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1시간여 걸으면 태릉에 갈수있다. 어릴때부터 심심하면 놀이터 삼아 자주 가던곳..
언제부터인가 태릉을 가지 않게 되었다. 아마도 태릉이 아니어도 놀곳이 많아져서 나의 뇌리에서 잊혀져갔을것이다.
어릴때는 릉 앞의 석상있는데까지 올라갈수 있었고 그 석상위에 앉아 4남매가 나란히 앉아 사진도 찍고 했었는데 지금은 릉을 보호하느라 목책이 정자각 앞에서부터 빙 둘러쳐져 접근을 할 수가 없다.
태릉은 선수촌이 있어서 더 유명세를 타는것 같다. 근처에 육군사관학교도 있고.. 태릉에서 선수촌 방향으로 더 올라가면 강릉이 있다.
이곳은 일반인에게 개방을 안한다. 생각해보니 어릴때도 강릉은 간 기억이 없다.
월릉교가 생기기전에는 낮으막한 나무다리가 있었는데 장마가 지나가면 자주 끊어지고 그곳에 정선에서 볼수있는 줄배를 타고 중랑천을 건넜다. 물이 적을때는 바지를 걷어부치고 건너갈때도 있었고.. 하늘에 흰구름이 두둥실 떠있을때 내를 건널때는 내에 비친 하늘과 구름의 그림자때문에 하늘을 딛으면 수렁으로 빠지는 착각에 놀라기도 했었다. 내가 하늘을 걷는 두려운 느낌도 있고.. 다 철없을때의 일이다.
내가 뛰어놀던 이곳에 지금도 어린아이와 가족이 소풍을 나와 자리를 깔고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에서 가족간의 행복 조각맞추기를 하고 있다. 이곳에 올때는 석계역 앞에서 버스를 타고 왔고 갈때는 걸어서 화랑대역도 구경하고 육사앞 조용한 넓은 도로를 조용히 걸어보기도 하고 화랑로에 있는 주말농장을 기웃거려 보기도 하고 정말 오래간만에 한가한 시간을 보냈다.
어릴때는 화랑로에 달구지가 다녔다. 육사때문에 일찌감치 도로포장이 되어있어 넓은 길에 차는 어쩌다 한대 지나갈뿐 달구지가 지나가는 한적한 시골의 모습이었다. 지금이야 한시간이면 태릉에 도착하지만 어릴때는 이것저것 해찰하는라 더 많이 걸렸을것 같다.
심심하면 신발 한짝을 휙~~ 집어 던지고 그 신 잡으러 뛰어가고 운 좋으면 달구지도 얻어 타고.. 그렇게 유년기를 보냈다.
나는 8살때 지금 살고있는 석관동으로 이사와서 그곳에서 결혼을 하고 결혼하여 이곳저곳 떠돌며 살다 아이가 8살 먹었을때 다시 석관동으로 이사를 왔다. 나는 종암동의 숭례국민학교에서 1학년때 전학을왔는데 아이도 부천송내국민학교에서 1학년때 석관으로 전학을 왔다
아이가 8살때 이사를 와서 지금 26살이니까 18년을 이곳 석관동에서 줄곳 살고 있다.
나는 늙어갈뿐 변함이 없는것 같은데 세상은 너무도 많이 변해간다. 고개만 돌리면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 불암산이 지척에 자리해
자태가 너무나 멋졌는데 지금은 고가도로에 막히고 아파트에 가리우고 고층건물로 막혀 옥상에나 올라가야 제모습을 볼수가 있다.
변화하는 세상속에 아직도 가족끼리 보듬고 살아가는 모습은 변함이 없어 조그마한 돗자리 깔아놓고 단란하게 즐기는 모습은 행복 그
자체다.
이곳은 神道라고 들어가지 말라고 표시되어 있다. 정자각은 지금 수리중이다. 쇠파이프로 빙 둘러서 접근을 할수없고 볼상사납다.
요즘은 어딜가나 왜이리 공사중이 많은지 제대로 된 모습을 보기가 힘들다. 모조리 뜯어 고친다. 사람도 사회도 모두 공사중...
신도(神道)
태릉(중종의 계비 문정왕후의 묘)
릉 주변에는 어느곳을 가나 소나무가 멋있다. 오랜 세월 바람맞으며 ��히 지켜내는 강인함과 절개와 품위가 느껴진다.
문정왕후의 본관은 파평. 영돈녕부사 윤지임(尹之任)의 딸이다. 중종비 신씨가 즉위 직후 폐위되고, 제1계비 장경왕후(章敬王后) 윤씨가 세자 호(岵:뒤의 인종)를 낳은 뒤 죽자, 1517년(중종 12) 왕비에 책봉되었다. 1545년 자신의 소생인 명종이 12세의 나이로 왕위에 오르자 모후(母后)로서 8년간 수렴청정했다. 그동안 동생인 윤원형(尹元衡:소윤)에게 권력을 주어, 인종의 외척인 윤임(尹任:대윤) 일파를 제거한 을사사화를 일으켰다. 한편 보우(普雨)를 신임해 1550년 선교(禪敎) 양종(兩宗)을 부활시키고, 승과와 도첩제(度牒制)를 다시 실시하는 등 불교 부흥을 꾀했다. 1553년부터 명종이 직접 정치에 임했으나, 실제로는 문정왕후가 윤원형과 협력하여 정사에 계속 관여했다. 소생으로 명종·의혜공주(懿惠公主)·효순공주(孝順公主)·경현공주(敬顯公主)·인순공주(仁順公主) 등 1남 4녀를 두었다.
문정왕후를 조선의 측전무후라 한다지?
태릉의 泰 클태자를 씀은 문정왕후의 그릇됨과 관계가 있을까? 태릉에는 스포츠의 기본이 되는 우리나라 선수촌이 있고, 나라를 지킬
동량을 양성하는 육군사관학교가 있는것도 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역사의 힘의 연장일까.. 별생각을 다하는군 ㅎㅎ
권력의 칼을 너무 휘두르니 국민은 도탄에 빠지고 임꺽정이 등장하게 되는..
일요일이라 가족단위 나들이객이 많아 저 계단을 올라가보질 못했는데 언제 조용할때 다시 와서 저곳을 올라가 어렸을때의 그 기분을
다시 느껴보고 싶다. 그때 말 석상이 엄청 높았었는데 지금은 그다지 높지 않다. 어릴때 살던 종암동 우리 집을 십여년 전에 찾아가보니
11칸짜리 엄청 큰 기와집이었는데 옹기종기 좁은 작은 규모의 집이었다. 어릴때의 시각과 장성해서의 시각은 많이 다른가 보다.
깔끔하게 잘 다듬어진 잔디밭에 나도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하고 싶다. 돗자리 깔아 놓고 그 위에 팔 깍지끼고 누워 파란 하늘을 바라다
보고 싶다. 거기에 김밥이랑 사이다가 있으면 금상첨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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