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 독 : 필립 그로닝
19년을 기다린 ‘침묵의 세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카르투지오 수도원을 영상으로 만난다!
수도원 너머 미지의 세상, 그 묵상의 삶을 들여다보는 독특한 경험 _ BBC 뉴스
침묵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게 하는 영화 <위대한 침묵>. 이 영화를 통해 카르투지오 수도회의 그랑드 샤르트뢰즈 수도원(Le Grande Chartreuse)이 처음으로 세상에 공개된다. 카르투지오 수도원은 방문객이나 관광객 등 일반인들의 출입을 철저하게 제한하는 봉쇄 수도원으로, 로마 카톨릭교 중에서도 가장 엄격하기로 유명하다. 특히 그랑드 샤르트뢰즈(Le Grande Chartreuse)는 카르투지오 수도원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는 곳으로 카르투지오 수도회의 대표적인 수도원이라 할 수 있다.
1688년, 해발 1,300m의 알프스의 깊은 산중에 현재의 수도원이 지어진 이후 지금까지 카르투지오 수도원이 대중에게 공개된 모습은 1960년 수도사들을 찍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수도원에 들어갔던 기자들이 찍은 사진이 전부였다. 그 외에는 단 한번도 수도원이나 수도사들의 생활이 드러난 적이 없이 베일에 가려져 있었던 카르투지오 수도원의 일상은 19년이라는 오랜 기다림 끝에 필립 그로닝 감독에 의해 처음으로 영상을 통해 외부에 공개된다.
전 세계가 감탄한 최고의 다큐멘터리 <위대한 침묵>은 62회 베니스영화제를 시작으로 30회 토론토영화제, 22회 선댄스영화제 등 세계 유수 영화제에 초청되었다. 또한 선댄스영화제 월드시네마 다큐멘터리 부문 심사위원 특별상 수상을 비롯해 바바리안 필름 어워드, 저먼 필름 크리틱스 어워드, 저먼 카메라 어워드 등 세계 유수 영화제에서 최고 다큐멘터리 상을 휩쓸며 화제를 모았다.
특히 <위대한 침묵>은 영화 제작 당시 카르투지오 수도회 측에서 “이 작품을 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이되 경쟁부문에 진출해서는 안 된다”는 조건을 걸었다. ‘겸손’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수도회의 삶에 따라 그들은 <위대한 침묵> 역시 성공만을 강요하는 경쟁 속에 영화의 첫 선을 보이길 원치 않았던 것이다. 이런 조건 속에서도 <위대한 침묵>은 이 영화만이 가지는 진정성의 가치를 발하며 수많은 영화제의 러브 콜과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해외 언론의 호평들만 보아도 <위대한 침묵>을 설명 하는 데는 그 어떤 말도, 설명도 필요 없다. 그저 이 영화를 단 5분이라도 직접 체험해 보는 시간을 갖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의 청량감을 느끼며, 나 자신의 내면의 세계로 한 계단 내려서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 ABOUT MOVIE ]
우리가 잊고 지냈던, 아름다운 세상으로의 여행과 같은 영화
이미지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아름다움과 고요함이자, 감동 그 자체 _ 쥐트도이체 차이
퉁 매혹적이고 신비로운, 기존의 언어를 초월한 창의적인 다큐멘터리 _ 센티에리 셀바기
160분 간의 완전한 침묵. 이것은 어떻게 영화화될 수 있을까?
침묵을 어떻게 영상 속에 담을 것인가? 그리고 그 침묵을 언제 다시 깰 것인가?
1984년 이 화두로 처음 작품을 구상했던 필립 그로닝 감독은 ‘영화’라는 매체가 허용하는 언어를 최대한 배제한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 언어가 사라진 자리에 남은 ‘침묵’을 통해 감독이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은 과연 우리의 문화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그 기원을 보여주고자 함이었다. 또한 무엇보다 이를 통해 내용과 형식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 그리고 감독은 그것이 카르투지오 수도원이라면 가능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필립 그로닝 감독은 카르투지오 수도사들을 만나 영화 촬영 허가 신청을 하지만 거절 당하게 된다. 그리고 19년이라는 오랜 기다림 후 카르투지오 수도원 측의 허가를 받아낸 감독은 본격적으로 영화 제작 준비에 착수하면서 처음 영화를 기획할 당시 작성한 기획안을 다시금 검토하게 된다. 하지만 그 기획안에는 전혀 손 댈 것이 없었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침묵’에 관한 영화를 만들겠다는 필립 그로닝 감독의 의지와 열망은 그만큼 확고했기 때문이다.
