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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적상산(赤裳山)1,038m(전북 무주)

by 아 짐 2007. 10. 28.

100대 명산 (산림청 선정)  

o 가을에 마치 온 산이 빨간 치마를 입은 여인네의 모습과 같다 하여 이름이 붙여질 정도로 경관이 뛰어나며 덕유산 국립공원구역인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o 고려 공민왕 23년(1374) 최영 장군이 탐라를 토벌한 후 귀경길에 이 곳을 지나다가 산의 형세가 요새로서 적지임을 알고 왕에게 건의하여 축성된 적상산성(사적 제146호)과 안국사 등이 유명

 

일 시 : 2007. 10. 27

참 가 : 서울가자산악회

코 스 : 서창- 장도바위- 서창고개- 향로봉- 서창고개- 안렴대-안국사- 조선왕조실록사고- 송대- 치목마을

 

적상산은 덕유산국립공원 지역에 속하며 4면이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붉은색 바위지대가 마치 산이 붉은 치마를 입은 것 같다고 하여 적상(赤裳)이라는 이름이 유래하였고 한국 100경 중 하나로 꼽힌다. 중생대 백악기 신라층군에 속하는 자색의 토적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상은 해발고도 850~1,000m의 평정봉으로 부봉인 기봉과 향로봉이 마주보고 있고 정상 일대가 흙으로 덮힌 토산이라서 나무숲이 매우 울창하다.

산정이 평탄한 반면 지면에서 산허리까지는 졀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산세가 험준하여 물이 풍부하므로 방어상 유리한 조건을 갖춘 천혜의 자연요새이다. 그 까닭에 적상산성이 축성되었는데 고려말 최영 장군이 축조를 건의하였다고 전해진다.

산중에는 안국사와 조선시대에 승병을 양성하던 호국사 등의 사찰이 있고 장도바위, 장군바위, 치마바위, 천일폭포, 송대폭포, 안렴대 등의 자연명소가 있으며 장도바위는 최영 장군이 적상산을 오르다가 길이 막히자 장도(長刀)로 내리쳐 길을 내고 올라갔다는 전설이 있다. 정상 분지의 해발 800m 지대에는 산정호수(적상호)가 있는데 양수발전소에 필요한 물을 담아두기 위해 만든 인공호수이다.

 

단풍이 아름다운 무주 적상산에  도착했다. 처음부터 눈길을 사로잡는 붉은 단풍의 유혹이 오늘 산행이 예사롭지 않을것을 예고한다.

아름다운 경치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릴것만 같다. 다른 님들은 뭣이 그리 바쁜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쏜살같이 테이프 끊으러 달려간다.

난 꼴찌에서 유유히 11시부터 산행을 시작한다.

 

오른쪽 도로는 자그마한 공원으로 들어가는길

 

작은 돌덩이를 옹색한 집안에 들어 앉친것이 희안하여 무조건 사진을 찍어 왔다. 알고보니 여근을 닮은 옥문석이었는데 꼼꼼하게 보지 않아 어찌 이것이 비슷한가 싶다. 앞쪽에는 남근석이 있다는데 그것도 못보았고..

 

-무주서창향토박물관 전경-  이곳에는 산수지리실. 조선왕조실록, 무주인과 풍물, 행사마당, 타임캡슐, 토산품매장 등을 볼수있다

 

화장실 벽면을 이렇게 깔끔하게 해놓아 보기 좋다. 이곳에 들러 나오니 우리 님들은 아무도 안보인다. 친구 애기나리와 오래간만에 함께

하는 산행이 오히려 한가롭게 둘이 할수있어 좋다.

둘은 발걸음도 느린것들이 사진찍고 구경하고 세월아 네월아 하고 다녔다.

 

향토박물관 건너편 회랑 앞에 우뚝 선 이 마을의 상징목 느티나무

 

아무개 묘지 앞에 낙낙장송이 아침 햇살에 더욱 푸르르며 멋지다.

 

 

통제소 앞 정자에 이제 막 감을 깍아 매달고 있다. 저것이 언제 곶감이 되려나..

이곳은 노란 감과 단풍이 아름다운 따뜻한 마을처럼 보인다.

 

서창마을에서 올라와 안국사 방향으로..

 

이 코스는 향로봉을 올랐다 다시 되돌아 서문삼거리로 내려와야 한다. 안국사에서 상부댐과 사고지만 들르고 전망대는 시간상 포기했다.

 

능선길을 지그재그로 오르지만 힘들진 않고 길도 오솔길처럼 상당히 좋은 편이다. 먼저가신 분들이 장도바위 아래에서 휴식을 취하시기에 후미를 맡아주신 박사장님과 함께 과일을 먹으며 잠시 휴식..

