이원, 안극인의 후제(後題)가 있으며 그 뒤에 간기(刊記)가 있다. 상권의 제18장과 하권의 제6, 7, 16장이 떨어져 나간 것을

필사하여 보충하였지만 간기와 발문 및 후제가 있어 인쇄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상권은 반고(盤古)로부터 금나라까지 중국의 역사를 칠언시로 읊었으며 하권은 1. 2부로 나누어 단군부터 충렬왕까지의 역사를 서술했다. 1부 <동국군왕개국연대>는 전조선. 후조선. 위만조선. 한사군. 삼한. 신라. 고구려. 백제. 후고구려. 후백제. 발해의 사적을 칠언시

1,460언으로 엮었다. 2부 <본조군왕세계연대>는 고려 건국부터 충렬왕때까지의 역사를 오언시 700언으로 기록했다.

특히 단군을 민족의 공동시조로 삼은 점은 본서의 가장 큰 특징이다. 원래 부여. 고구려. 신라 등은 각각 자신의 시조설화를 갖고 있었지만 그는 시례(尸禮). 고례(古禮). 남부옥저. 동부여. 예맥부터 삼한. 신라까지 모두 단군의 후예라고 했다. 이것은 사학사상 매우 중요한

인식의 전환으로 발해도 단군의 후손임을 시사하는 것이다. 실제로 저자는 <동국군왕개국연대>에 발해를 수록했는데 이는 이 시기의

사서가 발해에 대해 소홀했던 것에 비하면 대단히 획기적인 일이다. 그리고 그 주에 단군신화를 소개했는데 '삼국유사'와 달리 단군은

환인의 아들 환웅이 손녀에게 약을 먹여 사람으로 만든 후 단수신(檀樹神)과 혼인하여 단군을 낳았다고 했다.  <두산백과사전>참고

 

 

< 쉰움산 들머리에 있는 천은사  >

< 쉰움산 경내의 북 >

매년 10월 초순 제왕운기의 저자인 동안거사 이승휴 다례제를 거행하고 있다.

천은사는 지방기념물 제60호 

천은사 뒤편을 돌아 쉰움산을 향해 한오름 한 후 전망하기 좋은 바위에서 숨을 돌리고 경관을 둘러보니 바위와 소나무의 조화가 참으로

아름답다.

오프라인 산악회 쫓아 산행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라 혹여 뒤쳐져 민폐를 끼치게 될까봐 부지런히 대열에 끼어 오르다 보니 땀이 흐르는

정도가 아니라 방울지어 뚝뚝 떨어진다.

 

아무리 힘들어도 멋진곳이라는데 다시 되돌아 나와도 보고 와야 직성이 풀리지..

소나무 옆의 자그마한 구멍이 혹시 굴인가 하고 들여다 보았더니 굴은 아닌데 바위 천정에 진흙으로 아주 야무지게 벌집인지 반타원형으로 잘 지은 집한채가 매달려 있다.

 

 

바라보는 경치가 그만이라는 쉰움산에 당도하니 오십정 이름에 걸맞게 크고 작은 구멍이 수도 없이 많이 있다.

구멍에는 이렇게 건조한 날씨에 물도 고여있고 거기 꼬리를 흔드는 올챙이도 놀고 있었다

비바람에 의한 퇴화작용으로 생겨났다고 하니 자연의 힘이 정말 대단하다

 

 

五十井 :쉰음산은 산정에 수 천 사람이 앉을 만큼 넓고 편편한 반석이 있고, 기암괴석이 솟아 있는 반석위에 원형의 크고 작은 우물이

50개가 있어 이름을 오십정이라 붙인 것이다.

오십정에서 바라본 산세가 마치 협곡과 같아 등산객들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어찌나 땀을 많이 흘렸는지 마치 물에 빠진 새앙쥐의 모습이다.

