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08. 03
완도항과 주도 상록수림 (천연기념물 28호) :추섬이라고도하며 무인도이다. 섬 한가운데 성황당이 있고 지금은 방문객이 많아 산림이 회손되어 출입을 금하고 있다.
청해진유적지 장도와 갯벌의 모습
물이 빠지면 길이 열리고 물이 차면 다시 섬이되는..
장좌리 당제 및 당굿 : 무형문화제 28호, 예능보유자 : 김봉도
당제는 국가 사적 제 308호인 장도에서 베풀어지는 제의이다. 이 당제는 전남의 다른지역 당제나 당산제에서는 흔치않은 장보고대사, 송징장군등 4위의 인격신을 모시는것이 특징이며 매년 정월 대보름에 제를 올리고 있다.
당제를 모실때 행하는 농악은 1차굿부터 12차 굿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옛날 군대의 진법 형식을 띠고 있어 군고악이라고도 불리운다
이 군고악은 어느시대부터 유래되었는지는 알수없으나 마을사람들은 장보고 대사가 돌아가신 뒤 장보고 대사와 군사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한 추모행사로 오늘에까지 전래되고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김봉도는 상쇠였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당제와 당굿의 가락을
체계화 하였다.
당에서 귀국한 장보고가 서남해안에 출몰하던 당의 해적활동을 근절시킬 목적으로 흥덕왕에게 청해에 군사를 주둔시킬 것을 주청하여 허락을 받아 설치했다. 당시 청해진에 배치된 1만 명의 군사는 장보고 개인이 모집했을 것으로 짐작되는데, 이는 장보고의 직함이 다른 군진의 책임자와는 달리 '대사'(大使)라는 특별한 칭호였던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그는 청해진을 근거지로 서남해안의 해상권을 장악하고 중국에는 견당매물사(遣唐賣物使), 일본에는 회역사(廻易使)를 보내는 등 활발한 해상무역을 전개했다. 일본의 승려 엔닌[円仁:794~864]의 〈입당구법순례행기 入唐求法巡禮行記〉에는 최훈(崔薰)이라는 인물이 청해진 병마사(兵馬使)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청해진은 신라 지배체제의 외곽에 위치한 일종의 해상왕국과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이렇게 축적된 부와 군사력을 배경으로 장보고는 중앙정부의 권력전에도 관여하여 왕위계승전에 패한 김우징(金祐徵)과 김양(金陽)을 받아들인 뒤 지원군을 보내어 민애왕을 죽이고 김우징을 신무왕으로 즉위시켰다. 그러나 딸을 문성왕의 차비(次妃)로 들이려고 한 시도가 진골귀족의 반대로 무산되자 그는 중앙정부에 반기를 들었다가, 846년(신무왕 8) 중앙정부에서 보낸 자객 염장(閻長)에게 살해당했다. 그뒤 이창진(李昌珍) 등의 잔여세력에 의해 일본에 무역선을 보내는 등 활동을 계속했으나 851년에 청해진을 파하고 그 주민을 벽골군(碧骨郡:지금의 김제)으로 이주시키면서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다. 청해진이 설치된 곳은 완도 본도에서 170m 정도 떨어진 장도(將島)인데 섬 둘레를 외성과 내성으로 축성한 흔적과 경사가 완만한 섬의 남서쪽에는 목책(木冊)을 설치했던 흔적이 남아 있다. 현재 사적 제308호 '장도청해진유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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