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시 : 2012. 03. 31
참 가 : 아찌랑 나랑
코 스 : 장암역- 석림사- 깔딱고개- 매월정- 수락산역
3월 19일 부터 병원에 입원하여 21일 수술하고 28일 퇴원했다. 생각보다 수술부위의 통증이 참을만하고 내가 회복이 빨라 예정보다 일찍 퇴원시켜주는거니 금요일 다시
실밥 뽑으러 다녀가라는 명령을 들으며 가뿐한 마음으로 퇴원을 하고 금요일 다시 병원을 찾아 실밥까지 제거하니 몸둥이야 아프던말던 이젠 다 끝났구나 하는 안도의
마음이 생겼다. 먹어야하는 약은 어찌나 많던지.,. 가능한한 안먹을수 있는것은 안먹으려고 진통제를 퇴원한날부터 병원에 실밥 뽑으로 간 금요일까지 먹질않고 버텼다.
병원에서 주는데로 따박따박 먹으니 진통제로 견뎠는지 모르겠는데 집에와 진통제를 안먹으니 수술부위보다 뒷목덜미, 어깨죽지, 등판 등.. 근육통이 생겼다.
아픈 이유가 수술시 마취시키고 팔과 목을 완전 뒤로 제껴놓고 시술을하니 장시간의 수술에 목과, 팔과 몸통에 근육통이 오는것인데 미련하게 참아보겠다고했으니..
아찌는 오늘 나가봐야 할 일이 있다고 산에 가겠다고 챙기는 나를 아랑곳도 하지 않고 신문만 쳐다보고 있다.
나는 움직여줘야 체력을 되찾을수있을것 같아 살살 다녀오겠다고 혼자 배낭을 챙겨 집을 나선다. 10시가 넘은 시간에 돌곶이에서 전철을 타고 태릉에서 다시 7호선으로
환승을 하여 장암역에서 내려 오랜만에 석림사 코스를 가보기로 한다.
장암역에서 내려 횡단보도를 건너 석림사 방향으로 진행 한다.
西溪 박세당 사랑채라고 경기도 문화재이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서계 박세당 1629~1703)이 관직에서 물러난 후 살면서 후학을 양성하고 학문 연구와 집필을 하였던 곳이다.
박세당은 조선 현종 1년(1660)에 과거에 급제하여 내외 관직을 두루 겨쳐 현종 9년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그후 관직에서 물러나 이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저술과 제자 양성에 매진하였다.
오늘은 산행보다는 어슬렁 거릴 작정을하고 집을 나섰으니 등산로 초입의 박세당고택을을 들러 본다.
흉물스럽게 허물어져가는 정자는 언제까지 저렇게 방치를 할것인지.. 재건하기 무의미하면 아예 철거를 하던지..
노강서원(鷺江書院) 경기도 기념물 제41호
이 서원은 조선 숙종15년(1689년) 인현왕후 폐출의 부당함을 죽음으로써 간언하였던 정재 박태보의 뜻을 기리고 지방교육의 장으로 삼기 위하여 숙종21년에
서울 노량진에 건립한 서원이며 숙종23년에 조윤벽 등의 간청으로 "노강"이라고 사액 받았다. 영조 30년(1754년)에 다시 지었으며 대원군의 서원 철폐당시 남은 47개
서원중 하나다. 박태보는 서계 박세당의 둘째 아들로 숙종3년 문과에 장원급제 한 후 관직에 나아간 뒤 숙종15년 인현왕후 민씨의 폐위를 반대하다가 진도로 유배 가던중
노량진에서 3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숙종20년에 모든 죄를 사면 받고 그의 충절과 학문이 높이 평가되어 영의정의 벼슬과 문열(文烈)의 시호가 내려졌고 그를
추모하는 뜻에서 이 서원이 건립되었다. 노량진 노강서원은 6.25 전란으로 소실되어 1969년 의정부 장암동으로 옮기면서 매월당 김시습의 영정을 봉안했던 청절사의 터에
다시 지은것으로 맞배지붕의 사당과 동재, 서재가 있다.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며 산책같이 여유롭게 걷고 있다. 등로에 혹시 작은 야생화라도 피었을까 기웃거리기도 하고.. 안쪽 밭두렁에 제비꽃 몇송이 피었고 계곡에 짙노랑의 생강나무가 눈을 반짝이게 한다.