 

 

 

 

햇살 머금은 단풍잎이 너무나 아름답다.

 

 

장도바위 아래쪽에 넓은 공터도 있고 전망하기 좋은곳 같은데 통제구역으로 표시되어 있다. 위험구간인가?

  

장도바위

고려말 최영 장군이 민란을 평정하고 개선하던 중 이곳에 이르러 산 전체의 붉은 단풍과 깍아 세운 듯한 암벽에 띠를 두른 듯한 아름다움에 이끌려 산 정상에 오르게 되었다. 정상이 얼마 남지 않은 곳에 절벽 같은 바위가 길을 막고 있어 더이상 산을 오르지 못하게 되자 정상을 앞에 두고 발길을 돌릴수 없었던 최영 장군은 허리에 차고 있던 장도를 뽑아 바위를 힘껏 내리쳤다. 그 순간 바위가 양쪽으로 쪼개지면서 길이 열렸다 하여 장도바위라고 불리게 되었다 한다.

 

 

장도바위에서 염정의씨를 만나니 이렇게 사진도 멋지게 남겨주신다. 고맙기도 하시지 ㅎㅎ 

이곳이 치마바위인지 어느곳이 치마바위인지 잘 모르겠는데 적상산은 사방이 깍아지른듯한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어 천혜의 요새라고

한다. 하여 이곳에 실록을 보관할수 있는 사고지를 만들고 사고지를 지키는 호국사를 창건하고 더욱 견고하게 적상산성을 축조하고..

 

갈잎에 덮힌 산성이 나를 타임머신에 태워 고즈넉한 그 시간에 데려다 준듯하여 살포시 산성에 기대어 보고 만져 본다.

 

 

 

서문지에서 잠시 가파르게 오름을 하면 서창고개에 닿고 곧장 안국사로 갈수있으나 좌측 향로봉을 갔다 다시 되돌아 나와 안국사로 간다.

 

향로봉 1시경 도착.. 길지 않은 거리인데 단풍에 절경에 정신이 팔려 두시간이나 걸렸다. 이곳 정상은 너무 뜨거워 이정표 아래 솔밭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함께 산행한 여성 두분이 푸짐하게 음식을 가져와 막걸리도 한잔 얻어 마시고 오이도 얻어 먹고

항상 느끼는 일이지만 산에 오면 마음이 너그러워지고 후해지는것을 느낀다.

 

오늘 끝까지 후미를 책임지신 염정의 회장님.. 감사^^

 

적상산 정상을 못올라 서운하여 방장님 염정의씨 사진으로 대신한다 

 

 

적상산 정상을 놓치고 안부에서 안렴대 쪽으로 이동하고 말았다. 이곳이 정상으로 착각.. 뭐야!! 적상산에 와서 적상산 정상을 못보다니..

아마 철탑을 지나쳤는데 그곳이 정상이었는지 이정표가 없어 지나치고 말아 조금은 서운하다.

이곳에서 가파르게 암릉지대를 내려서면 전망이 확 트인 안렴대가 나온다

  

안렴대(鞍簾臺)

산 정상부의 안렴대 아래 험준한 절벽 밑 굴에 정묘호란의 재해를 피해 사고에 있던 서책들을 숨겨두기도 하였다고 한다.

 

안렴대 바닥은 케�을 잘라 놓은듯 절개 부분이 분명하여 간담이 서늘하지만 절개 폭이 넓지 않고 깊이가 그다지 깊지 않아 안전하다.

그런데 서책을 보관하였다는 굴이 어디인지 안보인다.

 

덕유산 향적봉이 보인다. 내가 아는곳은 그곳 뿐인지라..

 

  

온 산이 불타고 있다. 썰렁한 농담.. 119 전화할까? ㅋㅋ

 

 

안국사 
적상산성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고찰 안국사는 고려 충렬왕 3년(1277)에 월인화상이 지었다고 전한다. 광해군6년(1614) 적상산성 내에

사각이 설치되고, 인조 19년(1641)에 선운각이 설치되어 적상산 사고로 조선왕조실록과 왕의 족보인 선원록이 봉안되었다.
이때 사고를 방비하기 위하여 호국사를 지었으며, 안국사는 그 전부터 있던 절이었으나, 호국사와 더불어 이 사각을 지키기 위한 승병들의 숙소로 사용되어 안국사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졌다.
적상산 양수발전소 건설 때문에 이 사찰은 호국사지의 위치로 옮겨져 안국사가 호국사지에 있다.
전각 15여개로 95년 이건, 중창되었고 산 정상에 산정호수가 조성 되어 있다. 가을철 단풍이 절경이며, 산정상까지 2차선 포장도로를 이용하여 쉽게 찾아 올수 있다.
주요문화재는 보물 제1267호 영산회상괘불과, 유형문화재 제42호 극락전, 제85호 호국사비, 사적 제146호 적상산성, 기념물 제88호 사고 등이 있으며, 세계의 불상을 수집하여 모신 성보박물관이 있다.

