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시 : 2023. 03. 28 (화)
참 가 : 해숙언니, 친구 완희와 나
코 스 안국역- 창덕궁- 낙선재- 북촌한옥마을- 인사동거리
회사를 퇴사한지 벌써 3개월이 다 되어 간다. 나는 노는게 체질인지 심심하지도 않고 시간도 엄청 잘 지나간다.
회사 퇴사하고 난 모든것 다 잊고 사는데 직장 동료 2명이 놀자고 전화가 왔다.
한 친구는 동갑으로 지난번도 연락이 와서 밥 먹고 차 마시고 근처 의롱 구경하고 왔는데 선배언니와 함께 나오겠다고 연락이 와서 어딜갈까 산에도 안가는 사람이라 고궁을 떠올렸다.
며칠전부터 창덕궁 후원의 봄에 이쁠것 같아 가고 싶었는데 잘됬다.
점심 시간이 다 되어 창덕궁 앞에서 만났는데 아침도 안먹어 배가 고프다고 일단 식사부터 하자고 해서 근처 칼국수집에서 점심을 먹고 커피까지 사 들고 창덕궁 매표소로 간다.
입장료 3천원이고 언니는 만 65세가 넘어 무료.. 안타깝게도 후원은 이미 예약이 끝났다고 한다.
집에서 예약을 할까 했는데 현장발매도 가능하다고 해서 안했는데 평일 고궁 찾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줄 몰랐다.
내, 외국인 모함 엄청 많다. 완전 인산인해다
외국인은 한복을 빌려 입고 꽃단장을 하고 고궁을 누비니 누가 주인인줄 모르겠다. 주객이 전도되어 내가 부끄러울 정도..
창덕궁의 정문 돈화문을 들어서니 매화, 벚꽃, 개나리, 진달래가 피어 마음을 훅 빼앗긴다.
눈에 띄는 외국인 관광객의 한복차림이 예쁘다.
進善門을 들어서면 인정전으로 간다.
인정전은 창덕궁의 정전으로서 왕의 즉위식이나 외국 사신 겁견 등 나라의 공식 행사를 치르던 곳이다.
가운데 왕도를 두고 양쪽으로 품계석이 있다. 정조 이전에는 품계석이 없었는데 1977년 문관, 무관 뒤죽박죽 뒤섞여 있는 모습을 보고 위계질서를 바로 잡기 위해 정조의 명에 의해 품계석이 세워졌다.
인정전 안에는 정면에 임금님의 용상이 있고 그 뒤에는 나무로 만든 곡병과 곡병 뒤에는 일월오악도(日月五岳圖)라는 병풍이 있다.
병풍에는 음양을 뜻하는 해와 달이 있으며 이는 다시 왕과 왕비를 상징한다. 그 아래 다섯 개의 산봉우리는 우리나라의 동,서,남,북,중앙의 다섯 산을 가리키며 이는 국토를 의미한다.
이것은 임금이 중앙에서 사방을 다스리고, 음양의 이치에 따라 정치를 펼친다는 뜻을 담고 있기도 하다.
인정전 내부는 1908년 서양식 실내장식으로 커튼, 전등 설치등이 도입되었다.
선정전은 궁궐의 편전으로서 왕이 고위직 신하들과 더불어 일상 업무를 보던 곳으로 지형에 맞추어 정전 동쪽에 세워졌다. 아침의 조정회의, 업무보고, 국정 세미나인 경연 등 각종 회의가 매일같이 열렸다. 주위를 둘러싼 행각들은 비서실, 창고 등으로 이용되었으나 전체적으로 비좁았다.
선정전은 청기와를 올린 것과 앞쪽 선정문까지 복도각 건물로 연결한 것이 특징이다. 선정전은 한때 魂殿(신주를 모시는곳)으로 쓰였는데 복도는 그때의 흔적이다.
선정전 내부
선정전에서 바라 보는 인정전
외국 여자아이들의 한복 입은 모습이 너무 예뻐서 이쁘다고 칭찬해주니 아빠가 땡큐 한다 ㅎ
희정당은 왕의 거처이며 집무실이다. 원래의 이름은 숭문당이었는데 연산군 대에 희정당으로 바꾸었다. 선정전이 종종 국장에 사용되면서 또 다른 집무실로 활용되었고 왕의 침실로 쓰이기도 했다.
지금의 희정당은 1917년에 불에 타 없어진 희정당을 복구하면서 경복궁의 강녕전을 이전하여 건축한 것으로 원래의 모습과 다르다. 앞쪽에는 자동차를 타고 내릴 수 있로독 현관이 마련되고 내부에는 유리창과 전등, 근대적 화장실을 설치하고 유럽풍의 가구를 갖추었다.
창덕궁은 북악산 왼쪽 봉우리인 응봉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조선의 궁궐이다.
1405년(태종5) 경복궁의 이궁으로 동쪽에 지어진 창덕궁은 이웃한 창경궁과 서로 다른 별개의 용도로 사용되었으나 하나의 궁역을 이루고 있어 조선 시대에는 이 두 궁궐을 형제궁궐이라 하여 ‘동궐’이라 불렀다.
