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 시 : 2026. 07. 09 (목)
참 가 : 아찌랑 나랑
코 스 : 온달관광지주차장- 온달세트장- 온달산성- 주차장.
7월에 시간이 남아 돌아 장거리 산행을 계획했다. 날씨도 덥고 멀리 가지 말고 가까운 곳을 찾으려니 단양의 충주호를
둘러싼 아름다운 구담,옥순봉과 제비봉, 가은산 둥지봉.. 이렇게 3일 산행 계획을 세우고 산행 후 남는 시간은 주변 관광을 하기로 했는데 막상 날짜가 다가오니 날씨가 도와 주질 않는다. 많은 양의 비 예보가 있다.
휴양림을 찾다 어렵사리 소백산 남천야영장으로 이틀 예약을 마친 상태라 취소를 해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는데 비 와서 산행을 못하게 되면 주변 관광을 하자고 일단 출발을 했다.

운행중에도 계속 비가 내리고 있는 상태라 산행은 불가다. 아찌가 관광지로 선택한곳 중에 한곳이 만천하스카이워크와
잔도길과 출렁다리, 구경시장을 얘기하는데 잔도도 비가 많이 와서 불가하고 구경시장은 나중에 찾기로 하고 일단 내가 가고 싶어서 찜해 두었던 온달산성으로 방향을 돌려 느긋하게 관광모드로 전환한다.



온달관광지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우산을 쓰고 드라마세트장 구경을 간다.



온달관광지 드라마세트장 입구 매표소로 간다. 드라마 주몽을 볼때 삼족오 깃발을 봤는데 세트장에도 고구려역사관이라 삼족오가 보인다.
드라마는 내가 본것도 있고 못본것도 있고.. 최근 본 연인이 제일 앞에 있다 ㅎ


천추태후와 바람의나라도 본것 같고.. 천추태후의 채시라가 강렬하게 남아 있다 ㅋ
고구려 삼족오 빨간 깃발의 내용을 훑어본다.
고구려 대하드라마에 고구려의 상징으로 집중 등장하는 삼족오는 고구려의 시조 주몽의 무덤인 평양 동명왕릉 진파리7호 고분에서 출토된 해뚫음무늬금구에 새겨져 있다.
이 금구 중앙에는 해의 흑점주기를 뜻하는 12개의 구슬이 연속되어 있는 두 개의 둥근 테두리 안에 삼족오가 있다.
삼족오는 고대 동아시아 지역에서 태양신으로 널리 숭배된 것으로 추측된다. 고구려 벽화에는 태양 안에 반드시 삼족오가 있는데 단군세기에 보면 B.C.1987년 삼족오가 날아와 대궐 뜰안으로 들어 왔는데 날개 넓이가 석자나 되었다.

연개소문, 태왕사신기, 일지매, 바람의나라, 천추태후, 근초고왕, 제왕의딸 수백향, 대왕의꿈, 신의, 궁중잔혹사 꽃들의전쟁, 화랑, 조선총잡이, 빛나거나 미치거나, 장사의신 객주, 신과함께-죄와 벌, 연인 2006년부터 2023년까지의 작품이다.

매표소 입장권 발급. 성인 5천원인데 경로는 3,500원이다. 오늘 온달동굴이 물에 잠겨 관람이 불가해서 50%을 할인해 준다고 한다. 해서 둘이 3,500원에 입장한다. 할인 받는것은 좋은데 이놈의 비 땜시 온달동굴도 날아 갔다.


낙양성문을 통과해 구중궁궐로 들어 간다.

낙양문으로 들어 갔다 우측의 둥그런 문으로 나오게 된다.

우산을 들고 사진을 찍으니 사진이 기울어졌다 ㅋ



주련을 읽어 보고 싶은데 어렵댜 ㅋ 비는 주룩주룩 내리고..


황궁의 유적물을 둘러 본다.














고구려와 당나라의 전쟁 서기 645~668
고구려와 당나라의 전쟁은 645년부터 668년까지 이어진 전쟁으로 당 태종과 연개소문 간의 대결로도 볼 수 있습니다
고구려와 백제의 침입으로 위협을 느낀 신라가 당나라에 원조를 요청하여 당 태종은 이를 허락하고 고구려을 협박합니다.
그러나 연개소문은 협박에 굴하지 않고 전쟁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644년 10월 당 태종은 연개소문을 토벌한다는 목적을 핑계 삼아 고구려를 침공했습니다. 그러나 제1,2차 요동성 전투와 안시성 전투 등으로 많은 군사를 잃고 기세가 꺽인 당 태종이 결국 645년 9월 퇴각하게 되면서 전쟁은 끝이 납니다.