절마당 아래 우물은 깔끔하게 정비해놓긴 하였는데 넓다 보니 이물질이 많이 떠있어 먹기에는 조금 껄쩍지근 했다.  

 

빨간 열매는 이름이 무엇인지 예쁘게 열렸는데 지나가시는 아주머니 말씀이 애기사과라는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성보박물관 바깥의 풍경

 

 

 

 

안국사 절마당에는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절이 아니 단풍이 너무나 아름다워 절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산행을 온것이 아니라 소풍이라도 온듯 시간은 자꾸가고..  서둘러 상부댐

구경에  나섰다. 일주문을 벗어나니 포장도로가 이어진다. 마을에서 절까지 곧장 차로 올라올수 있다.

 

 

댐 구경을 하고 이곳으로 다시 올라와 치목마을로 하산을 하여야 한다

 

산정호수.. 인공댐이다. 호명산에서도 볼수있었는데 이곳이 규모가 약간 작은듯도하고..

호수로 내려오기 전 좌측에 높다란 돌계단을 오르면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사고지가 있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 실록을 정리·편찬하여 5부를 완성하고 춘추관, 태백산, 묘향산에는 신인본(新印本) 마니산에는 왜란의 피해를 입지않은 전주실록, 오대산에는 교정본을 봉안했다.

춘추관실록은 이괄의난때 소실되었고 묘향산실록은 1633년에 만주에서 새로 일어난 후금(後金 : 淸)과의 외교관계가 악화되어가므로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산(赤常山)으로 이전했으며, 마니산실록은 1636년 병자호란 당시 청군에 의하여 크게 파괴되어 낙권·낙장이 많이 생기게 되었다. 마니산실록은 현종조에 보수했으나 춘추관실록은 복구하지 못했다. 그리고 마니산실록은 1678년(숙종 4)에 같은 강화도 내의 정족산(鼎足山)에 새로운 사고를 건축하고 그곳으로 이장했다. 따라서 인조 이후의 실록은 4부를 작성하여 정족산·태백산·적상산·오대산 사고에 각각 1부씩 보관했으며 4사고의 실록은 조선시대말까지 완전히 보관되었다. 일제강점기에 정족산 및 태백산 사고의 실록은 왕실 도서관인 규장각도서와 함께 조선총독부로 이관하고, 적상산 사고의 실록은 장서각으로 이관했으며 오대산 사고의 실록은 동경제국대학으로 옮겼다. 오대산본은 1923년 일본의 관동대지진 때 일부를 제외하고 거의 다 탔고, 조선총독부에 이관했던 정족산본과 태백산본은 1930년에 규장각도서와 함께 경성제국대학에 옮겼다. 장서각 소장 적상산본은 해방 직후 관리 소홀로 도난사건이 발생하여 낙권이 많이 생겼는데 지금은 정신문화연구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현재 완전히 남아 있는 것은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는 정족산본과 태백산본이다.

 

사고를 둘러보고 나오니 전망대를 다녀오는 선두그룹을 만나 함께 하산을 했다.

 

  

 

 

 

 

물이 많으면 장관을 이룰것 같은데 지금은 흐르는 물의 양이 적어 장관까지는 아닌듯,, 숲이 우거져 주변이 상당히 어둡다

이곳에서 30여분 오솔길 같은 좋은 길을 걸으면 치목마을에 도착하게 된다

 

감이 때깔도 곱게 탐스럽게 가지가 찢어지게 많이 열려있다. 오늘도 따고 싶은 욕심이 굴뚝 같은데 꾸~~욱 참고 얌전하게 왔다

지난 도솔봉 다녀오며 사과를 하나 서리해왔더니 두고두고 양심에 가책이 되어서리..

 

지난 산행때는 눈을 보며 칼바람도 맞았는데 이곳 적상산은 전형적인 가을날이요 좋은 햇살에 모든게 반짝인다. 모두의 마음도 익어가는

감처럼 홍조를 띠고 있다. 가을은 들판의 곡식도 사람의 마음도 영글게하며 풍요롭게 한다.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따사로운 가을도 잠시 옷깃을 여미며 볼을 감싸는 추운 계절이 금방 올것이다.

나는 오늘 하루를 즐기고 간다. 4학년 마지막 반에서 좋은 추억을 만들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