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시 : 2012. 04. 26
참 가 : 나홀로
코 스 : 수색역- 봉산- 서오릉
화창한 날씨에 엉덩이를 가만히 붙여놓칠 못하고 평상시 가고 싶었는데 산에 가느라 챙기지 못한곳을 생각해 본다. 제일 먼저 떠오른곳이 서오릉이다.
서오릉만 가려니 뭔가 아쉬워 검색을 해보니 봉산, 서오릉, 앵봉산이 뜬다.
벌써 시간이 많이 지나가기도 하였고 내 체력 문제도 있고.. 봉산과 서오릉만 가기로 한다.
수색역 5번 출구로 나와 우측 상가 첫번째 2차선 도로로 들어와서 뒤쪽의 우방, 청구 아파트 들머리를 찾아 간다. 날씨가 청명하다.
능선에 오르니 곳곳에 철쭉이 만개하였다.
증산동에서 올라 조망명소로..
주민들을 위하여 산책로를 잘 꾸며 놓은것 같다. 지나간 야생화도 있고 아직 안핀것도 있으니 언제나 아름다운 산책로를 제공할것 같다.
이중에 난 조팝나무와 고광나무 두가지밖에 보지 못했다.
조망명소에 올라왔다. 마을 주민들은 봉투에 뭔가 수북하니 담아가시는걸 보니 아마도 쑥을 뜯어 가시는것 같다. 아주머니도 쑥 뜯고 운동도 하시고..
관악산 방향
북한산 방향
중간중간 쉬어갈수있는 정자가 많이 설치되어 있다. 서오릉을 가려면 계속 수국사 방향으로 진행 한다.
봉산 정상
봉산에서 바라보는 북한산의 모습이 너무나 멋지다.
인왕산 방향.. 날씨가 너무 좋다.
수국사 서오릉 방향은 이곳 폐타이어봉 우측 계단으로 내려가야 한다.
주차장으로 하산하면 봉산의 산행은 끝이 난다. 고양시와 은평구의 시경계 터널을 지나 횡단보도를 건너면 서오릉 이정표를 만날 수 있다.
< 서 오 릉 >
서오릉은 경릉(덕종과 소혜왕후의 능), 창릉( 조선 제8대 예종과 계비 안순왕후의 능), 명릉(조선 제19대 숙종과 제1계비 인현왕후, 제2계비 인원왕후의 능), 익릉
(조선 제19대 숙종의 원비 인경왕후의 능), 홍릉(조선 제21대 영조의 원비 정성왕후의 능)과 대빈묘, 순창원, 수경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조선왕릉은 우리의 전통문화를 담은 독특한 건축양식과 아름다운 자연이 어우러진 공간으로 600여 년 전의 제례가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살아있는
문화유산이다.
순창원(順昌園)
순창원은 조선 13대 명종의 첫째 아들인 순회세자와 세자빈 공회빈 윤씨의 무덤이다. 세자의 묘로 조영하였으므로 봉분에 난간석과 병풍석을 두르지 않았으며 석물이 작고 간단하다. 봉분 주위로 석양과 석호가 번갈아 배치되어 있고, 봉분의 양 옆으로는 석마를 대동한 문석인이 자리 잡고 있다.
순창원 홍살문과 참도
경릉(敬陵)
경릉은 추존왕 덕종과 그의 비 소혜왕후 한씨의 능이다. 동원이강릉의 형태로 조영되었다.능침의 배치는 왕이 우측에, 왕비가 좌측에 모셔지는 것이 일반적인데, 경릉에서는 왼편에 왕릉이, 오른편에 왕비릉이 있다. 왕릉은 난간석이나 망주석 등이 없고 석양과 석호도 2쌍이 아닌 1쌍만 설치되어 있다. 이는 덕종이 세자로 있을 때 죽었고,
부왕인 세조가 간소한 장례 의례에 준해 사대석(莎臺石) 등을 설치하지 말 것을 명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왕비는 생전에 덕종의 추존에 따라 왕비로 책봉되었으므로 능제도 왕릉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성종대에 이르러 왕릉의 규범에 따라 덕종의 능침에도 의물을
가설하고자 하였으나, 덕종의 비이며 당시 대왕대비였던 소혜 왕후가 석물을 가설치 말라 하여 그 모습 그대로 남게 되었다.
왕릉과 왕비릉의 문무석인은 모두 신장이 매우 크고 당당해보이도록 제작되었는데, 마모가 심해 현재는 그 윤곽만 살필 수 있다.