살수대첩은 제2차 고구려와 수나라의 전쟁의 마지막에 살수에서 압도적으로 승리를 거둔 유명한 전투입니다.
고구려의 수도인 평양을 공격했던 수나라의 군대가 살수에서 강을 거너 돌아오던 길에 을지문덕 장군의 군대가 습격해 큰 피해를 입힌 전투로 그 과정이 아주 흥미롭습니다.
흘지문덕은 수나라 장수에게 희롱하는 시를 보내는 한편 거짓으로 항복합니다.
항복을 받아들이고 퇴각하던 수나라의 군대를 을지문덕 장군의 부대가 사력을 다해 무찔러 큰 성과를 거두는데요
을지문덕 장군이 수나라 장구을 희롱하던 시가 아직까지 남아 전해지고 있습니다.
신책구천문(神策究天文) 그대의 신기한 책략은 하늘의 이치를 다했고
묘산궁지리(妙算窮地理) 오묘한 계획은 땅의 이치를 다했노라
전승공기고(戰勝功旣高) 전행에 이겨서 그 공이 이미 높으니
지족원운지(知足願云止) 만족함을 알고 그만두기를 바라노라


고구려와 수나라의 전쟁 서기 598, 612~614년
서기 589년 수나라는 300여 년간분열되었던 중국을 통일하고 동북아시아의 독자적 세력으로 존재하던 고구려에 대해
복종을 강요했습니다. 하지만 고구려는 복종보다는 전쟁을 선택했고 고구려와 수나라 간의 전쟁이 일어났어요
전쟁은 고구려 영양왕 때, 수나라의 문제와 양제 2대에 걸친 긴 싸움으로 598년, 612년, 613년, 614년 네 차례에 걸쳐 치러졌습니다. 특히 두 번째 전쟁은 고구려와 수나라모두 국가의 모든 힘을 다해 싸운 전쟁으로 우리 을지문덕 장군의 살수대첩이 있었던 전쟁으로 유명합니다.

연개소문은 고구려 말기를 대표하는 장군이자 신하로 아버지는 연태조이며 아버지의 뒤를 이어 막리지의 지위를 계승 받았습니다.
이후 천리장성을 쌓고 정변을 일으키며 보장왕을 옹립했으며 대막리지라는 관직에 올라 강한 권력을 발휘했습니다.
신라와 당나라에 강경한 태도를 보이며 고구려와 당나라 간 전쟁에서 당 태종과 당고종의 연이은 침략을 요동과 요서에서 방어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박은식 선생은 '천개소문전'에서 연개소문을 독립자주의 정신과 대외경쟁의 담략을 지닌 우리 역사의 영웅으로 평가했습니다.


장수왕은 광개토대왕의 아들이자 그 뒤를 이은 고구려의 왕입니다.실제로 오래 살았다는 뜻의 장수로 96세까지 살았다고 합니다. 장수왕은 아버지의 북진 정복사업을 남진 정책으로 선회하여 나라의 평안을 유지했습니다.
남진 정책은 남쪽으로 영토를 넗힌다는 의미인데요 장수왕은 남진 정책으로 한강 유역과 충청도는 물론이고 경상도와
일본 열도에까지 영향력을 넓혔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후 아버지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광개토대왕비를 세우게 했지요
광개토대왕과 장수왕이 나라를 다스리던 때가 고구려의 최고 전성기였답니다.


온달장군은 고구려의 장수이자 평강공주의 남편으로 달 알려져 있습니다.
가난하지만 마음씨는 착했던 온달은 평원왕의 딸인 평강공주와 결혼하여 왕의 사위가 되었고 학문과 무예를 익혀 전쟁에 나가 여러 차례 이김으로써 장군이 되어 영양왕 때까지 활약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서기 590년 신라에 빼앗긴 영토를 되찾기 위해 군사를 이끌고 열심히 싸웠지만 안타깝게도 아단성에서 전사했습니다. 온달 장군의 죽음으로 고구려와 신라는 단절되고 백제가 고구려와 동맹하여 삼국망의 형국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온달전은 삼국시대의 사실 가운데서도 손꼽힐만한 중요한 역사적 기록입니다.

