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 시 : 2025. 10. 30 (목)
참 가 : 아찌랑 나랑
코 스 : 부소산성주차장- 부소산문- 낙화암(백화정)- 고란사-
오전에 만수산과 무량사를 다녀 오고 차량을 이동하여 부여 낙화암에 왔다. 백제의 슬픈 전설이 이어져 내려오는 곳.
삼천궁녀란 숫자에는 의미가 없을거라 생각을 한다. 오래전에 다녀왔지만 낙화암의 면적이 그리 넓지 않은곳이다.
고란사의 고란초도 여전히 남아 있는지 그것도 궁금하고..

오래전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해 왔었던거 같은데 결혼전에 친구랑 다녀간 후 처음이라 기억도 없으니 초심의 마음으로 부소산성길을 따른다.



입장료 성인 2,000원인데 경로우대로 신분증 보여주고 무료 통과.


부여의 백제역사유적지구 안내도를 보니 백제의 유적에 대해 문외한이고 관심이 없었다는걸 느꼈다.
부소산성과 익산 미륵사지를 가보았고 부여에 이런 왕릉원이 있다는 자체를 몰랐다.

부소산성은 백제시대의 중심을 이룬 산성으로 도성을 방어하는 핵심시설이며 백제가 사비로 도읍을 옮긴 백제 성왕16년(538) 이전에 이미 축조되었다. 부소산성은 군창지와 사자루의 산봉우리를 머리띠를 두르듯 쌓은 테뫼식 산성과 이를 둘러싸고 있는 포곡식 산성이 혼합된 복합식 산성이다. 포곡식 산성만이 백제시대의 것이고 나머지 두 퇴뫼식 산성은 통일신라 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확인된다. 대부분 흙으로 다진 토성으로 평상시에는 궁궐의 후원으로 이용되었으며 유사시에
도성의 방어거점으로 사용되었다.





사자루 현판은 고종의 다섯째 아들인 의친왕 이강이 썼다고 한다.



낙화암에 세워진 정자 백화정은 바위 위에 정자를 세웠는데 신발 벗고 정자에 올라 갈 수도 있다.












낙화암에서 바라 보는 백마강의 황포돗배의 모습이다.
낙화암은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의해 함락될 당시 수많은 궁녀들이 절개를 지키기 위해 몸을 던졌다는 전설이 깃든 곳이다
우리는 삼천궁녀가 백마강에 몸을 던졌다고 알고 있지만 실제 그 숫자는 정확히 알 수 없고 나라를 잃은 슬픔과 절망감 속에서 죽음을 택할수밖에 없었던 여인들의 비극적인 선택을 말하는것일 것이라고 생각 된다.

단체로 관광 온 아지매들이 백마강을 바라보는 낙화암 전망대를 점령하고 사진을 찍고 있어서 나는 퇴각한다 ㅋ



이제 고란사로 간다.

아니 이게 뭐시여? 고란사가 대대적인 보수작업을 하고 있다. 40년이 넘어 고란사를 보겠다고 찾아 온 나에게 너무한거 아니야? 그래도 내려가 봐야지 ㅠ

극락보전 중창불사 뿐만 아니라 온 전각을 다 보수를 하는것 같다.



범종각이 아니고 여긴 영종각이다. 모금함에 선금을 넣고 종을 칠 수 있다.

고란사나루터의 모습이다. 저기 들어 오는 배가 마지막 배라고 탑승하라는 안내 방송이 나오고 있다.
배를 타면 쉽게 고란사에 접근 할 수 있을것 같다.



성금은 좋은곳에 쓰신다고 하니 그나마 위안이 되네 ㅋ 요즘 사찰 너무 돈을 밝혀서 인상이 찌프려 질때가 많다

멀쩡한 전각은 삼성각 밖에 없는거 같다.


예전에는 우측 암벽에 고란초가 있었는데 지금은 고란초가 아주 귀하신몸이 되어 볼 수가 없다.
그때도 두어 개체 밖에 없었으니 번식을 하지 않는다면 보존이 어렵겠지..

고란약수를 마시면 3년이 젊어 진다는 설이 있다고 한다. 나는 한 잔 마셨고 아찌는 두 잔 마셨는데 ㅋ


절벽 어딘가에서 자란다고 하는데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


고란초는 사진으로만 볼 수 밖에..


공사장 틈으로 간신히 찍은 현판 진공묘유?
궁금한건 찾아 봐야 직성이 풀린다 진공묘유는 철학적 의미로 접근을 하는것 같다.
진공묘유는 직역하면 참된 공은 곧 묘한 있음이다라는 뜻이고 眞空은 모든 존재가 고정된 실체가 없음을 깨닫는것이고
妙有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상 세계가 조건 따라 끊임없이 펼쳐지는것이라고 말한다.
즉 공의 세계는 단순한 공허가 아니라 그 속에서 무한한 가능성과 창조적 발현이 일어난다는 뜻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씻앗은 본질적으로 고정된 실체가 없지만 조건에 따라 싹이 트고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맵는 이것이 바로 진공묘유라고.. 어렵다

막배도 떠났고 우리는 걸어서 부소산성 주차장으로 간다.


삼각점이 있는데 문화재청에서 설치한것 같다.


태자골숲길은 아찌가 거부해서 통과



반월루에 올라가 보았다.





수혈주거지 발굴 유물 자료관이던가? 옆에는 지금도 발굴을 하고 있다.



영일루는 계룡산 연천봉에서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던 누각으로 백제 시대의 영일대가 있던 곳이다. 지금의 건물은 1871년에 세운 홍산 관아의 정문인 집흥루를 1964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운 뒤 영일루라고 고쳐 불렀다. 이곳은 사비도성 전역을 볼 수 있는 장소로서 지금은 메워졌지만 해와 달을 비추던 월함지의 경관을 감상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동쪽으로 청마산성과 나성을 살필 수 있어 군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 부소산 서북쪽 봉우리에 달이 지는 모습을 보던 송월대와 동남쪽 봉우리에서 해를 맞이하던 영일대가 있었던 것으로 보아 백제인의 서정적인 멋을 알 수 있다.



의열문을 지나 삼충사로 들어 가본다.

모과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렸다.

삼충사 중건 사적비. 삼충사는 백제의 충신인 성충, 흥수, 계백이 모셔진 사당이다.


삼충사는 백제의 충신이었던 성충, 흥수, 계백을 기리기 위해 지은 사당이다. 1957년에 건립하였으며 1981년에 다시 지었다.
성충은 백제 의자왕때 잘못된 정치를 바로잡기 위해 애쓰다가 옥중에서 단식으로 죽은 충신이다.
흥수는 나당연합군의 공격에 맞서 백제의 요충지인 백강, 탄현을 방어하고자 한 충신이나 귀족들의 반대로 지키지 못하였다.
계백장군은 5천명의 결사대를이끌고 황산벌에서 신라 김유신장군의 5만 대군에 맞서 싸우다 전사한 벡제의 명장이다.
이곳에서는 매년 9~10월 개최되는 백제문화제 때 세 충신에게 올리는 삼충제를 지내고 있다.


부소산성 주차장으로 돌아 왔다. 이제 우리집으 가자 ~
야영장에는 평일이라 어제, 오늘 나의 독무대로 너무나 편하고 좋다.
숲속의집은 평일인데도 이용객이 있는데 야영장은 인기가 없는것 같다.
아찌왈 '우리같은 영세민만 사용하는거라고' 우리가 사용하는 소형8이 야영장에서 제일 작은 데크라 영세민이 맞다.
내일은 넓은집 H1으로 아침에 텐트를 옮기고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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