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서울 서울

창덕궁(昌德宮)

by 아 짐 2007. 11. 21.

창덕궁은 태종 5년(1405년) 으뜸 궁궐인 경복궁에 이어 두 번째로 지어진 조선의 궁궐이다. 임진왜란으로 서울의 모든 궁궐이 불탄 후

경복궁은 불길하다는 이유로 고종 2년(1865)까지 폐허로 방치되었으나 창덕궁은 광해군(1608~1623)때 곧바로 재건되어 가장 오랫동안 실절적인 조선의 으뜸 궁궐로 사용되었다.

평지에 지어진 경복궁의 주요 건물들이 남북을 축으로 하는 일직선을 따라 엄격하게 배치된 데 비해 산자락에 자리잡은 창덕궁의 건물들과 정자들은 산의 지형지세에 따라 자연스럽게 배치되어 있다. 창덕궁은 현재 서울에 남아 있는 조선의 궁궐 중 그 원형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점과 자연과의 조화로운 배치가 뛰어난 점이 인정되어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곳 돈화문(敦化門)은 창덕궁의 정문으로 태종 12년(1412) 처음 지어 졌고 광혜군 원년(1609)에 중건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궁궐의

정문 중 가장 오래되었다. '돈화'는 백성을 가르치어 감화시킨다는 뜻이다.

 

회화나무

돈화문 주변 여덟 그루의 회화나무는 수령이 300~400년으로 추정된다. 돈화문 주변은 조정의 관료들이 집무하는 관청이 배치되는 외조(外朝)의 공간으로 이 곳에 회화나무를 심은 것은 '궁궐 정문 안쪽에 괴목(회화나무와 느티나무)을 심고 그 나무 아래서 삼공(三公)이

나랏일을 의논하게 하였다'는 중국 고사에 의한 것이다. 

 

금천교(錦川橋)

금천교는 태종 11년(1411) 조성된 서울에 남아있는 옛 다리 중 가장 오래된 돌다리이다. 전통적으로 궁궐에 들어갈 때는 꼭 시냇물을

건너서 들어가게 되어 있는데 이는 시냇물이 풍수설에 의한 명당수의 역할을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인정전(仁政殿, 국보)

창덕궁의 으뜸되는 건물이다. 신하들의 하례, 외국 사신의 접견 등 왕의 공식적인 행사를 거행하던 의식의 공간이다.

인정전은 태종 5년(1405) 창덕궁을 조성할 때 세원진 후 임진왜란으로 불타 광해군 1년(1609)에 복원되었다. 현재의 인정전은 순조 3년(1908)의 화재로 그 이듬해에 재건된 것이다. 또한 순종 1년 내부의 일부가 서양식으로 고쳐 졌다.

인정전의 정문인 인정문은 인정전과 함께 세워졌으며 현재의 것은 화재로 불탄 것을 순조 3년에 재건된 긋으로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인정전 월대의 드므

 

인정전의 문살

 

인정전의 어좌

 

서양식으로 고쳐진 인정전의 내부

 

인정전의 품계석

 

 

희정당

 

 

 

   

대조전(大造殿)

왕비의 침전이다. 1917년 화재로 소실되어 1920년 경복궁의 왕비 침전인 교태전을 옮겨 지은 것으로 내부는 일부 서양식으로 꾸며 졌다.

 

 

 

 

담장 아래의 괴석(콘크리트를 믹서해 노은것 같은 질감을 같고있기도 하고 화석 같기도 한데 여러군데에 설치되어 있다)

 

 

한정당 앞의 괴석 

 

 

 

패션쇼에 갔다 선물받은 와인 한병을 옆에 끼고 고궁을 산책하자니 걸리적거리고 쪼매 귀찮다. 그래도 공짜라 계속 끼고 다닐밖에..

낙옆이 수북한 담장을 걷는 기분이 괜찮다.

 

부용지(芙蓉池)

부용지는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는 동양의 전통적 우주관에 의해 조성된 연못이다. 사각형의 연못은 땅을 의미하며 가운데 둥근 섬은 하늘을 상징하고 있다. 두 다리를 연못에 담그고 있는 부용정은 사방으로 지붕이 돌출된 열 십자 형태의 도특한 모양을 하고 있다.

부용정의 맞은편 언덕 위에 자리잡은 이 층 집은 주합루로 정조 즉위년(1776)에 지어 졌다. 원래 일 층에는 규장각이 있었다. 주합루와

규장각은 학문연구 기관인 동시에 임금이 지은 글이나 글씨 및 임금의 초상화 등을 보관하던 곳이다. 현재 걸려 있는 주합루의 현판은

정조가 친히 쓴 글씨이다.

부용정과 주합루 사이 연못 앞에 있는 건물은 영화당으로 그 앞뜰인 춘당대에서 열리는 문무의 거거를 임금이 직접 주관하기도 했던 곳이다  지금 걸려 있는 현판은 영조가 직접 쓴 것이다. 

 

 

 

규장각

 

 

 

 

 

 

연경당(演慶堂)

원래 이 집은 순조의 아들인 효명세자가 아버지인 순조의 덕을 칭송하기 위한 존호를 올린 것을 기념하기 위해 순조 28년에 지어 졌다.

이 집은 대궐에 있으면서도 단청이 되어 있지 않고 사랑채와 안채로 남녀의 공간이 구분되어 있어 조선시대 사대부 집을 연상시킨다. 

 

 

 

 

 

 

향나무

동궐도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향나무는 수령이 75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12m 뿌리부분 둘레 5.9m로 여러 방향으로 뻗어있는 가지는 뒤틀리며 자라있다. 향나무의 목재는 강한 향기를 지니고 있어 제사 때 향을 피우는 재료로 사용되는데 이 곳에 향나무가 심겨진 것은

동측 선원전이 제례의 공간인 것과 관련이 있다.

 

 

 

안내에 따라 다닐려니 항상 느끼는거지만 시간이 촉박하여 마음대로 둘러볼수가 없다. 오늘은 남학생 단체손님이 100여명도 넘는것 같아 무척 어수선하고 안내인의 설명은 들을수조차 없었고 부용지에 이르러서는 외국 관광객과 시간이 맞물려 빨리 그곳을 빠져나와야 했다.

언제 혼자 차분히 사브작사브작 다닐수 있는 날을 기다려봐야 겠다. 돈화문 밖 문화상품관 앞의 커다란 은행나무는 잎이 모두 떨어지고

어쩌면 저렇게 은행이 많이 매달려 있는지 신기할 정도다. 아무도 따는이 없어 아직도 고이 매달려 있는지..

오늘 하루 바쁜 일정을 보냈다. 그저 산으로만 돌아다니다 제대로 문화생활을 즐길수 있는 날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이렇게 소나기식이 아닌 보편화된 생활을 해야 하는데 짬만 나면 산으로, 아님 집에서 이렇게 컴만 만지작 거리고..

지금도 이거 정리하면 산으로 갈 예정이다 ㅎㅎ 

'서울 서울'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국의집 전통혼례  (0) 2008.04.01
한옥마을의 봄과 인생의 봄 전통혼례  (0) 2008.03.31
RICE CAKE CAFE -질시루-  (0) 2007.11.21
가을날 절집구경 -도선사-  (0) 2007.09.24
해질녁 중량천변을 거닐며  (0) 2007.0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