온달장군 ?~550 광개토대왕 374~413
고구려 19대 왕으로 담덕으로도 알려진 광개토대왕은 18세에 왕위에 올라 39세에 죽을 때까지 약 21년 동안 고구려와
이웃한 나라들과 끝없는 싸움을 통해 영토을 넗힌 정복군주입니다.
만주와 한반도의 여러 나라를 정복하며 요동지방의 패자가 되었으며 남부로는 경기도와 강원도 지역에 이르기까지 정복한 업적을 이룩했습니다.
고구려 수도인 국내성에 세원진 광개토대왕릉비에 이런 업적들이 남겨져 있는데요 6.4m에 달하는 커다란 공개토왕릉비의 첫 부분에는 고구려를 세운 주몽의 신화와 여태까지 다스린 고구려의 왕들, 그리고 광개토왕의 업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지금까지 왕의 무덤을 관리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적혀 있습니다.
더불어 광개토대왕이 정복한 64개의 성과 1400여 개의 마을을 고구려 땅으로 삼았다는 말도 적혀 있습니다.




유물과 복식 구경을 마치고 이동 한다.




후원의 작은 연못에는 노랑 어리연이 피어 있다.



거하게 한 상 차려져 있다. 포토죤이다.

술병을 들고 마실요량으로 ㅋ







진부인 처소. 이곳도 촬영이 가능하지만 사양하고 ㅎ

진부인은 원한을 품은 채 미치광이 기질이 다분한 양광이 왕위에 오르도록 돕기도 했다.
양광은 아버지 수문제를 살해하고 그녀를 품에 안는 데 성광했다. 진부인은 양광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된다.
연개소문은 단재 신채호의 '조선상고사를 근거로 총 100부작으로 대하드라마를 SBS에서 방영하였다.









기둥의 용 조각이 대단하다.





궁에서 나와 저자거리로..


산사종명화이혼: 산사에서 종소리 울리니 낮이 이미 저물었고 달이 기우니 새가 날아갔다는 뜻이라고..


연개소문의 첫째 부인인 홍불화의 처소이다. 이밀이라는 인물이 동이족이라는 점에 착안했고 따라서 홍불화가 이화로 바뀐 것은 이러한 비난을 피하기 위한 작가의 장치로 보인다.



저자거리에서 나오니 온달동굴이 있다. 아쉽게 관람이 불가 상태다.

단양 온달동굴은 조선시대 문헌 '동국여지승람'에 '남굴'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성산아래 있기 때문데 '성산굴'이라고도 하였으나 오늘날에는 온달산성 아래 있다고 해서 '온달동굴'이라 불린다.
이 온달동굴은 석회암 지대에 형성된 천연 동굴로 10만 년 이내에 생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동굴의 총 길이는 800m이며 입구에서 동쪽으로 길게 나 있는 큰 굴과 이곳에서 갈라져 나간 다섯 갈래의 굴로 이루어져 있다. 동둘 내부의 온도는 사계절 내내 약 16도 내외이며 군데군데 다채로운 종유석과 석순이 많이 발달되어 있다.
지금도 종유석이 형성되는 과정을 알 수 있는 종류관을 볼 수 있다.














입구에서 보았던 동그란 문 출구다. 입구에서부터 화살표로 방향을 제시한다. 따라가면 완벽하게 한 바퀴 돌고 나온다.


온달관에 들어가 본다.






1) 평강공구가 온달에게 먼저 결혼하자고 했는데 고구려 시대에는 여자가 먼저 청혼할 수 있었나요?
고구려 시대에는 신랑될 남자와 신부될 여자의 부모나 친척들이 서로 약속을 맺어 결혼하는 중매결혼이 많았다고 해요. 그러므로 평강공주처럼 여자가 남자에게 먼저 청혼하는 행동은 무척 특밸했다고 볼 수 있지요.
2)고구려에서는 장례식을 어떻게 치렀나요?
고구려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관을 3년간 집에 보관했다가 좋은 날을 받아 땅에 묻었어요 무덤은 돌로 만들었고 무덤 앞에는 소나무와 잣나무를 많이 심었지요 온달이 죽은 뒤 평강공주가 관을 옮겨가려고 한 것도 이런 풍습에 따라 온달의 장례식을 치르기 위해서였어요
3) 돈달의 관이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이 사실일까요?
관이 땅에서 떨어지지 않는 일은 일어날 수 없어요 . 이 이야기는 사람들이 온달의 애국시을 기리는 마음에서 지어낸 것이라고 볼 수 있지요. 또한 온달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긴 고구려 사람들의 슬픔도 담겨 있는 이야기예요.
4) 온달은 나중에 장군이 되었는데 고구려의 장군을 무엇이라고 불렀나요?
기록을 보면 평원왕은 온달을 사위로 인정하고 '대형'이라는 관직을 주었다고 해요. 대형은 고구려의 14관등제 중에서 제관등에 해당하는 관직으로 대형 이상인 사람만이 고구려의 장군이 될 수 있었어요. 장군은 '말객'이라 불렀고 제일 높은 장군은 '대모달'이라고 불렀지요.