생각을 좌우하는 대사가 거의 없는 영화. 침묵을 체험하는 영화.
그리고 그 체험을 통해 사물을 제대로 바라보고 듣게 되는 영화.
침묵을 이야기하는 데 있어서 언어를 사용할 수는 없다. 언어가 주는 편견과 사고를 넘어 오직 침묵을 통해서만이 사물은 더욱 본연의 가치를 발할 수 있게 된다. 카르투지오 수도원의 수도사들은 오랜 침묵 수련 속에 그것을 깨닫게 되었으며, 필립 그로닝 감독은 자신을 포함한 관객 역시 그런 경험을 하길 바랬다. 그리고 결국 필립 그로닝 감독은 언어의 영역 밖에서, 그리고 논리적인 사고 밖에서 162분간의 침묵을 영상 속에 완벽하게 담아냈다. 일반적인 극작과 연출법을 넘어서고, 무엇보다 감독의 능력을 넘어서는 영화를 완성해냈다.
내러티브를 벗어난 자유, 시간이 공간이 되는 영화
<위대한 침묵>은 무엇보다도 시간이 공간이 되는 영화다 _ 타게스슈피겔
솔직히 내겐 이 영화가 <킹콩>보다도 지루하지 않게 느껴졌다 _ 뉴스위크
<위대한 침묵>은 처음부터 극장 상영을 목표로 만들어진 영화다. 내러티브는 리듬과 사운드에 의존하고 있으며, 극장의 거대한 어둠 속에서만 그 감각들을 제대로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립 그로닝 감독은 단지 ‘수도원’이 아니라, ‘시간’에 관한 영화, 그리고 그것이 영화적 체험이 되는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 짧은 시간이나마 침묵을 제대로 경험하며 사물의 본질을 만나고, 그 과정 속에서 오감을 통해 시간을 체험하고자 했던 것이다.
<위대한 침묵>에는 두 가지 시간대가 존재한다. 하루의 흐름과 계절의 흐름. 영화를 보며 관객들은 하루의 시간을 인식하는 동시에, 계절의 변화 역시 함께 체험하게 된다. 한 장소에만 사는 사람이나 매일을 똑 같은 규칙적인 생활 속에 사는 사람은 계절의 변화를 더욱 확실하게 느끼게 된다. 평생 하나의 똑 같은 창문으로 똑 같은 정원과 풍경을 바라보고 산다고 생각해보라. 자연의 변화와 시간의 변화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흔히 우리는 잊고 생활하지만, “시간을 느낀다”는 것은 우리 삶 속에서 매우 중요한 일 중 하나이다. 시간은 생활 방식과도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언제까지 무엇을 할 것인지 매일, 일주일, 한 달, 일년, 그리고 인생 전체를 마음 속 정해진 규칙과 일정 속에서 살아간다.
<위대한 침묵>은 단순히 수도원을, 그리고 침묵을 묘사하는데 그치지 않고, ‘시간’이라는 감각을 통해 내러티브가 아닌 ‘공간’으로 새로운 영화적 체험의 여정을 완성하며 그 자체로 하나의 수도원이 되었다.
반복을 통한 삶의 느림 혹은 삶에 관한 통찰과 같은 영화
<위대한 침묵>은 삶의 느린 리듬에 관한 시적인 에세이다 _ 버라이어티
분주하고 소란한 삶 속에서, 이렇듯 소박한 삶을 침묵으로 전하는 영화를 만날 수 있는 것은 축복이다 _ 글라우베 하이마트
‘침묵’을 바라보는 영화 <위대한 침묵>에서 162분이라는 시간 동안 대사라고 표현할 수 있는 요소는 결코 적지는 않다. 침묵 수행을 이어가는 수도원이기에 기본적으로 대화 자체가 많지는 않으나, 수도사들이 회의나 산책에서 나누는 대화는 자막으로 처리된다. 침묵을 말하고 있다는 것에 비하면 자막의 양은 꽤 많은 편인 것이다. 또한 부분적으로 같은 자막이 반복되기도 한다. 당연하다. 묵상하는 수도사들의 생활은 같은 기도문, 같은 성가를 계속해서 반복하며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필립 그로닝 감독은 같은 자막을 반복하는 것이야말로 수사들의 일상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같은 것을 새로운 것처럼 보여주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기도의 의미나 처음의 목적이 달라지듯이, 때론 의미가 더 깊어지게 되는 것이 있고 또한 그 의미를 잃었다가 다시 얻게 되는 것도 있다. <위대한 침묵>에서 자막이 바로 그런 효과를 주게 된다. 바로 반복을 통한 통찰인 것이다.
