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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길상산374m(강화)과 온수리 한옥성당

by 아 짐 2020. 12. 30.

일 자 : 2020. 12. 29

참 가 : 아찌랑 나랑, 친구 혜숙이랑

코 스 : 로얄유스호스텔- 헬기장- 치마바위갈림길- 길상산- 선두리갈림길- 장흥리

 

오전에 전등사와 정족산 산행을 마치고 2차산행 길상산을 오른다. 강화갯벌도 볼 수 있는곳인데 오늘은 미세먼지도 많고 눈발이 휘날리는 날씨에 조망은 꽝이다.

 

유스호스텔 정문으로 들어가 우측으로 올라도 되고 도로를 따라 내려오다 아이들 놀이동산 같은 렌드로 올라가도 된다고 해서 렌드 쪽으로 갔더니 지키는 여자가 길이 아니라고 못가게 해서 다시 내려와 유스호스텔 정문으로 들어가 진행.

 

능선으로 오르며 뒤돌아 본 모습이다.  좌측 수로 같은 노랑색 아래로 올라 왔다.

렌드에서 오면 더 쉽고 짧게 올라 올수 있었는데 뭐 대단한거라고 못가게 하는지 ㅠ

 

부지런하신 준희님은 안가신곳이 없다 ㅎ

 

온수리에서 올라 정상으로..

 

오르락 내리락 심심치 않게 반복된다.

 

소나무가 많아 등로가 푹신한 느낌

 

헬기장

 

치마바위 가보고 싶은데 왕복 1km에 움찔하고 안갔는데 아쉬움이 남는다. 암장으로도 인기가 있는듯..

치마바위는 가슴아푼 전설이 서려있다.

16세기 중영 조선 중종 때, 금실 좋은 부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임신한 부인이 신 것이 먹고 싶다고 하자 남편은 싱아를 따러 범골로 가게 되었는데 그 곳엔 호랑이가 살기로 유명했습니다. 남편은 싱아를 따던 중 호랑이를 만나 목숨을 잃게 됩니다. 이 소식을 들은 동네 사람들이 호랑이를 잡기 위해 산속으로 몰려가 호랑이를 범골의 구덩이에 몰아넣고 고춧가루를 뿌려 눈을 멀게 한 뒤 호랑이를 때려잡았습니다.

남편을 잃은 부인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치마바위에 올라 치마를 뒤집어 쓴 채 뛰어 내려 남편의 뒤를 따르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범골에 가면 호랑이에게 뿌렸던 고춧가루 자국고 호랑이의 핏자국이 남아 있습니다. 한편, 임신을 하지 못한 부인이 매일 같이 치마바위에서 기도를 하면 임신에 성공하게 된다는 전설이 있어 마을 사람들은 치마바위를 보며 소원을 빌고는 했다고 합니다.

 

잡풀로 뒤덮힌 헬기장

 

정상 도착

 

백두대간 마치고 무릎이 신호 온다고 트레킹으로 전환해 전국을 헤매고 다니는 친구다 ㅎ

 

뭐라 쓰여있는지.. 강화 2등 삼각점인듯..

 

나는 할미약수터 방향으로 내려가려했는데 아찌는 장흥저수지를 고집하여 선두4리 방향으로 하산한다.

 

전망대 방향으로..

 

이곳이 전망대일까? 앞은 탁 트여있는데 완전 회색세상이다.

 

등로 좌측으로 뭔가 움직이는거 같아 당겨보니 케이블카가 움직인다.  강화루지 전망대로 오르는 케이블카다.

통영 미륵산루지는 알아도 강화에 루지가 있다는건 금시초문일쎄..

 

회전전망대라고..

 

선두리로 내려가자니 아찌가 장흥리로 하산해야 차 있는곳으로 가는 방향이 맞다고 우겨서 ㅋ

선두리로 내려가면 바닷가도 만날수 있는데..

 

루지전망대 올라다 보며 구경하다 내려오니 이런 괴기한 숲이 있다.  귀신 같다.  소나무같은데 뭐 이런 나무가 다 있나?

 

괴기한 소나무숲 아래쪽으로 내려오니 광산김씨 묘지가 있다는 안내석이 있는데 묘지는 보이지 않는다.

 

요란한 소리에 하늘을 쳐다보니 무슨 난리라도 난것처럼 새떼가 머리 위로 무섭게 날아 다닌다.  나 아무짓도 안했는데..

 

임도 같은 길을 돌고 돌아 이제 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장흥리에 도착해서 택시를 불러 전등사로 복귀.  산행중 소똥같은것이 있어 이것이 뭔가 했더니 건너편에 승마체험장이 있어서 말이 등로를 오르며 변을 본거 같다. 편자 자국이 있어서 말인것 같단 생각을 했는데 맞았다.

 

날머리 모습

택시요금 8천원을 내고 전등사 주차장으로 귀환하고 시간이 많이 남아 온수리한옥성당 구경을 간다.

 

대한제국 시기인 1906년(고종 43) 영국인 주교 조마가(Mark N. Trollope)가 지은 성당으로 우리나라에 전래된 초기 서양 기독교의 교회양식을 볼 수 있는 목조건물이다.

온수리 성공회 사제관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1호-

우리나라 성공회가 처음으로 전파되기 시작할 때 초대 선교사 고요한 주교와 함께 영국으로부터 내한한 조마가신부가 1896년 강화에 부임하여 선교를 시작한 1900년 전후 건축한 건물이다  이후 사제관이 퇴락하자 1933년 원형 그대로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사제관은 영국 성공회가 선교를 시작하면서 영국인 신부가 한국 전통 주거 문화 속에 어떻게 적응하고 생활해 왔는가를 짐작하게 할 수 있는 주거 공간으로 가치가 높다.  또 건축 수법이나 마름질 형식에서 완전히 한국적인 것만이 아니라 영국인들의 주문을 어떤 방식으로 소화하여 기술적인 적용을 하였는가를 드러내는 건축물이라 할 수 있다.  건물 형식은 ㄷ자형 벽돌 구조로 된 5량의 4간의 홑집이다.

 

순무김치 사고 싶어 강화에 왔는데 아찌가 조금더 가보다 하며 달리다 보니 초지대교를 건너버리고.. 순무김치는 물건너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