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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 창경궁 후원

by 아 짐 2025. 11. 9.

일 시 : 2025. 11. 08 (토)

참 가 : 친구와 함께 (명자, 민주, 강희, 아짐)

코 스 : 혜화역 대학로마로니에공원- 창경궁로- 창경궁- 창덕궁- 안국역

 

 

오늘은 두 달에 한 번 친구들과 모임이 있는 날이다.  서천에 사는 강희는 인천에서 볼 일이 오전에 끝나는데 모임시간 6시까지 기다리려면 혼자 오랜 시간을 헤매야하니 시간 가능한 친구들이 먼저 만나 유유자적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지난 모임에서는 강희가 북촌을 가보고 싶다고 해서 북촌구경을 했고 오늘은 내가 창경궁이나 안양수목원을 가자고 했는데 안양수목원은 3일전까지 예약을 마쳐야 하는 상황이라 불가능하여 전철로 쉽게 접근이 가능한 창경궁을 가기 위해 혜화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혜화역에 도착하니 마로니에공원의 은행나무가 너무나 아름다워 잠시 마로니에 공원을 둘러 보고 창경궁으로 가기로..

 

 

국제 인피오라타 페스티벌이라고 하는데 바닥 그림 위에 꽃잎을 수놓아 멋진 그림을 장식했다.

 

 

꽃잎 카페트라고 한다.

 

 

마술 쑈을 하고 있고.. 그닥 특별한것은 없는것 같은데 관람객 모두 박수로 호응하고 성금도 기부 한다.

 

 

뽑기 2천원.  초등학교 시절 학교앞 문방구에서 달고자 뽑기 많이 했었는데 추억의 뽑기 모습이다.

거리에서 붕어빵을 사서 따끈하게 먹기도 하고..  울동네는 붕어빵이 천원에 2개 주는데 이곳은 3개에 2천이다. 맛은 좋다

 

 

대학로에서 혜화동로터리에서 창경궁로 따라 성균관대 입구를 지나 창경궁으로 간다.

명자는 커피가 마시고 싶다고 하여 근처 스타벅스에 가니 2층 까지 있는 건물에 자리도 없고 커피가격이 너무 비싸다.

우리나라 스타벅스 커피 가격이 가장 비싸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우리가 봉이가 ~

암튼 자리가 없어서 다음에 나오는 커피숖에 가자고 했는데 창경궁까지 오게 되었다.

 

10월29~ 11월9일까지 코리아 그랜트 페스티벌이 열려 모든 고궁이 무료로 입장 할 수 있다.

 

< 창 경 궁 >

홍화문(弘化門)은 창경궁의 정문으로 ‘홍화’는 ‘조화를 넓힌다’, 즉 덕을 행하여 백성을 감화시키고 널리 떨친다는 뜻이다. 홍화문은 창경궁 창건 당시에 처음 건립되었다가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1616년(광해군 8)에 재건되었다. 같은 동궐인 창덕궁의 정문(돈화문)은 앞면이 5칸인데 비해 홍화문은 3칸의 작은 규모로 지었다.
홍화문은 국왕이 직접 백성들을 만났던 곳이기도 하다. 영조는 1750년(영조 26)에 균역법(均役法)을 시행하기 전 홍화문에 나가 양반과 평민들을 만나 세금제도의 개편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또 정조는 1795년(정조 19) 어머니 혜경궁 홍씨(헌경황후)의 회갑을 기념하여 홍화문 밖에서 가난한 백성들에게 쌀을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홍화문은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명정문(明政門)은 창경궁의 정전인 명정전의 정문으로 앞면 3칸, 옆면 2칸의 팔작지붕의 형태이다. 명정문은 명정전의 동서 중심축선상에 정확히 놓이지 않고 남쪽으로 약 1.2미터 벗어나 있다. 명정문은 명정전과 함께 처음 지어졌다가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광해군 대에 다시 지었다. 행각 중 남쪽과 북쪽 일부분은 일제강점기 때 철거되었던 것을 1986년에 복원하였다. 명정문 및 행각은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관람 인파가 너무 많아 사람을 피해 사진을 찍을 수가 없다 ㅠ