자기 인생의 평균 65년을 수도원에서 보내며 하루하루가 흘러도, 계절이 바뀌어도 변함없이 수도사들은 언제나 같은 기도문을 외며 매일 같은 의식 속에 변함없는 일상을 살아간다. 그리고 필립 그로닝 감독은 그 일상을 여지없이 카메라 속에 담아낸다. 카메라는 사과를 자른다거나 식사를 들여온다거나 하는 우리네와 같은 일상적인 생활을 보여주는 동시에, 다시 수도사들이 기도하고 성가를 부르는 모습을 보여주곤 한다. 우리네 삶에 비유되는 물질의 세계, 그리고 그 속세로부터 멀어지려는 수도사들의 노력, 그 모든 것들이 수도원에 존재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위대한 침묵>은 반복되는 수도사들의 행위를 통해 관객들에게 어떤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자유를 전달하고 있다.
[ PRODUCTION NOTE ]
20년 전 기획안을 19년이라는 오랜 기다림 끝에 완성하게 된 영화
<위대한 침묵>의 기획부터 촬영하기까지의 과정
구름 같은 영화. 이 프로젝트에 대한 필립 그로닝 감독의 첫 단상이었다. 침묵에 관한 영화를, 엄격한 수도원의 규율 내에서 살아가는 수도사들에 관한 영화를 만들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이 작품에 대한 감독의 단상은 변함없었다. 구름이란 무엇인가? 말로 다 설명하긴 힘들다. 제각기 다 다르기 때문이다. 저마다 생각이 다르고, 또 그 생각들이 하나하나 다 옳기 때문이다. 어느 하나 틀리거나 잘못된 것은 없다.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관객이 느끼고 판단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 그 어디에도 정답은 없다. 본인 스스로가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해답이기 때문이다.
1984년 침묵에 관한 영화를 만들고자 했던 감독은 카르투지오 수도원이 적격이라 판단, 이 곳을 영화화하기로 결심하면서 카르투지오 수도회의 수도사들을 처음 만났다. 하지만 그로부터 1년 뒤 그들은 이 프로젝트는 아직 시기 상조라며 ‘10년이나 13년 뒤에나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1999년, 감독은 수도원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아직 그 프로젝트를 염두에 두고 있냐고.
수도원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그로부터 15년 전의 기획안 검토부터 시작, 카르투지오 수도원의 영화화를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2002년부터 촬영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2년간의 촬영 기간과 또 다시 만 1여 년간의 편집시간… 필립 그로닝 감독은 <위대한 침묵>을 구상한지 총 20여 년 만에 영화를 완성하게 되었다.
이례적으로 카르투지오 수도원의 촬영 허가를 받은 것은 필립 그로닝 감독이 수도원장과 오핸 세월 믿음을 쌓아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이들은 최소한 7년간 다른 이들에겐 수도원의 촬영 허가를 내주지 않겠다는 계약 역시 맺었다. 하지만 이제까지 촬영을 허가하지 않았던 전례를 미루어볼 때 카르투지오 수도원에 관한 어떤 영상이나 영화는 <위대한 침묵> 이 한편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수도원에서 함께 생활하지 않으면 그들의 리듬을 따라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수사들과 함께 엄격한 규율에 맞춰 생활하며 촬영한 영화
촬영 허가가 떨어진 후 감독은 수도원 내에 머물며 여느 수도사들처럼 독방에서 생활했다. 수도사들의 삶을 직접 체험한 것이다. 같이 살지 않으면 그들 삶의 리듬을 따라갈 수 없고, 그러면 영화의 주제상 필요한 리듬 역시 잡아낼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설거지와 청소, 정원일을 하며 수도원의 의식과 일상에 직접 참여함으로써 직접 은둔자의 삶을 체험하고 수도사들의 세계를 여행하며, 고전적인 의식과 현대적인 창조 작업 사이를 오갔다. 때문에 필립 그로닝 감독은 영화 감독으로 작업할 수 있는 시간은 하루 2~3시간에 불과했다.
