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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울

서울 성곽 걷기(1)

by 아 짐 2010. 6. 3.

 

정동길이 끝나는 도로 횡단보도를 건너면 강북삼성병원 언덕위에 돈의문터 안내판과 성곽안내도를 만날 수 있다.

 

오늘 나는 덕수궁앞에서 시작하여 돈의문을 지나 인왕산, 창의문까지 진행했다.

다음에는 창의문에서 시작하여 광희문까지 진행하면 오후의 산책으로 딱 좋을듯 싶다.

 

 

강북삼성병원으로 사용되고 있는 경교장의 측면이 보인다.

 

경교장(京橋莊)  사적 제465호

경교장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이었던 백범 김구선생이 1945년 중국에서 돌아온 이후 1949년 6월 26일 암살당할 때까지 집무실과 숙소로 사용했던 건물이다.
1938년에 건립된 이 건물의 명칭은 당초 죽첨장(竹添莊)이었으나 김구선생의 거처로 사용되면서 근처의 개울이름을 따서 경교장으로 이름을 변경하였다고 전한다. 이후 자유중국대사관 관저, 국군의료진 주둔지, 월남대사관 관저 등으로 사용되었으며 1968년 고려병원(현 강북삼성병원)이 인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지하1층, 지상2층 규모의 양관으로 전면 분할의 비례가 아름답고 1층의 출창(出窓)과 2층의 들임 아치창을 이용한 단아한 외관이 일품이며, 김해경(시인 이상)이 졸업한 경성고공 출신으로 우리나라 근대 건축의 선구자 중 한 사람인 김세연(金世演, 1897~1975)이 설계하여 1930년대 건축술을 잘 보여주고 있는 건축물로 평가되고 있으나, 건물의 우측면과 후면은 병원의 신축건물과 연결되었으며 내부구조도 병원용도에 맞추어 개조된 상태이다.

다른 문화재는 보전을 하여 기념관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곳은 병원으로 사용하고 있어서 아쉬움이 남는다.
 

병원 언덕을 올라오면 약간의 음식점이 있는 상가지역을 지나면 교육청 담장 아래 성곽을 만날 수 있다.

 

 

홍난파 가옥

 

좌측 빌라 골목길로..

 

골목 언덕길로 들어오면 우측에 보호수인 은행나무가 있고 나무 뒷편 막다른 골목처럼 보이는 저 골목으로 들어가면 우측으로  길이 있다. 

 

 

도심속의 전원을 보는듯 이것 저것 푸성귀가 심궈져있는 작은 텃밭을 지나 본격적인 성곽길 탐방이 시작된다.

 

옥경이 식품 맞은편 거울 옆으로..

 

 

 

 

 

 

 

간간히 산책 하는 주민을 만나기는 하지만 호젓한 성곽길을 혼자 여유롭게  누벼 본다.

 

 

 줌을 당기니 청와대가 코앞에.. 이렇게 가까우니 인왕산 입산을 금했었구나 싶다.

 

 

호랑이상 옆에는 초소가 있고 호랑이 상을 건너 이정표 창의문 방향으로 진행..

 

도로 아래 산책로를 걷다 다시 인왕산 석굴암 방향으로 들어 간다. 앞쪽에 매바위 방향 등산로가 있는데 이곳은 공사중이라 통행금지다.

 

 

석굴암약수터

 

 

 석굴암에 도착하여 바위틈의 어두운 굴속을 들여다보려니 잘 보이지 않고 인적없는곳에서 혼자 몰래 들여다보려니 무서움이 엄습해 뒷걸음

 

석굴암 앞의 안내표시판..

이곳에서 석굴암 좌측에서 내려오는 부부 산님을 만났는데 숲이 우거지고 길이 험해 혼자 산행하기에는 위험하니 아래도 다시 내려가서

정상을 가는게 좋겠다고 조언을 해주신다. 내가 등산화랑 제대로 갖추고 왔으면 혼자라고 올라가보겠는데 평상복 차림에 일반 단화를 신고서

위험하게 산행하는것도 무모한짓인거 같아 이들 부부를 쫓아 내려와서 정상을 향해 간다.