온달은 고구려 평강왕 때 사람이다. 용모는 구부정하고 우스광스럽게 생겼지만 마음씨는 빛이 났다.
집안이 몹시 가난하여 항상 밥을 빌어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떨어진 옷과 해진 신발을 걸치고 시정 사이를 왕래하니 당시 사람들이 그를 '바보 온달'이라고 불렀다.
평강왕의 어린 딸이 울기를 잘하니 왕이 놀리며 말했다.
"내가 항상 울어서 내 귀를 시끄럽게 하니 자라면 틀림없이 사대부의 아내가 못되고 바보 온달에게나 시집을 가야 되겠다"
왕은 매번 이런 말을 하였다.
딸의 나이 16세가 되어 왕이 딸을 상부, 동부 고씨에게 시집 보내고자 하니 공주가 왕에게 말하였다.
"대왕께서 항상 말씀하시기를 '너는 반드시 온달의 아내가 되리라'고 하셨는데 이제 무슨 까닭으로 전날의 말씀을 바꾸십니까?" 필부도 거짓말을 하려 하지 않는데 하물며 지존께서야 더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왕 노를 하는 이는 실없는 소리를 하지 않는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지금 대왕의 명이 잘못되었으니 소녀는 감히 받들지 못하겠습니다."
왕이 노하여 말했다.
"네가 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다면 진정 내 딸이 될 수 없다. 어찌 함께 살 수 있겠느냐? 너는 네 갈 데로 가거라"






평강공주와 온달장군의 만남과 이별까지 보고 온달 전시관을 나왔다. 아직도 비는내리고 있다.


< 온 달 산 성 >

매표소 직원에게 온달산성을 오를 수 있는가 물어보니 비가 많이 와서 가능하면 올라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이정도 비에 못올라갈까 싶어 무시하고 올라 간다.









급경사 구간이 많치만 이렇게 계단이 설치되어있어 비 온다고 못올라 갈 정도는 아닌듯 하다.

우측의 소로는 로맨스길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온달산성에 도착 했다.







이곳이 동문인듯.. 북문 방향으로 올라 간다.

우측 끝에는 남문이 있다.




둥그런 돌 폭탄이라고..

우물인지 알 수 없는 웅덩이가 있다.

북문 전망대로 올라가는 길이 없다. 앞만 보고 올라 간다. 내려 올때는 미끄러웠다.

뒤돌아 보니 청풍호도 보이고 운무가 휘날리지만 이렇게라도 조망을 볼 수 있으니 다행이다. 금방 조망은 사라진다.



북문이 있는 전망대에 도착 했다.

비가 많이 와서 일단 이곳에서 쉬었다 가기로 했다.


시야는 점점 먹통이 되어 가고 있다.

사각 모양에 입구가 열려 있는걸 보면 수로 역활을 했던건 아닐까?

비가 그칠 생각이 없으니 우리도 내려 가야 한다.

동문으로 와서 내려 간다.




세트장 옆으로 지나 간다.


산성 입구에 도착 했다. 온달산성은 성산에 위치하니 오늘 성산에 오른것이다 ㅎ


온달동굴을 봤어야 하는긴데 아쉽구먼.. 이제 갈곳도 없고 단양팔경 다음 구경이 단양구경시장이라고 한다는 시장으로..

시골 시장은 장날이 아니면 별로 볼것이 없던데 단양에 왔으니 단양의 육쪽마늘이 좋다고 광고를 많이 하던데 믿고 사가야 겠다.