촬영을 시작할 때 수도원에서는 몇 가지 조건을 걸었다. 첫째, 인공 조명을 사용하지 말 것. 둘째, 자연적인 소리 외에는 어떤 음악이나 인공적인 사운드를 추가하지 말 것. 수도원의 삶에 대한 어떤 해설이나 논평은 금할 것. 넷째, 다른 스탭 없이 혼자 촬영할 것. 외에도 몇 가지 조약들이 있었지만 그런 것들은 감독에게 제약이 될 수 없었다. 그들이 내건 조건이야 말로 감독이 처음 이 영화를 구상할 때부터 생각한 컨셉과 일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덕분에 감독은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해야만 했다. 카메라를 작동하고, 사운드를 녹음하고, 20kg이 넘는 장비를 혼자 날라야 했다.(물론 장비를 이동할 때는 수도사들의 말없는 도움이 있었다.)
2002년 봄과 여름의 4개월, 2003년 겨울 3주, 그리고 2003년 12월 말 3일, 이렇게 총 2년에 걸쳐 6개월간 촬영이 진행되었다, 이 진귀한 촬영분은 긴 극장용 버전, 비교적 짧은 해외 TV용 버전을 비롯해 사진집과 CD로고 제작되었다. 70만 유로의 제작비가 든 <위대한 침묵>은 35mm와 슈퍼 8mm, HD캠 등으로 촬영되었으며, 극장 상영본은 매일 49분 분량의 테잎 하나씩 총 120시간 정도 촬영된 HD 촬영분을 마스터링하는 등의 작업을 거쳐 35mm 필름으로 완성하게 되었다.
[ TIP ]
카르투지오 수도회 (the Carthusian Order)
카르투지오 수도회는 쾰른의 성 브루노(1030-1101)에 의해 1084년 설립됐고, 카톨릭 교회에서 가장 엄격한 수도회로 알려져 있다. 이 수도회는 설립 이래로 프랑스 그르노블 부근의 산지에 기반을 두었다. 수도사들은 신을 섬기는 데 헌신하며, 영적인 삶과 침묵을 추구한다. 수도원은 1132년 산사태로 매몰됐고, 8번이나 화재로 소실될 뻔했다. 현재의 건물은 1688년에 지은 것이다.
이 수도회는 경제적으로 독립적이며 자급자족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수도사들은 농부나 기술자로도 활동한다. 수도회에는 보상 제도가 있어서, 어려운 곳을 지원하는 식으로 꾸려지는데, 주로 수입은 리큐르 생산으로 얻는다. 수행자들의 생활은 기도와 공부와 노동으로 이뤄지며, 이는 지금도 그대로 지켜지고 있다.
카르투시오 수도원 (Charterhouse)
카르투시오는 수도원이 최초로 세워진 프랑스의 지명 샤르트뢰즈의 라틴어 카르투지아에서 비롯됐다. 수도원의 구조는 커다란 회랑을 중심으로 주변에 수사들의 숙소가 위치한 것이 특징이다. 중세 전성기에는 화려한 수도원도 있었다. 하지만 비교적 최근의 수도원은 가난하고 단순한 삶을 중시하는 수도회의 가르침에 충실하게 지어졌다. 30개의 독방이 있는 그랑드 샤르트뢰즈 수도원(Le Grande Chartreuse)은 그 이름처럼 카르투지오의 대표적인 수도원으로, 17세기에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됐다. 반면, 앵 지역에 있는 포르테 수도원은 12개의 독방이 있으며, ‘작은 수도원’에 가까운 모습이다. 이곳의 독방은 묘지 둘레에 모여 있고, 카르투지오 수도원 본연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카르투지오 수도원은 유럽, 미국, 라틴 아메리카, 한국 등 전세계에 19개가 있으며, 수사는 모두 370명이다. 프랑스와 이태리, 스페인에는 5개의 수녀원에 75명의 수녀가 있다.
