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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녹우당 (고산윤선도유적지)

by 아 짐 2007. 8. 8.

2007. 08. 04

 

 

이곳 녹우당은 조선조의 문신이요 국문학상 대표적인 시조시인으로 일컫는 윤선도(1587~1671)선생의 고택이다. 선생의 자는 약이. 호는

고산 또는 해옹이다. 선생은 광해 4년(1612)에 진사가 되고 4년 후 성균관유생으로서 권신의 횡포를 지탄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벽지에 유배되었다. 광해 15년에 인조반정이 일자 석방되어 의금부도사에 취임하였으나 곧 사직하고 이곳 향리에서 학문에 정진하였다. 인조 6년(1628) 별시문과의 초시에 장원한 후 봉림과 인평대군의 사부가 되고 한성서윤과 예조정랑을 역임하는 등 수차에 걸쳐 나라에 중용되었다. 병자호란 후에는 주로 완도의 보길도와 해남의 수정동, 금쇄동에 은거하여 자연에 들어 원림을 경영하고 산중신곡과 어부사시사 등 불후의 명작을 이루어 조경문화 및 국문학의 발전에 큰 공을 남겼다. 그 사이 효종의 부름으로 벼슬에도 나아갔으나 당쟁으로 다시 유배당하는 등 많은 파란을 겪다가 현종 12년에 85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였다.

숙종원년에 신원되어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시호를 충헌이라 하였다. 이곳 유적지에는 선생이 시문에 열중하던 해남윤씨 종가의 고택과

녹우당(사적 제481호), 윤고산 수적관계문서(보물 제482호), 지정 14년 노비문서(보물 제483호)등 소중한 유물이 있다. 뒷산 중록에 있는

비자나무숲(천연기념물 제241호)은 약 500년전 선생의 선조가 이루어 놓은 수림으로 알려져 있다.

 

 

 

 

 

 

 

 

 

 

 

 

 

 

 

 

 

 

 

 

 

 

 

            오   우   가

 

내 벗이 몇인가 하니 수석과 송죽이라

동산에 달 오르니 그 더욱 반갑구나

두어라 이 다섯밖에 또 더하여 무엇하리

 

구름빛이 맑다하나 검기를 자주한다

바람 소리 맑다 하나 그칠때가 많은도다

맑고도 그칠 때 없기는 물뿐인가 하노라

 

꽃은 무슨 일로 피면서 쉬이지고

풀은 어이하여 푸르는 듯 누르나니

아마도 변치 않음은 바위뿐인가 하노라

 

더우면 꽃이 피고 추우면 잎 지거늘

소나무야 너는 어찌 눈서리를 모르느냐

지하의 뿌리 곧은 줄을 그것으로 아노라

 

나무도 아닌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뉘 시키며 속은 어이 비었느냐

저렇고 사시에 푸르니 그를 좋아하노라

 

작은 것이 높이 떠서 만물을 다 비치니

밤중의 광명이 너만한 이 또 있느냐

보고도 말 아니하니 내 벗인가 하노라

 

-1642년 금쇄동에서 지은 작품 산중신곡 중 오우가 수록-

 

     < 고 산 유 물 관 >

 

*고산윤선도 수적관계문서 : 보물 제 482호

*금쇄동기(金鎖洞記) : 보물 제 482호

 1640년(인조18년) 고산 윤선도 선생이 은거생활했던 금쇄동(해남군 현산면 구사리)에서 지은 작품

*산중신곡(山中新曲) : 보물 제 482호

 고산선생이 1642년(인조 29년)56세에 지은 친필가첩(親筆歌帖) 여기에는 그의 시가문학중 가장 대표작으로 알려진 오우가(물, 돌, 소나

 무,  대나무, 달)등 시조 19수가 실려있다.

*노비문권(奴妃文券) : 보물 제 483호

 고산선생의 8대조 광전이 지정 14년(1354, 고려공민왕3) 아들에게 노비를 허여하는 문서로서 고려때의 개인의 노비문서로는 우리나라에

 단 하나 남아있는 문서이다. 탐진감무(지금의강진군수)가 상급관청에 상신한 것이다. (고려때 사찰노비는 많이 남아있음)

*은사첩(恩賜帖) : 보물 제 482호

 왕이나 왕비등이 고산선생에게 물품을 하사할 때 보낸 물목기 89점을 2권(건(乾)41점, 곤(坤)48점)으로 제책

*예조참의임명장 : 고산선생이 66세때 받음

*시호교지 : 숙종5년(1679) 8월 충헌(忠憲)이라 시호

*어부사시사

 고산선생이 1651년(효종2년) 65세에 지은 시조작품

 봄, 여름, 가을, 겨울 각 10수씩 전체 40수로 되어 있으며 완도 보길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소산 양자 예조입안문서 : 보물 제482호

 고산선생이 해남윤씨의 대종을 잇기위해 8세때 큰 집으로 양자 입계된 후 1602년 6월 2일 16세때 예조에서 입안을 해준 문서로 지금의

 공증과 같다. 이 문서에는 예조판서를 비롯 관련 보직자의 수결(手決)이 되어있어 그 당시 모든 문서에 수결제도가 있었음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공재자화상 : 국보 제240호

 공재 윤두서(1688~1715) 선생은 고산의 증손자로 서화, 승화 등에 능하시고 천문지리 금석학, 병가서에 식견이 넓었다.

 조선중엽의 유명 화가 삼재(三齋) 공재, 겸재, 현재 중의 한분으로 국보 제 240호인 자화상을 비롯 조선지도와 일본지도, 해남윤씨가전고

 전화첩(海南尹氏家傳古畵帖) 등을 남겼으며 다산 정약용의 외증조부이다.

*수룡도(水龍圖) : 보물 제481호

 여기에 그려진 용은 수중룡이다. 수중룡은 우리의 토속적용신앙과 결탁된 수신(水神)으로서의 용으로 보인다.

 주목되어지는 것은 용트림으로 일어나는 물거품표현기법이다. 이러한 도식적기법은 고려 사경변상화(寫經變相畵)에서부터 유래되어

 도자기문양에까지 사용되어진것으로 사료된다.

*나물캐는 두여인 : 보물 제481호

 민속화로서 봄나물을 캐는 두 여인의 모습. 서민아낙들의 의생활을 짐작하게 한다.

 두사람중 한 여인은 쑥을 찾느라고 고개를 사방으로 돌아보고 있고 한 여인은 허리를 구부리고 방금 찾아낸 쑥을 캐려고 움직이고 있다.

*방성도(方星圖)

 공재 윤두서 선생이 사용한 천문에 관한 도서

*백마도(白馬圖) : 보물 제481호

 공재의 대표적 작품으로서 말이 비대하면서도 단단하게 묘사되고 정지된 상태에서 뒷다리를 살작 들어올리는 조그만 변화를 매우 생동

 감있게 표현하고 있다.

*일본여도(日本輿圖) : 보물 제481호

 지금부터 300여전 전에 공재 윤두서 선생이 48명의 첩자를 일본에 보내 일본의 지형, 거리는 물론 각지방 부호들의 집까지도 상세히

 파악하도록 하여 듣고 그려 놓은 지도하고 전한다.

*동국여지지도(東國輿地之圖) : 보물 제481호

 공재 윤두서 선생이 그린 조선후기(1710)의 우리나라 지도이다. 훗날 김정호에 의해 제작된 대동여지지도 보다 151년이나 앞선 지도임

 (후손들이 잦은 국난으로부터 지도를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항아리에 넣어 보관하다가 뒤늦게 세상에 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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