1592년(선조25) 임진왜란으로 모든 궁궐이 소실되어 광해군 때에 재건된 창덕궁은 1867년 흥선대원군에 의해 경복궁이 중건되기 전까지 조선의 법궁(法宮) 역할을 하였다. 또한 조선의 궁궐 중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임금들이 거처했던 궁궐이다.
경복궁의 주요 건물들이 좌우대칭의 일직선상으로 왕의 권위를 상징한다면 창덕궁은 응봉자락의 지형에 따라 건물을 배치하여 한국 궁궐건축의 비정형적 조형미를 대표하고 있다. 더불어 비원으로 잘 알려진 후원은 각 권역마다 정자, 연못, 괴석이 어우러진 왕실의 후원이다. 현재 남아있는 조선의 궁궐 중 그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창덕궁은 자연과의 조화로운 배치와 한국의 정서가 담겨있다는 점에서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다. - 문화재청-
성정각의 대문인 영현문
희정각 옆으로 세자가 머물며 공부하던 성정각이다.
세자가 머물던 보춘정 누각의 모습도 특이하고 아름답다.
이곳 후원의 매화가 아름다워 완전 포토죤이다.
희우루
성정각 돌담에는 화려한 꽃으로 궁궐의 아름다움이 배가 되는 느낌이다.
낙선재
조선 24대 임금인 헌종은 김재청의 딸을 경빈(慶嬪)으로 맞이하여 1847년(헌종13)에 낙선재를, 이듬해에 석복헌(錫福軒) 등을 지어 수강재(壽康齋)와 나란히 두었다. 낙선재는 헌종의 서재 겸 사랑채였고, 석복헌은 경빈의 처소였으며, 수강재는 당시 대왕대비인 순원왕후(23대 순조의 왕비)를 위한 집이었다. 후궁을 위해 궁궐 안에 건물을 새로 마련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헌종은 평소 검소하면서도 선진 문물에 관심이 많았다.
그 면모가 느껴지는 낙선재는 단청을 하지 않은 소박한 모습을 지녔으며, 석복헌에서는 순종의 비 순정효황후가 1966년까지 기거하였고, 낙선재에서는 영왕의 비 이방자 여사가 1989년까지 생활하였다.
고종의 딸인 덕혜옹주가 일본으로 볼모로 끌려가 일본인과 강제로 결혼을 하고 도쿄병원에서 정신분열증으로 20여년을 살다 1962년 고국으로 돌아와 마지막을 보낸곳도 이곳 낙선재이다.
능수벗꽃이라고 한다. 늘어지는 벗꽃이란 소린 들어 봤는데 그 이름이 능수벗꽃이라네..
예뻐서 몰래 ㅋ
낙선재 내부
우측 한복 입은 사람은 웨딩촬영중이었다.
꽃비가 내린 흔적
연경당의 정문인 장락문
풀또기
혼자 다녀와 사브작 걸리는것 없이 구석 구석 다니는데 함께 다니니까 나만큼 관심이 없고 대충 휘리릭~ 하더라는 ㅋ
혼자 열심히 사진 찍고 쫓아 다녀 봤는데 너무나 미흡하다.
혼자가 아니고 함께니까 맞춰 가야지.. 꼭 어디 가려고 정한것도 아닌데.. 시간이 아직 여유가 있어 북촌한옥마을로 간다.
< 북촌 한옥마을 >
노무현시민센터
고희동 가옥
오늘 나와 동행한 여행자들 ㅎ
원서동 옛 빨래터 옆에 원서동의 원주민인 아주머니 앉아 계시다가 이곳에서 진짜 빨래하고 멱감고 놀던 이야기를 신명나게 해주셨다.
부촌사진관
중앙 고등학교
오늘의 운세 보는곳
큰 골목은 외국인 무쟈게 많다.
어릴적 명륜동에서 살때 우리집은 개량형 한옥이었고 할머니댁은 딱 이렇게 생긴 집이었는데 부억 위 다락이 생각난다.
북촌한옥마을을 둘러 보고 종로로 나가며 바라보는 경복궁
목욕탕 굴뚝 같은데 게스트하우스다.
한옥 우측으로 돌아가면 우물터가 있고 이곳에는 펌프가 있어서 펌프질을 해보았다.
정독도서관 앞을 지나고..
덕성여자 중, 고교 사이 도로를 지나고..
덕성여자 중 고교 사이 길
< 인 사 동 거 리 >
얼마나 돌아 다녔는지 5시가 되어 간다. 차라도 한잔 마시고 가면 좋겠지만 내일 근무해야 하는 사람은 부람스러운것 같아 종로2가로 가서 1호선 지하철을 타고 각자의 집으로..
오랜만에 서울 나들이를 했다. 고궁 걷는걸 좋아하는데 무척 오랜만에 찾은것 같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수다도 떨면서 걸으면서 심심하지 않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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