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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삼막사

by 아 짐 2008. 1. 5.

삼막사는 1300여년전 신라 문무왕 17년(677)에 원효, 의상, 윤필등 세성인이 암자를 지어 정진한 것이 삼막사의 근본이며 삼성산이란 이름도 이때 만들어 졌다고 한다. (윤필(尹弼)이 일막사( 一幕寺)를, 의상(義湘)이 이막사(二幕寺)를, 원효가 삼막사를 창건했는데, 그 뒤 일막사와 이막사는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없어지고 삼막사만 남았다고 한다.)

그후 도선국사(827~989)가 불상을 모셔 관음사觀音寺로 부르다 사찰이 융성해지며 도량의 짜임이 중국 소주의 삼막사(三邈寺)를 닮아 삼막사(三邈寺)라고 부르다 언제 부터인가 삼막(三幕)으로 바뀌었다. 고려 충목왕 4년(1348)나옹대사와 인도승려 지공이 이곳으로 오니 선풍이 크게 일었고 조선조 무학대사에 의하여 동쪽에 불암사, 서쪽의 진관사, 북쪽의 승가사와 함께 한양 남쪽의 비보사찰로 그 역할을 하였다. 이후 태종때 대중창이 있었으며 임진왜란시 왜구가 침범하여 절에 불을 질렀으나 법당건물이 타지않아 왜구가 참회하고 떠났다고 전해진다. 근대에는 종두법을 실시한 지석영의 형 지운영이 이곳에 백련암을 지어 은거하였다. 현재 조선후기 건축양식인 망해루와 명왕전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60호)이 있으며 고려시대 삼층석탑인 일면 살례탑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12호)과 사적비(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25호), 남녀근석(경기도 민속자료 제3호), 마애삼존불(경기도 유형문화재 제94호)과 삼귀자, 감로정등 다수의 비지정문화재가 있다.

 

삼막사 경내

  

범종루

 

 

  

명부전(명왕전)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60호

삼성산에 위치한 삼막사는 신라시대에 승려 원효가 건립하여 그 뒤 조선 초기의 무학이 중수하였고 승려 서산등이 수도한 곳이라고

전한다. 조선 고종 17년(1880)에 건립된 명부전은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구제해 주는 지장보살을 위시하여 명부의 10대 왕을 모신

곳으로 冥王殿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장대석으로 쌓은 기단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구성된 이 건물을 현재 맞배지붕에 방풍판까지

설치되었으나 원래 팔작지붕이었던 것을 개수한 것으로 추정된다. 기둥과 기둥이 만나는 곳에 사용되는 공포는 조선말기의 일반적인

주심포계 형식으로 귀포의 용머리 조각등 장식적인 요소가 많이 사용 되었다.

 

 

감로정

 

 

삼층석탑 (경기도 유형 문화재 제 112호) 

2층 기단위에 3층 탑신을 올린 이 탑은 하층기단과 상층기단에는 아무런 조각이 없다. 탑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구성되어

있다. 탑몸돌의 각면에는 모서리 기둥 (우주隅柱)이 새겨져 있으며 지붕돌의 아래에는 각 층마다 3층의 지붕받침이 있으며 낙수면의

경사가 급하다. 두꺼운 처마는 수평으로 처리되었고 전각의 반전도 뚜렷하지 않다. 상륜부는 1979년에 보수한 것이다.

 

 

 

 

 

 

반월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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