 

오십정 옆에는 굿터가 있어서 바위에 허연 헝겊을 동여매어 놓기도 하고 음식을 차려 놓은 흔적도 있고 어떤 아저씨는 축문 같은것을 읽고 

있고 암튼 민간신앙의 단편을 본듯 싶다. 이곳은 굿터 옆에 또 다른 물무덤들..

 

쉰움산에서 두타로 향하며 바쁜 와중에 손에 카메라가 있으니 어찌 바쁘다고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을 외면하고 걷기만 할 수 있으리요..

 

등산로가 온통 알롤달록 단풍의 축제가 시작되었다.

 

쉰움산에 두타를 바라볼때 산정이 구름속에 잠겨있었는데 두타산 정상에 가까워 올수록 안개가 짙고 비도 한두방울씩 떨어지며 마음에

아쉬움 한자락을 깔게 만든다.

동해 바다도 보이고 아래 내려다 보이는 경치가 절경이라는데 아무것도 볼수가 없었다.

 

 

더위를 많이 타서 반팔을 입고 산행했는데 산정에 도착하니 안개와 가랑비가 시원해서 좋다고 쉬려니어서 잠바 꺼내 입으라고 성화다.

땀좀 식히고 입겠다고 우겼으나 막무가내..

내가 얼마나 어리석은지 금방 들통나고 말았으니.. 못이기는척 겉옷을 입었음에도 등에 땀이 식으며 금방 한기가 느껴졌다. 그래서 자고로

어른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고 했나?..

 

무릉계곡으로 하산하기 위해 청옥산 방향으로 진행하여 박달령에서 내려서기로 했다.

 

박달령에서 무릉계로 내려가는 길은 완전 깨어진 돌조각 처럼 생긴 자갈밭이라 걷기가 어찌나 불편하던지 가파른 내리막에 발밑마져

미끄러워 많이 조심스럽고 나이 드신 분들은 무릎 오늘 다 절단난다고 하소연을 하신다. 사실 내 무릎도 조금 뻑적지근 했으니 오죽했으랴..

 

박달계곡에서 처음 만난 계곡의 작은 소에서 잠시 찬 물에 손도 담궈보니 물은 차고 맑기가 靑玉과 같다

 

< 무릉계의 암릉 > 

 

하산할 시간이 바쁘지만 산행후 족욕정도는 해야하지 않을까.. 물이 너무나 차다

맑고 차가운 무릉계곡에 발을 담그니 오늘 하루의 피로도 씻기우고 내가 무릉계의 천사 같다 (착각은자유) 조금 내려가면 학소대, 쌍폭 등등.. 많이 있지만 단체행동이니만큼 장군봉이며 관음암이며 모두 지나쳐 아쉬움을 남긴다.

 

무릉반석 끝지점 돌다리 건너 삼화사, 이 절집은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의 말사이다. 642년(선덕여왕11) 신라시대

자장(慈藏)이 당나라에서 귀국하여 이 곳에 절을 짓고 흑련대(黑蓮臺)라 하였다. 864년 범일국사가 절을 다시 지어 삼공암(三公庵)이라

하였다가 고려 태조 때 삼화사라고 개칭하였으며 많은 부속 암자를 지었다

 

< 무릉반석 > 

산세가 웅장하니 계곡도 깊고 아름다운 폭포가 많이 있다. 모두 찬찬히 돌아볼수 없어 아쉽지만 이렇게 아쉬움을 남겨야 다음에 다시 찾을

명분이 있지 않을까..

매표소 옆 변강쇠약수터에서 작은 물병에 약수를 받으며 오늘 하루 산행을 마쳤다.

이 약수를 먹고 변강쇠와 옹녀로 재 탄생하는것은 아닌지 ㅎㅎ 

 


교통편 : 동해시 고속버스터미널 앞 시내버스정류소에서 약 34분 간격으로 있는 무릉계행 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리면 된다.

            서울에서는 청량리역에서 23시 30분 열차를 이용하여 동해역에서 내리면 등산 후 당일 귀경할 수 있다.

 


9월에 떠난 사랑

(EMB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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