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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두륜산703m(전남 해남)

by 아 짐 2007. 8. 6.

 100대 명산 (산림청 선정)   

o 한반도의 최남단 해남반도에 솟아 있는 산으로서 왕벚나무의 자생지가 있으며, 다도해를 조망하기에 적합하고 도립공원으로 지정(1972년)된 점 등을 감안하여 선정
o 봄의 춘백, 여름의 녹음, 가을의 단풍, 겨울의 동백 등으로 유명하며 유자(柚子), 차(茶)의 산지로 알려져 있음. 보물 제320호인 삼층석탑을 비롯하여 많은 문화재를 보존하고 있는 대흥사(大興寺)가 있음

일 시 : 2007. 08. 04

코 스 : 매표소- 대흥사- 북암- 오심재- 노승봉- 가련봉- 두륜봉- 구름다리- 진불암- 표충사- 매표소

 

두륜산은 한반도 남쪽 끝자락 전남 해남군 삼산면, 옥천면, 현산면에 걸쳐있다. 북쪽으로 월출산과 무등산이 있고 서남해안 일대를 전망할 수 있어 전남의 명산으로 꼽힌다. 지리적 위치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분지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겨울에도 피어나는 동백을 비롯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왕벚나무, 비자, 삼나무 등 풍부한 삼림이 분포한다. 가련봉(703m0과 두륜봉(630m)을 비롯 고계봉, 노승봉, 도솔봉, 혈망봉, 연화봉 등이 두륜산을 이룬다

 

입장료 2,500원 절내 계곡이 유원지화되어있어 차량이 일주문까지 들어갈수 있다. 우린 그것도 모르고 매표소 밖에 숙소앞에 세워놓고 긴

아스팔트 길을 걸었다. 아침에는 산책로로 걷는데 벌레가 어찌나 극성을 부리던지 하산시는 도로로 걷는데 다리의 피곤이 배로 느껴진다

우측의 경내버스도 무료로 운행하고 있다. 도보시 일주문까지 20여분이상 걸어야 한다

 

 

아침 식사도 못하고 7시반에 산행을  시작 했다. 이시간이면 시원해야하는데 습도가 높아 스치는 바람이 끈적거려 덥게 느껴진다

하지만 아무도 없는 조용한 길을 혼자 걷는다는것은 기분좋은 일이다

 

아스팔트가 싫어 오른쪽으로 조성된 산책로로 들어섰다. 숲이 우거져 산책로가 어둡다. 거기에 극성맞게 달라드는 모기와 날벌레들..

출렁다리를 건너 결국은 그곳을 탈출하고 말았다

 

 

피안교

이 다리를 건너 번뇌를 버리고 깨달음을 얻을수 있다면..

 

대흥사 일주문

대흥사는 신라 법흥왕 1년(544) 아도화상이 창건했다. 이후 서산대사가 중창하여 선종의 총 본산이 되었다. 이곳에서 13개 종사, 13대 강사가 배출되었고 많은 보물과 유적이 남아있으며 조선후기 볼교문화권의 산실이었다.

  

대흥사 부도전

부도(浮屠)는 큰 스님의 사리(舍利)나 유골(遺骨)을 모신 탑이며 그분의 행적(行跡)을 살필 수 있어 당시의 사회상(社會相)이나 역사적 사실까지도 알아낼수 있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이곳 대흥사 부도전(大興寺 浮屠殿)에는 부도 54기와 탑비 27기가 있으며 호국의병대사인 서산대사를 비롯하여 그의 문도들 중 초의 ·

호암 · 상월 등 13분의 대종사(大宗師)와 만화 · 원호 · 연예 · 광열 등 13분의 대강사를 위시하여 그 외 고승들의 사리가 안치되어 있다

 

오후에 비가 올것이란 일기예보가 있어 일찍 서두른다고 움직였는데 시커멓게 구름이 몰려온다. 오전에 산행을 마쳐야 하는데...

  

대웅보전을 둘러본뒤 표충사 좌측으로 북암으로 향한다. 09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09시 40분 북미륵암 도착 

날씨가 더워 그리 가파르지 않은 등산로임에도 속도가 나질 않는다. 함께 올라오던 대여섯명의 남녀 그룹이 있었는데 이들은 여기에서 우측으로 가는 바람에 또 둘이 올라갔다

북암 삼거리. 오심재-가련봉으로

 

계단 옆의 텃밭에서는 스님이 밭을 일구고 조용하고 한적한 산사의 모습을 보는것 같다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되었다고 한다 