 

 

명정전(明政殿)은 창경궁의 정전으로 왕의 즉위식, 신하들의 하례, 과거시험, 궁중연회 등 중요한 국가행사를 치르던 곳으로, ‘명정’은 ‘정사를 밝힌다‘라는 뜻이다. 명정전은 1484년(성종 15)에 지어졌고,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16년(광해군 8)에 재건되었는데, 현재 궁궐의 정전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경복궁의 근정전과 창덕궁의 인정전은 중층 규모이지만 명정전은 단층으로 지어졌다. 이는 창경궁이 정치공간이 아닌 생활공간으로 지은 궁궐이기 때문으로 보여진다.
명정전 앞마당, 즉 조정(朝廷)에는 박석을 깔고 중앙에는 삼도(三道)를 두어 궁궐의 격식을 갖추었다. 조정에는 품계석이 있는데, 조회나 행사 때 문무백관들이 품계석에 새겨진 각자의 품계에 맞춰 국왕을 중심으로 우측에는 무신, 좌측에는 문신이 선다. 또한 삼도 가운데 중앙에 있는 어도는 국왕이 이동하는 길이다. 명정전으로 오르는 계단 가운데 있는 경사진 돌을 답도라 하는데 그 위로 국왕이 탄 가마가 지나갔다. 명정전은 1985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명정전 천장의 봉황

 

 

멋진 향나무의 모습

 

함인정(涵仁亭)의 ‘함인’은 ‘인에 흠뻑 젖는다’라는 뜻으로, 이곳은 원래 인양전(仁陽殿)이 있던 곳이었다. 이후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33년(인조 11)에 정자의 형태로 지었다. 함인정은 앞마당이 넓게 트여 있어 왕이 신하들을 만나고 경연을 하는 곳으로 사용되었다.
함인정은 건물 사방이 벽체 없이 시원하게 개방된 모습인데, 『동궐도』에는 지금과 달리 3면이 막혀 있다. 함인정 앞의 넓은 마당은 『동궐도』에도 그대로 나와 있어, 이곳에서 공연 등이 열렸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함인정의 전신인 인양전도 이러한 용도로 쓰였던 기록이 보인다. 함인정 내부의 사면에는 사계절을 노래한 중국 진나라 화가 고개지의 사시(四時)라는 시가 걸려있어 푸른 소나무에 둘러싸인 정자에 운치를 더해준다.

 

 

환경전(歡慶殿)의 ‘환경’은 ‘기쁘고 경사스럽다’라는 뜻으로, 왕이나 왕세자가 생활하던 내전 건물로 보인다. 환경전은 창경궁이 창건될 때 지어졌다가 임진왜란, 이괄의 난, 순조 연간 대화재 등으로 소실과 재건을 반복하였다. 지금의 건물은 1834년(순조 34)에 재건한 것이다. 이곳에서 중종과 소현세자가 세상을 떠났다.

 

 

양화당(養和堂)의 ‘양화’는 ‘조화로움을 기른다’라는 뜻으로, 통명전과 함께 내전의 한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인조가 병자호란 후 남한산성에서 돌아와 이곳에서 머무르기도 하였으나, 25대 철종의 왕비 철인황후 김씨가 이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지금의 양화당은 1830년(순조 30)화재로 소실된 것을 1834년(순조 34)에 재건한 것이다.

오늘 웨딩 촬영을 하는 젊은 청춘들이 더러 보인다.  한복 입은 모습이 어찌나 예쁜지..

 

 

통명전(通明殿)의 ‘통명’은 ‘통달하여 밝다’라는 뜻으로, 왕비의 침전이며 내전 중 가장 으뜸이 되는 건물이다. 통명전은 월대 위에 기단을 형성하고 그 위에 건물을 올렸으며, 연회나 의례를 열 수 있는 넓은 마당에는 얇고 넓적한 박석(薄石)을 깔았다. 통명전 서쪽에는 동그란 샘과 네모난 연못이 있으며, 그 주변에 정교하게 돌난간을 두르고 작은 돌다리를 놓았다.
통명전 뒤뜰에는 샘이 있는데, 1757년(영조 33)에 ‘샘물이 맵도록 차다’고 하여 열천(冽泉)이라 하였다. 통명전 서쪽의 연지는 샘이 마당으로 넘치는 것을 막기 위해 1485년(성종 16)만들었다. 통명전은 창경궁에 남아 있는 전각 중에서 용마루가 없는 유일한 건물이며, 1985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통명전 옆 연못

 

 

백당나무 열매

 

 

너무 많은 인파에 몰려 다니다 계단을 올라가니 창덕궁 연결 통로다.