시식용 흑마늘 닭강정 한 조각을 먹어 보았는데 내 입맛에는 너무 달다. 요즘 애들 입맛에 맛을듯..
나는 호프집에서 닭을 먹을때 항상 튀김이 아닌 매운 오븐구이를 먹는편이라 튀김닭은 나와 안맞는다 ㅠ

구경시장을 이곳저곳 둘러 보고 마늘 적당한 사이즈로 한접(100개)을 5만원에 구매하고 천도복숭아 한 바구니 1만원에 함께 구매 했다. 천도복숭아는 너무나 맛있었다.
문제는 마늘이다. 집에 와서 마늘 장아찌 담그려고 물에 담갔다 껍질을 까보니 단양 육쪽마늘이라고 구매를 했는데 쪽수가 많게는 12쪽도 나오는 상품성이 떨어지는 마늘을 굳이 단양에서 사서 서울까지 실고 다녔다는것이 짜증 난다.
내가 상품 볼줄을 몰라서 그런것 같다. 육쪽인지 눈으로 보고 손으로 쪽을 만져봐도 알 수 있었을텐데 주인장 말만 믿었다.
단양시장 먹기리는 보통 닭강정, 떡갈비, 만두와 순대, 마늘빵을 찾는데 살만한 것이 없어 결국 순대를 사와서 저녁 술안주를 했다 ㅋ

단양시장에서 나와 숙소인 남천야영장으로 향하며 도로의 가로수가 특이해서 찰칵!



네비가 알려주는데로 남천야영장을 찾았는데 입구가 일방통행 도로로 으슥한것이 귀신 나오게 생겼다 ㅋ

야영장 주차장에서 다리를 건너면 사무실이 있다. 입주신고를 하러 간다.
짐은 주차장에 핸드카와 마트카 넉넉한 싸이즈가 준비되어 있다.

남천계곡의 물이 무섭게 흐르고 있다. 계곡 입수는 불가할듯..

취사장 앞 A6에서 이틀을 지낸다. 야영장은 크기가 크지 않고 소박하다.

요금은 주말 12,000원에 전기사용료4천원 포함 16,000원이다. 난 전기를 휴대폰 충전 잠깐 하는게 다인데 선택의 여지가 없다. 샤워장은 취사장 옆에 있는데 두 칸으로 나뉘어져 있고 카드 충전으로 기본이 천원인데 6분 사용 가능하다.
천원을 찍지 않으면 냉수도 나오지 않는다. 다른곳은 온수는 돈을 내지만 냉수는 무료인데 이곳은 야박하다.

소백산 남천야영장 안내데스크다. 명색이 소백산 야영장인데 산책코스도 없고 산행 코스도 없다.
오로지 남천계곡 물놀이나 쉬어 가기 좋은곳이다. 우린 잠만 자고 나간다.

야영장은 A1,2만 데크이고 나머지는 파쇄석이다. 비오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이 도착하며 비가 그쳐서 걱정 뚝!

취사장과 샤워장이다. 쓰레기는 각자 알아서 분리배출하면 되고.. 샤워장은 좌측은 여자 2칸, 우측은 남자 2칸씩
취사장에 전자렌지 두 대 있다.


텐트 치고 저녁 먹기 시간이 일러 계곡 구경하러 간다.

이곳이 남천계곡 물놀이장인데 지금은 막아 놨다. 옆으로 들어가 보았다.

수량이 많아 물 흐름 속도가 빠르다. 어짜피 샤워를 하고 나와서 물놀이 할 생각도 없고 ㅎ




데크길은 숲속의집으로 가는 길이다.

소백산 등산로도 없는곳에 소백산국립공원 남천야영장이 말이 되나? 같은 단양이라고 이곳을 선택했는데 내가 가고자 하는 구담, 옥순봉은 이곳에서 약 40키로를 나가야 한다. 왕복 80키로를 이틀을 다녔으니 숙소를 어찌 이렇게 잡는지 둘 다 바보팅이다 ㅠ
어찌되었든 계곡 물소리 들으며 단잠을 잤다.
'여행스케치'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충주호 유람선 이끼터널& 시루섬 기적의다리(출렁다리) (2) | 2026.07.14 |
|---|---|
| 생거진천 농다리 & 초평호 미르309출렁다리 트래킹 (4) | 2026.06.22 |
| 아산 공세리성당 (2) | 2026.06.20 |
| 낙동정맥 최남단 몰운대, 화손대 (부산 사하구 다대동) (6) | 2026.03.18 |
| 소래포구 서해랑길 시흥93코스 (3) | 2026.0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