 

 인왕산 정상과 치마바위가 보인다. 일요일 못한 산행을 오늘 조금 보충하는것 같다 ㅎ

 

 청와대, 경복궁이 보인다.

 

 

치마바위는 중종비인 단경왕후의 슬픈 사연이 어린 바위이다. 반정 세력에 의해 왕후가 된지 일주일만에 폐위되어 사가로 쫓겨나왔으나

중종이 자신을 그리워 한다는 소식을 들은 단경왕후는 궁에서 입던 치마를 궁에서 잘보이는 이곳 치마바위에 아침이면 펼쳐놓고 저녁이면

거두어 들이는 일로 하루를 보냈다 한다. 애틋한 정이 묻어나는 사연이다.

 

기차바위

 

석굴암에서 내려와 오르며 만난 남자분중 한분은 자전거를 갖고 왔는데 계단길에 무거운걸 들고 오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이곳 기차바위

갈림길인 초소앞에서 오바이트를 한다. 너무나 힘들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젊은사람이라 금방 괜찮다고..

서로 사진을 하나씩 찍어주고 건졌다.

 

이런 복장으로 산행을 하려니 발이 아파 계속 맨발로 다녔는데 사진찍느라 신발을 다시 얌전하게 신었다  ㅋ

함께 기차바위쪽으로 내려가자고 하는 두분을 뿌리치고 나는 인왕산 정상으로..

 

 정상에 오니 아무도 없는 적막강산에 초소를 지키는 민간인복장의 우리의 이쁜 아들들 군인아저씨가 있다.

착하게도 사진 찍어드릴까요? 한다. 에구 ~~ 착한것.. 사진한장 부탁하니 이렇게 저렇게 여러장을 찍어준다. 나는 줄것이 없어 가방속에

들어있던 스포츠신문을 주고.. 창의문으로 가려한다 하니 정상 아래쪽까지 쫓아내려와 조심해서 다니라고 한다. 착한 아들들이다.

 

 

다음에 갈 북악산의 성곽길이 가르마처럼 보인다.

 

정상에서 철계단을 내려서며.. 북한산이 높긴 높다.

 

중앙 아래쪽 흐릿한 성곽길이 내가 올라온 길인가보다.

 

 

 계속 성곽따라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 새소리만 들릴뿐 주위는 너무나 조용하고 가끔 사복군인이 왔다 갔다 한다.

 

 내려온 길..

 

이 성곽의 안쪽은 부대가 있는지 젊은이들이 좋아할 음악소리가 들린다. 아마도 저녁준비를 하는것 같다.

 

 

인왕산 성곽에서 내려온 통로.. 이곳에서 길을 건너 다시 산책로를 이용한다.

 

 윤동주시인의 언덕으로..

 

 

 

 

 

 

 윤동주시인 언덕위의 전망대

 

윤동주 언덕에서 하산하며 바라본 건너편의 창의문(자하문)

 

자하문 입구의 민가 대문이 멋스러워서..

 

 창의문 입구

 

 창의문

창의문(彰義門)은 서울의 4대문 사이에 있는 4개의 소문 중 하나로 그중 서북쪽 문이다. 그 때에는 이 곳은 양주와 북한으로 가는 길과 이어져 있었다. 이 곳은 근처 계곡의 이름을 따서 자하문(紫霞門)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1396년(태조5년)에 지어졌으며 1413년(태종 13년)에

풍수학자 최양선이 창의문과 숙정문이 경복궁의 양 팔과 같아 길을 내면 지맥이 손상된다고 주장하여 닫혔다. 이곳에는 인조반정때 공신들의 이름이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원래 창의문은 문루가 없었으나 나중에 세워지게 된다. 창의문은 4소문 중 가장 원 모습을 잘 유지한 문이다.

 

다음에는 저 문 밖으로 나가 통행증을 발급받아 북악산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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