거대하면서도 온화한 모습의 여래상이 정감있게 보인다. 구전에 의하면 음각의 남미륵은 남자가 조성했고 양각의 북미륵은 여자가 조성했다 하며 이들은 모두 제석천이 하강하여 남북에 각각 조성한 것으로 음양각으로 한 것은 음양의 조화를 나타내기 위함이라고 한다.
남미륵암은 터에 전각만 남아있다

 

북미륵암과 남미륵암은 조성과 관련한 전설이 내려온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옛날에 하늘에서 죄를 짓고 쫏겨 난 천동과 천녀가 있었다. 그런데 두 사람이 다시 하늘에 다시 올라갈 수 있는 방법은 하루만에 바위에다 불상을 조각해야 하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하루만에 불상을 조각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고 해가 지지 못하도록 천년수 나무에다 해를 매달아 놓았다. 그리고 천동은 남쪽 바위에다 입상의 불상을 조각하였고 천녀는 북쪽 바위에 좌상의 불상을 조각하였다. 그런데 천녀는 앉아있는 좌상의 불상을 조각하였기 때문에 입상의 모습을 조각한 천동보다 먼저 조각할 수 있었다.
불상의 조각을 다 마친 천녀는 먼저 하늘에 올라가고 싶은 욕심이 생겨 그만 해를 매달아 놓은 끈을 잘라 버렸다. 해가 지자 천동은 더 이상 불상을 조각할 수 없게 되었고 결국 하늘에도 올라갈 수 없게 되었다는 얘기다.

 

그럼 이 북암은 그 천녀가 완성했다는 설이네 ㅎㅎ 이런 여자의 마음이란...

 

 

이곳에 오니 여러명의 등반객을 만나니 조용한 산중에 함께 동행할수 있을까하여 반가운 마음이 든다

 

10시 오심재 도착 

오심재에서 바라본 고계봉

 

헬기장인듯 평평하고 넓은 초지가 형성되어 있다.

 

다시 산행 시작.. 우리부부, 아들과함께하는 부부가 함께 했다. 오름이 조금씩 가파라 지기 시작한다

 

노승봉의 모습

 

10시 30분 노승봉아래 헬기장

누가 벌집을 건드린것인지 아님 뭐하는것인지 시커먼 땅벌이 헬기장을 온통 메우고 있다. 이곳을 지나가야하는데..

아들을 데리고 온 부부가 건너기를 망설인다. 건드리지 않으면 벌은 안달라든다고 하더라며 가기를 제촉하며 내가 먼저 앞섰다

무사히 다 건너왔는데 에고이를 어쩌.. 아저씨가 건너에다 지팡이를 놓고 왔다고 다시 건너야 한다네..

아저씨가 가는것을 보고 우리는 앞섰다

 

 

10시 40분.. 헬기장에서 10분 오르니 드디어 암릉지대가 나타난다. 조망이 좋고 시원하다

 

암릉 사이 노란 원추리가 많이 피어있다 초록색의 나무 틈새의 노랑 원추리의 노랑빛이 퍽이나 아름답다

 

 

 

이정도 오름이야 일도 아닌것을 어디서 왔는지 한쌍의 젊은 커플이 오르기를 멈칫한다. 되돌아갔는지 올랐는지..

돌봐주고 오면 좋을것을 비가 올까봐 맘이 바빠 우리끼리 휘리릭~~ 올라오니 쪼매 미안타

 

 

 

노승봉에 올라 바라본 내가 가야 할 봉우리들.. 멋있다. 그리고 조금은 두렵다. 바람이 많이 분다. 내림이 가파르지만 로프와 쇠고리로

안전 시설은 잘 가추어져있어 위험하진 않다. 안개가 몰려오고 바람이 거세진다. 정상석과 평평한 바위지대가 여럿이와서 쉬기 적합한 장소인듯한데 우린 도망오다시피 그 자리를 떠났다. 하산하는 암릉이 겨울에는 꽤나 위험할듯..

 

아래로 내려오니 바람은 잦아들었다. 10시 57분 

11시 05분 가련봉 정상에 도착했다. 바람에 놀라 정상에 올라 바위에 기대 누워버렸다 

이러고 있을때가 아니다 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서있기 조차 버겁다. 일단은 바위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

아찌는 비오기 전에 어서 내려가자고 앞으로 나선다. 서있는데 바지가랑이 펄렁이며 나는 서있는것조차 두렵다. 다시 돌틈으로 들어와 바람이 지나갈때까지 간식을 먹으며 잠시 시간을 보냈다. 성난 바람이 다시 잔잔하다. 얼른 이곳을 내려갔다

 

뒤돌아 노승봉을 바라보니 함께했던 일가족이 거기에 있다. 걱정이 앞선다. 아이와 함께 저곳을 내려와 여기까지 올수있을까하고..