석림사 주차장 우측으로 등로가 이어 진다.
정오를 알리는 타종인지 석림사 종의 댕댕하는 울림이 들린다.
좌측에 계곡을 두고 서서히 올라가고있는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배낭이 어깨를 찍어 누르는 통종이 몸을 주체를 못하게 한다. 물 조금과 오렌지 한개, 김밥 한줄이
들었을뿐 다른 잡동사니가 있지만 그렇게 무거운것은 없는데 근육통이 심해서 도저히 배낭을 들쳐매고 다닐수가 없다. 어찌해야 하나? 산행을 포기해야 하나?
계곡 암반 햇살이 따사로운 곳을 골라 앉아 아찌한테 전화를 했다. 동두천에 볼일보러 간다했으니 석림사까지 차 갖고와서 내 배낭만 갖고 가 달라고..
아찌가 사태 파악을 했는지 알았다고 한다. 12시 30분에 통화를 했으니 집에서 이곳 장암까지 와서 나있는곳까지 오려면 약 1시간 정도는 기다려야하는데 배낭 짊어질 자신이 없어 등산도 하산도 못하고 계곡에 주저앉아 생강나무도 쳐다보고 계곡물 속의 걔구리알 구경도 하며 시간을 보내고있으니 약 1시간쯤 뒤에 아찌가 등산복 차림에
검은 비닐봉투를 하나 들고 올라오고 있다.
볼일을 밀쳐두고 함께 산행을 하려는 모양이다. 본인 점심 김밥 한줄과 막걸리 한통을 사서 비닐봉투에 들고 올라와서는 내 배낭을 매고는 산을 다시 오르기 시작한다.
정말 예상치 못했던 일이다. 병원에서도 그리 통증에 시달리거나 하지 않았고 병원 계단과 복도 오르내려도 힘든줄 모르고 다녀서 이제 퇴원했으니 서서히 움직이면 되리라 생각했는데 이건 착각이었다. 평지와 달라 산은 계단이 많으니 오름이 너무나 힘겹다. 그리고 멀쩡한 심장을 수술했는데 왜 이렇게 숨이찬것인지..
일요일 동산, 작성산을 신나게 잘 다녀왔건만 다리가 아파 걸음을 걸을수가 없다. 정말 절망감이 밀려 온다.
짧게 깔딱고개로 올라 능선에서 하산하는 방향을 잡기로 했다.
깔딱고개를 오르는데 여러차례 쉬어서야 오를수 있었다.
산에 오기전 생각은 주봉으로 올라 능선 산행을 하려했는데 등산객들이 내려오고있는 암릉구간의 주봉가는길을 버리고 앞쪽 매월정 방향을 택했다.
내 몸이 이정도라는것을 생각도 못했다. 병원에서는 계속 진통제를 먹으니 몸이 가벼웠었는데 집에와서 몸이 괜찮다 생각하고 견뎌보겠다고 먹던 약을 끊으니 몸의 이곳
저곳에서 통증이 살아났던 모양이다. 아직 회복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한듯..
매월정 방향으로 진행하다 늦은 점심을 먹고 편히 구경도 하고 쉬어 간다.
저곳을 올라 주봉으로 가려 했었는데.. 참내.. 한심하기 짝이 없다.
매월정에 도착해서 건너편 봉우리를 쳐다 본다.
산행하기에 날씨도 좋건만.. 내 배낭과 스틱까지 아찌한테 모두 넘겨 주었다. 스틱도 팔 근육이 아파 사용을 못할 정도다.
아줌마 ~~ 집에서 편히 쉬지 이게 뭔 고생이유~~ 괜시리 남편이나 고생시키구말이야..
매말랐던 나무에 꽃을 피우니 아픈것도 잊고 생강나무 고운 빛깔에 마음을 빼았긴다. 곱기도 하지..
날머리..
장암역으로 올라 수락산역으로 하산.. 11시 30분에 산행 시작한것이 오후 4시가 되어서야 날머리에 도착했다. 아직은 얌전하게 몸을 추스려야 할것 같다.
내가 나를 몰라도 너무나 몰랐던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