대빈묘(大嬪墓)
대빈묘는 19대 숙종의 후궁이자 경종의 어머니인 희빈 장씨의 묘이다. 곡담이 봉분 주위를 에워싸고 있고, 봉분 앞쪽으로는 장명등이 배치되어 있다. 봉분의 양 옆으로는 문석인 한쌍이 마주보고 서 있다.
숙종은 오랫동안 아들이 없었는데 숙종 14년에 궁녀 장소의에게서 왕자 윤(경종)을 얻었다. 이듬해 윤을 세자로 책봉하고 장소의에게 희빈이라는 품계르 내렸다.
그후 인현왕후 민씨를 왕비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고 장희빈을 왕비로 책봉하였으나 숙종은 곧 이를 후회하고 인현왕후를 복위하고 장희빈에게 사약을 내렸다.
대빈묘는 원래 경기도 광주에 있었는데 1969년 6월에 이곳으로 옮겼다.
홍릉(弘陵)
정성왕후가 1757년(영조 33) 2월 15일 66세를 일기로 승하하자 영조는 왕비의 시호를 정성, 능호를 홍릉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현재의 위치인 서오릉 지역에 명혈을
택하게 하였다. 우허제(右虛制)를 쓰게 하여 훗날 자신도 정성왕후의 옆을 지키려던 영조의 바람은 1776년(정조 1) 정조가 이 홍릉 자리를 버려두고 현재 영조가 잠들어
있는 동구릉 내 원릉으로 능지를 정하는 바람에 물거품이 되었다.
창릉(昌陵)
창릉은 서오릉의 영역 내의 왕릉으로 조영된 최초의 능으로, 병풍석을 세우지는 않았으나 봉분 주위에 난간석을 두르고 있다. 석물 배치는 일반 왕릉과 같고, 양쪽 능침
아래 중간에 정자각과 홍살문을 잇는 축의 양 옆으로 수라방, 수복방 등이 대칭하여 배치되어 있다.
왕비 능침의 문석인은 왕릉과 달리 왼손에 지물을 쥐고 있으며 투구가 길고 짧은 상모(象毛)가 있다. 허리띠는 좌에서 우로 대각선을 이루고 있다. 무른 석재를 사용한 탓인지 다른 왕릉에 비해 풍화가 심하여 상태가 양호하지 못하다. 예종릉 앞 장명등은 지붕돌이 없어진 상태이다.
매표소에서 좌측으로 둘러보기 시작을 했다. 춘창원, 경릉, 대빈묘, 홍릉, 창릉을 둘러보고 남은 익릉, 수경원, 명릉을 가야하는데 입구에서 다시 시작을 해야하는지..
창릉에서 익릉으로 연결되는 길이 있는지 홍살문 밖에 나와 서성이고 있는데 아저씨 한분이 오셔서 여쭤보니 산책로를 돌아 가는길을 안내해 주셔서 동행을 한다.
창릉에서 익릉까지 약 2Km 정도를 걸어야 한다. 봉산을 가느라 수색에서부터 걸어온터라 약간은 힘에 부치지만 맑은 공기와 푸르른 숲에 흠뻑 빠져들수있는곳이라
망설임없이 계속 걷는다.
수경원
수경원은 조선 21대 영조의 후궁 영빈 이씨의 무덤이다. 후궁묘의 예로 조영하여 석물들이 단촐하게 꾸며졌다.
영조의 후궁이자 사도세자의 어머니인 영빈 이씨는 1764년(영조 40) 6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능은 경기도 고양 연희 신촌리(현재 서울시 신촌)에 조영되었으나, 한일합병 이후인 1920년대 연희전문학교가 인근에 개교하고 확장하면서 교내에 수경원이 위치하게 되어 1968년 6월 현재의 서오릉으로 천장하게 되었다.
오릉중의 하나인 익릉과 명릉을 놓치고 말았다. 오후에 집을 나서 산행을 하고 서오릉에 오니 시간이 넉넉치 않아 명릉을 보고 싶은 욕심에 수경원에서 바로 옆에 있는
익릉을 지나쳐와서 입구에서 아무리 명릉을 찾아도 볼수가 없다. 결국 매표소 밖으로 나와 주차안내인이게 물으니 명릉은 매표소 밖의 재실 옆에 따로 있는것을 안에서
뱅뱅 돌며 찾으니 없었던것이다.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 지금은 입장을 할수가 없다는 말에 할수없이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익릉과 명릉의 남은 과제가 있어 아마도 서오릉을 다시 찾게 되지 않을까..
철쭉
복사꽃
콩제비꽃
외제비꽃
고깔제비꽃
금낭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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