카르투지오 수도원의 생활 (Life in the Charterhouses)
카르투지오 수도사들은 독거 생활을 통해 세 단계로 신에게 다가선다.
세상과의 단절, 독방에서의 생활, 그리고 내면의 고독 또는 ‘마음의 고독’이 그것이다.
수도사들은 일주일에 한번 산책하기 위해 수도원을 나선다. 이때는 말을 해도 된다. 방문객은 받지 않으며, 라디오나 텔레비전도 없다. 수도원장이 세상 소식을 전해준다. 이는 침묵하는 생활을 위해서다. 일년에 두 번, 묵상 기간에 수사들은 가족을 만날 수 있다.
수도사들은 정원이 있는 1층집 독방에서 산다. 그곳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낸다. 공동 일정은 매일 예배 시간과 주일 점심 식사 정도다. 4시간 이상 이어지는 산책 시간에 수사들은 친목을 위해 또한 서로간의 유대와 우애를 다지기 위해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로마교의 전례와 비교해, 카르투지오의 예배식은 간소하고 절제돼 있다. 대부분의 시간을 침묵하고, 그레고리안 성가로 묵상을 하며, 악기는 일절 쓰지 않는다. 자정에는 시편과 찬송을 부르고, 성경을 읽으며, 두 번에 걸친 기도와 침묵의 시간을 갖는다.
샤르트뢰즈 (Chartreuse)
샤르트뢰즈는 그르노블과 샹베리 사이의 프랑스 알프스 지대의 산맥 이름이다. 1084년 그곳에 뿌리를 내린 수도원의 이름은 물론, 그 수도사들이 만든 허브 리큐르의 이름도 그 지명을 따랐다.
샤르트뢰즈 리큐르 (The Chartreuse Liqueur)
그랑드 샤르트뢰즈의 수사들은 1605년 ‘장수의 묘약’의 조제법을 손에 넣었다. 하지만 비법대로 약을 만드는 것은 무척 복잡했다. 130가지 재료가 필요했고, 수도원의 약제사가 약물을 만들어내기까지 무려 100년이 넘게 걸렸다. 지금도 전통적인 방식으로 향료와 약초, 꽃과 뿌리 추출물을 첨가한다. 알코올 도수 71도의 이 초록색 리큐르는 약보다는 술로 애용됐다. 1832년 프랑스에 콜레라가 퍼졌을 때 샤르트뢰즈는 다시 약으로 각광받았다. 몇 년 뒤, 수도사들은 55도로 순하게 만드는데 성공했고, 이는 색깔 때문에 옐로우 샤르트뢰즈로 불렸다. 이 리큐르는 5년간 참나무 통에서 숙성 과정을 거친다. 리큐르 제조법은 여전히 수사들만의 비밀이지만, 최근엔 제조 과정에 컴퓨터 기술을 동원한다.
영화를 보는 시종일관 너무나 조용하여 옆에서 음료수 빨대 소리가 귀에 거슬릴 정도의 고요함이 흐른다.
수사의 어두운 기도처에서의 묵상..삐그덕 거리는 마루 소리.. 그레고리 성가의 아름다움..
추억을 끄집어 내기에 충분한 뎅그렁~~ 뎅그렁~~ 울리는 종소리
피곤한 토요일 오후 5시35분에 구로 CGV에서 혼자 영화를 보는데 잠이 마구마구 쏟아진다.
두눈을 부릅뜨고 화면을 응시한다.
거기에 세상의 뒷편에서 조용히 자기 성찰을하는 수사들의 움직임과 자연의 변화가 비몽사몽의 문턱에서 다시 정신을 끄집어 낸다.
죽음도 두렵지 않다고.. 죽음은 하느님께로 가는 길이기에..
범인이 겪을수 없는 생활이기에 슬며시 넘겨다 보는 기분으로 영화를 보았다.
수도사의 길은 어려운 길인듯 하다. 하기사 세상에서 먹고사는 일도 수도사의 길 못지않게 고행의 길이긴 마찬가지겠지만서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