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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남한산성 성곽 돌기

by 아 짐 2010. 2. 18.

 

일 시 : 2010. 02. 16

참 가 : 아찌랑 나랑

코 스 : 마천역-  만남의광장-  일장천약수터- 수어장대- 서문- 북문- 동장대지- 벌봉- 동장대지- 동문- 남문- 일장천약수터- 마천역

 

설 명절 연휴 시작의 첫날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눈발이 흩날리고 주변의 산은 하얀 이불을 덮고 있다. 주변의 경치에 눈을 돌릴 수가 없다.

시댁에 가는 길만 아니라면 저 눈속의 산으로 들고 싶은 마음뿐..

내가 산을 이리 좋아하는지 나도 몰랐다.  남자들이 운전하다 이쁜 여자를 보면 시선을 거두지 못한다고 농삼아 하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내가 그짝났다 ㅎ 좋아도 내가 해야 할 일이 있으니 마음을 접고 시댁에 저녁에 도착하여 쉬고 아침에 일어나 앞산을 쳐다보니 대구에서

보기 드문 설산의 모습이 보인다.  괜시리 맘이 설레 저곳이 600고지냐 700고지냐 물어보며 쳐다보고..

그리운이 바라보듯 설산으로 가고푼 마음을 명절이 끝난 16일이 되어서야  약간의 늦잠을 자고 일어나 주섬주섬 산행 준비를 한다.

 

오늘 산행지는 남한산성 성곽돌기다. 돌곶이에서 6호선 탑승..태릉에서 7호선 환승..건대역에서 5호선 환승하여 마천역에 도착..

마천역에서 군부대를 지나 도착하는 버스종점이 있는 만남의 장소. 이곳에서 대충 겉옷을 배낭에 집어 넣고 간편복장으로 산행 준비를 한다.

좁은 골목길은 등산용품점과 음식점이 즐비하게 있다. 

 

상가 지역 끝부분에 영원무역이 있고 조금 지나면 산행 들머리인 성불사 입구에 도착한다. 이곳은 좌, 우 어느쪽으로 올라도 정상에서

만나지는데  나는 조금 가파른 오른쪽 코스를 오르기로 한다.

들머리 군부대 호국사자사입구에서 올라 우측 일장천약수터 방향으로 오른다.

 

등로 아래쪽의 약수터를 지나면서 오름이 가파라지기 시작한다.

 

일장천 약수터와 운동시설이 있는곳을 오르며 뒤돌아보니 이곳 역시 가파름이 만만치 않다.

 

 

 

첫 능선에 도착.. 이곳에서 수어장대 정상으로..

 

첫 오름한 능선의 쉼터

 

성불사 입구에서 약 40분 정도 오르면 수어장대 암문 옹벽을 만나게 된다.

 

옹벽의 암문을 통해 수어장대로 갈수 있고 성내 성곽걷기를 할 수 있다. 바깥쪽 성곽돌기도 가능하다. 다음에는 바깥 돌기를 해보아야겠다.

 

 

암문은 작고 낮아 수그려야 통과를 할 수 있다.

 

이곳은 성곽 바깥쪽의 풍경. 따사로운 햇살에 몇분이 점심 식사를 하시는듯..

 

암문을 통해 성내로 들어오니 이런곳이 있다. 무슨 토론회를 벌이는 광장인지.. 설명문이 없어서 그리 짐작할뿐..

 

 

 

수어장대와 청량당(경기도 유형문화재 제3호: 이회와 그의 부인과 소실을 기린 사당) 

 

 

 전망대

 

   

수어장대(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호)

지휘와 관측을 위한 군사적 목적에서 지은 누각으로 남한산성의 서쪽 주봉인 이곳 청량산에 있다. 성안에 남아 잇는 건물 중 가장 화려하고

웅장하게 지어졌으며 왼쪽에는 사당인 청량당이 잇다. 뒤쪽에는 2개의 우물이 있어 장대를 지키는 병사들에게 물을 공급하였다. 이 건물은

인조2년(1624) 남한산성 축성 때 단층 누각으로 지어 서장대라 불리던 것을  영조27년(1751) 유수 이기진이 왕명을 받아 이층 누각으로 다시

쌓고 '수어장대'라눈 편액을 달았다. 특히 병자호란 때에는 인조가 친히 군사들을  지휘 격려하며 45일간 항전하던 곳이다.