금방이라도 빗줄기를 퍼부을듯 시커먼 구름과 운무가 사정없이 몰려든다. 무섭다는 생각밖에는 안든다

 

11시 20분..잠시 바람이 숨죽이는 틈을 타 가파른 철재 사다리를 내려왔다. 반대편에서 휴가철이라 그러는지 유난히 부부팀이 많은데 올라오는  이들에게 바람이 너무 거세 위험하다고 당부를 남기며 우린 발걸음을 서두른다. 저곳 두륜봉으로..

 

길지 않은 구간이 너덜지역으로 되어 있다 

 

 

만일재에서 바라본 두륜봉 

만일재는 넓은 초원지대 같다 오심재처럼 넓고 평평하진 않치만..

 

 

 

12시 구름다리 도착. 코끼리바위라고 한다는데 저 건너는 다리가 아마도 코끼리 코인듯.. 나무가 우거져 모양잡기가 어렵다

 

 

가련봉, 노승봉을 뒤돌아보며..

이곳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쉬고있는데 세명의 일가족이 도착했다. 포기하지 않고 따라다니는 아들의 모습이 참으로 대견하다

 

정상 사진도 하나 찍고 하산길을 택하며 정상석 좌측으로 희미한 길이 보이길래 내려가 보았다. 조금 내려가니 산악회의 노란 꼬리표도 보인다. 이곳이 길은 맞는 모양이구나하고 둘은 계속 내려갔다. 길은 희미하고 점점 길이 않좋다. 몇개의 바위를 오르 내리며  다가간곳은

결국 벼랑이었다.  클라이머들이 다니던 길이었을까? 오며 생각하니 아예 그 꼬리표를 떼어놓고 올것을 잘못했다. 뒤돌아 오르다 길을 잃어 한 20여분간은 숲을 헤매고 다니며 알바를 해야만 했다. 다시 제자리로 올라와 휴~~ 안도의 한숨을 쉬며 다시 하산..

 

 

 

 헤매느라 내가 가고자 하는 진불암 방향으로 쉽게 찾아온것 같다

 

진불암 가는길.. 1시 30분 진불암 도착 

진불암 입구의 만개한 수국 

 

진불암 응진당

진불암은 정확한 창건연대를 알지 못하며 대둔사지」에는 1630년(인조8)에 수월 극현(水月克玄)대사와 덕호(德浩)가 함께 중건했다는 기록이 있어 이보다 훨씬 이전에 창건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진불암은 응진당, 향적당, 요사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응진당은 맞배지붕에 앞면 3칸, 옆면 2칸이며 안에는 불상으로 석가부처님과 28나한상, 문관상이 있다. 또한 불화로는 삼세후불탱화를 비롯해서 칠성탱화 · 신중탱화 · 산신탱화가 있다.

 

진불암에서 북암으로 가는길

 

 

향적당 옆의 우물에서 시원한 약수를 떠서 먹었다. 스님 말씀이 이 절이 1200년 되었으니 내가 1200년된 약수를 먹은것이나 진배없다고..

괜히 속이 시원한것 같다. 가지고 있던 물통의 물을 모두 비우고 통에 약수를 채웠다.

가만히 보니 내가 산사에서 마시고가면 족할것을 담아가느라 욕심을 채운것은 아닌지 괜시리 미안시러워 진다

 

 

진불암에서 내려와 대웅전 방향으로 하산

 

이곳이 씻을수있는 계곡의 마지막 부분일것 같아 물에 발을 담궜다. 오늘 하루 바람과 금방이라도 쏟아부을것 같은 먹장구름에 놀란 마음도 모두 시원해진다. 무사히 안전하게 하산했다는 안도감과 함께.. 모기는 왜이리도 많은지 잠깐 발담근 사이 종아리 등짝이 울퉁불퉁하다.

 

 

 

 

 

 

 

조선 현종10년에 건립됐으며 임진왜란 당시 활약한 세 화상의 영정을 봉안하고 있다. 정조대왕의 친필 표충사

 

 

1631(인조9)에 당대의 명문장가 장유(張維)가 지은 서산대사의 비문을 새겨 비석을 세웠다.

 

 

 

  

 

유선여관  -서편제의 주요장면이 촬영된 장소이며 유선여관은 예전부터 국악인들이 자주 모여 산공부를 하거나 소리판을 벌였던 해남

국악의 유서 깊은 곳으로도 의미가 깊다.

 

일주문에서부터 유선여관 근처에까지 이런 아름드리 나무 숲에 텐트를 치며 야영을 하는 모습을 많이 볼수있다. 시원한 계곡에서 들리는

아이들과 젊은이들의 웃음소리가 더없이 좋다. 이런 시원한 자연에서 한여름 무더위를 날려버릴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