 

 

< 창 덕 궁  후원 (비원)>

창덕궁도 오늘은 무료

 

 

1985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정면 11칸, 측면 4칸의 2익공식 팔작지붕건물. 창덕궁의 편전(便殿)은 본래 선정전이었는데, 이 건물은 내전에 속한 건물이었으나 조선 후기에 이 건물을 편전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건물의 창건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성종(成宗)이 이미 26년 동안 휴식의 장소로 사용하던 숭문당(崇文堂)을 1496년(연산군 2)에 희정당(熙政堂)이라고 당호를 바꾸면서 창덕궁의 한 건물로 등장하게 되었다.

이 건물은 1920년에 재건할 때 한식을 위주로 하면서 양식을 가미하여 응접실과 회의실은 바닥마루, 유리창문, 문 상부의 휘장, 벽체 등을 양식으로 꾸미고 양식 탁자를 놓았다. 현재 응접실 좌우에 김규진(金圭鎭)의 <금강산도> · <해금강도>가 있다. 조선 말기와 한말에 걸친 궁궐편전의 건축형태를 남기고 있는 점에서 주목된다.

 

 

1985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대조전은 창덕궁의 내전(內殿) 중 가장 으뜸가는 건물로, 이 건물에서는 조선 제9대 성종을 비롯하여 인조·효종이 죽었고, 순조의 세자로 뒤에 왕으로 추존된 익종이 태어나기도 하였다. 정면 9칸, 측면 4칸의 2익공식 팔작지붕건물.

 

 

1405년(태종 5년) 창덕궁을 창건할 때 지었다. 건립 당시에는 정면 3칸의 작은 전각이었고 정문인 인정문도 중층이었으며 행각 모서리에 십자각이 있는 등 지금과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1418년(세종 즉위년)에 고쳐 지으면서 정면 칸을 5칸으로 늘렸다.  1505년(연산군11년)부터 인정전과 선정전에 청기와를 올리려 했으니 1506년(연산군 12년)9월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이 폐위당하면서 공사는 중지되었다.

다른 궁궐 건물과는 다르게 용마루에 구리로 된 대한제국 황실 문장인 이화문이 설치되어 있다.  이는 정문인 인정문도 마찬가지.  인정전에는 5개.  인정문에는 앞뒤로 3개, 총 6개의 이화문이 박혀 있다.  인정전과 인정문 용마루의 이화문은 확인되는 옛 사진 자료에 의하면 1909년(융의3년)5월부터 11월까지 사이에 설치된 것으로 조선의 다른 궁궐이나 건축물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다.

 

 

대학로부터 어슬렁 걸어다니니 다리가 아프다는 친구도 있고 커피를 마시고 싶다는 친구도 있어서 창덕궁 후원은 대충 훑어보고 나간다.  고궁은 역시 혼자 다녀야 제맛이다 ㅎ

 

 

창덕궁 후원을 나와 인근의 넓은 커피숍에 들어가 1시간 가량 커피와 빵으로 입다심을 하며 수다를 떨다 약속 장소인 사당으로 간다.

 

 

1차도 사당역 6번 출구로 나가 해미별궁 음식점에서 해신탕으로 저녁을 먹고 술도 거하게 마셨는데 항상 2차 맥주를 즐기는 친구가 있어서 인근 호프집을 방문하여 간단하게 마른안주(한치, 오징어)로 생맥500cc 까지 마시니 오늘 음주량 초과다 ㅋ  멀리서도 모임에 참석하는 친구들이 기특하고 대견하다.

서천, 구리, 인천, 안산, 인덕원, 서울은 나홀로.. 서울은 내가 지켜야 되겠군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