 

 매바위 가운데 사각면에는 수어서대(守禦西臺)라는 암각문이 있으나 희미하다.

 

 

무망루는 병자호란 때 인조임금이 삼전도에 나아가 청태종에게 세 번 절하고, 한번 절할 때마다 이마를 세 번씩 조아려야 했던 삼배구고두의 치욕, 그리고 청나라의 심양에 끌려가 8년 동안이나 볼모로 잡혀 있다가 돌아와 북벌을 꾀하였으나 끝내 그 한을 풀지 못하고 승하한 효종임금의 원한을 잊지 말자는 뜻으로 영조께서 이름한 것이라고 한다. 무망루의 뜻은 '무망' 즉 '잊음이 없다', '잊을 수 없다' 는 뜻이다.

 

산을 에워싸며 세운 성곽의 곡선미가 담장에 살포시 내린 눈과 어울려 멋진 경치를 보여 준다.

 

 

병암(屛岩)

   

   

서문인 우익문

 

 

  

서문에서 북문으로..

 

길게 이어진 성곽

 

 

수어장대에서 서문으로 오다보니 연주봉 옹성을 가지않고 지나쳐 왔다. 멋진곳인데..

 

북문이 보인다.

 

 

 

북문인 전승문.  이곳에서 동문까지의 거리가 가장 길며 높낮이가 심하다.

 

 

 

우린 성벽 안으로 걷고 성곽 밖으로도 산님이 홀로 산행중이다.

 

멀리 한강도 보이고 강건너 산도 보인다. 저곳이 예봉산이겠지?

 

성곽밖에서 성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암문.

 

군포지. 성안에 여러군데에 군포지가 있는데 건물은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동장대지 오르기 전 벌봉으로 가는 암문. 암문을 나가 성벽을 따라 조금 오르면 앞에 봉암성 암문이 또 있다.

 

 성곽위는 동장대지.. 이곳은 벌봉으로 가는 봉암성 암문

 

벌봉으로 안가고 먼저 동장대지로 올라갔다. 자그마한 동고비가 먹이 찾아 이리저리 쪼로롱.. 사람 옆에서 도망을 안간다. 간큰놈 ㅎ

아찌는 벌봉을 안가려 생각했나보다. 기왕 온거 벌봉까지 가봅시다. 다시 이자리로 와야 북문을 갈 수 있지만서두..

 

 

 

 

  벌봉 성곽 아래 암문

 

 벌봉에 올라..

 

벌봉 뒷편의 암봉 모습

 

 

 

 왔던길 되돌아 동장대지로..

 

아찌 전화기에는 내 이름이 얌냠숙으로 저장되어 있다. ㅎ 아이가 말 배울 아주어릴적에 엄마 이름 알려줬더니 발음이 어려워 얌냠숙한것이

여태 아찌는 애칭 부르듯 부른다. ㅋ

 

 성곽 밖의 등로..

 

 다시 동장대지로 올라와서 햇살 따사로운 한쪽에서 늦은 점심 식사를 한다. 아찌랑 다니면 밥을 늦게 먹어서 다니면서도 아찌 밥줘~~하며 다닌다. ㅎ 점심을 3시경에 먹었으니..

 

식사를 마치고 동문으로 간다. 내리막은 햇살이 좋아 땅이 질척거린다.

 

 

 

 

장경사 신지옹성

 

 

장경사

장경사는 인조 2년(1624) 남한산성 수축 시 승군의 숙식과 훈련을 위해 건립한 군막사찰이다. 병자호란 당시인 인조 15년(1637) 1월 19일 적이 동쪽 성을 침범하여 성이 함몰 위기에 빠지자, 어영별장 이기축이 장경사에 있다가 죽을힘을 다하여 몸소 군사를 독전 하였다. 적이 물러가자 왕이 친히 납시어 위로하고, 희선의 품계를 더하였으며, 완소군에 봉하였다. 1907년 8월 1일 일제의 군대 해산령에 의해, 성안의 무기고와 화약고를 파괴할 때 다른 사찰은 대부분 파괴되었으나, 그 가운데 장경사가 비교적 피해가 적었다. 그러나 1975년 화재로 소실되어 다시 중창하였다.

 

 

송암정이라고 안내 석판은 있는데 정자는 안보이고 사진만 덜렁 남긴다.

 

 

송암정에서 동문으로 가는 내리막의 성곽의 모습이 아름답다.

 

 

 

 

 

동문인 좌익문

 

성곽 종주를 하려면 도로를 건너 앞에 보이는 성곽을 따라 올라야 하는데 저곳이 한봉과 연결된 분리되는 성곽인줄 알고 도로를 따라 남문으로 가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지도를 가지고 가던지 위에서 안내도를 찬찬히 봤어야하는데 안다고 덤벙거려 제1, 2, 3 옹성 성곽을 놓치고

말았다. 다음에 한봉과 함께 봄날에 다시 찾아야겠다.

 

 저곳을 올라야 하는것인데.. 쩝.. 아쉽다 ㅋ

 

이렇게 지도가 있었는데 완전 착각하여서리..

 

 도로를 따라 남문으로 간다.

 

지수당

조선 현종 13년(1672)에 쌍백당 이세화가 세운 건물이다. 이 건물의 앞 뒤로 세 개의 연못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연못 하나가 매몰되어

두 개의 연못만이 옛 모습을 남기고 있다.

 

 도로를 따라 남문유원지 상가지역을 지나 9번 버스 종점을 지나면 좌측으로 남문으로 오를 수 있다.

 

 

 동장대지에서부터 보이던 앞쪽의 통신탑이 있는곳이 어딘가 궁금하여 먼저 다녀가신 수객님께 여쭤보니 성남 검단산이라고 알려 주셨다.

 

영춘정

영춘정을 지나 수어장대 앞에서 처을 왔던 암문을 지나 똑같은 길로 하산을 했다.  뜻한데로 산행을 못해 조금은 아쉽지만 눈덮힌 산성의

아름다움에 빠져 힘든줄 모르고 산행을 했다. 처음에 만만하게 생각하고 오른 산행길이지만 거리가 꽤 길게 느껴지고 다리도 쪼금 아프다ㅎ

 

연휴라고 하나 고향에 다녀오면 쉴 시간이 없는데 이번에는 하루를 더 주어 아쉬운데로 눈을 밟아 보고 맑은 공기를 마실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지.. 남들은 쉬지 산에 가냐고 하지만 이것이 쉬는것이지 편히 뒹굴면 하루가 너무나 아까워서 저녁이면 후회를 하게 된다.

자꾸 산만 찾으니 친구들도 멀어지고.. 그래도 산이 나는 좋으니 어쩔꺼나.. 

 

 

*남한산성 

북한산성과 함께 수도 한양을 지키던 조선시대의 산성이다.
신라 문무왕 13년(673)에 한산주에 주장성(일명 일장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는데, 현재의 남한산성으로 보인다. 고려시대의 기록은 없으나 조선『세종실록지리지』에 일장산성이라 기록되어 있다.
남한산성이 현재의 모습으로 갖춘 것은 후금의 위협이 고조되고 이괄의 난을 겪고 난 인조 2년(1624)이다.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 때 왕이 이곳으로 피신하였는데, 강화가 함락되고 양식이 부족하여 인조는 세자와 함께 성문을 열고 삼전도에서 치욕적인 항복을 하였다. 그 뒤 계속적인 수리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남아있는 시설은 동·서·남문루와 장대·돈대·보 등의 방어시설과 비밀통로인 암문, 우물, 관아, 군사훈련시설 등이 있다. 이곳에는 백제 전기의 유적이 많이 있어 일찍부터 백제 온조왕 때의 성으로도 알려져 왔다.
남한산성은 각종 시설이 잘 정비되어 우리나라 산성 가운데 시설이 잘 된 곳으로 손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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