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경기도

교동도 화개산259.6m(강화) 과 대룡시장

by 아 짐 2021. 1. 1.

일 시 : 2020. 12. 31 (목)

참 가 : 아찌랑 나랑

코 스 : 교동면사무소- 화개정원- 연산군유배지- 화개약수- 효자묘- 화개산정상- 봉수대- 화개사- 교동면사무소

 

교동도(喬桐島)는 대한민국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면에 속한 황해의 섬이다. 2014년 완공된 교동대교를 통해 강화도와 연결되어 있으며, 민간인출입통제구역이기는 하나 누구나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다.   

 

원래 이름은 대운도(戴雲島)이다. 고림(高林) 또는, 달을신(達乙新)이라고도 불렀으나, 고구려 때 처음으로 현(縣)을 두어 고목근현(高木根縣)이라 하고, 신라 경덕왕 때 교동현이라 한 것이 오늘에 이른다.[1]

고려시대 때부터 수도와 가까워 강화도와 함께 왕과 왕족의 유배지로 사용되었다. 대표적으로 연산군, 광해군이 있으며 연산군은 여기서 죽었다. 그 외에도 임해군, 능창대군, 숭선군, 익평군, 영선군(고종의 조카 이준용), 화완옹주 등이 여기에 유배되었다.

전략적 요충지로 이용되어 경기수영 예하 함선과 병력이 항시 주둔하고 있었으며, 인조 시대에는 삼도수군통제사의 지휘에 들어가지 않는 경기, 황해, 평안 수영을 지휘하는 삼도수군통어영이 설치되기도 했다.

고종 32년(1895)에는 읍을 폐하고 강화와 합군하였다가 다음해 7월에 다시 읍으로 하고 군수를 두었다. 그때 당시는 교동 동서남북면 4개 면과 송가면을 합쳐 5개면이었다가 국권침탈 후(1910)에 송가면은 송남면으로 개칭하고, 본도는 4개면 13개로 구획되었다. 합군(1914) 이후, 송남면은 삼산면에 부속되었고 교동은 화개면과 수정면, 2개면이 되었다. 1934년 이후, 화개·수정면을 합면하여 지금의 교동면이 되었으며 현재 법정리는 13개, 행정리는 17개이다.

본도는 인천광역시 서해안에 놓여 있으며 동남은 양사면, 삼산면, 서도면과 마주하고 있으며 서북으로는 불과 5km 밖의 바다를 사이에 두고 북한과 군사분계선을 이르고 있어 황해도 연백군이 눈앞에 보인다. 도서라고는 하지만 비교적 평야가 많으며 해안선은 평탄한 편이고 해저는 수심이 얕고 간만의 차가 심하다.

2014년 7월 1일에 교동대교가 개통되어 강화 버스 18번과 자동차로 교동도를 갈 수 있게 되었다  - 위키백과-

 

날씨가 영하10도를 운운하며 엄청 춥다는 예보다.  용인의 산행지를 택했는데 아찌가 정족산 다녀오며 친구와 화개산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를 귀담아 들었는지 본인도 못가본곳인데 강화를 다시 가자고 한다.

나고 교동도를 가보고 싶던차라 OK

보통 강화를 가려면 초지대교를 건너는데 교동도로 네비를 맞추니 강화대교를 건너고 다시 강화도의 또다른 섬 교동도는 연륙교인 교동대교를 건넌다.

 

교동대교를 건너기 전 검문소를 통과하는데 아무 제재없어 헌병의 거수경례를 받으며 통과 ㅎ

 

교동면사무소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산행은 시작 된다.

 

면사무소 주차장 우측으로 진행

 

화개산 안내도인데 산행지도라기 보다는 강화 나들길 지도 같다.

 

아담한 마을의 모습

 

화개정원이 깔끔하게 조성되어 있는데 썰렁한 모습이다.

강화군에서는 화개정원과 화개산전망대 조성사업에 33억의 예산을 책정했다고 한다.  

 

교동에서 추억여행이 한동안 유행했었다 추억의 사진관에서 사진도 찍고..

 

연산군유배지도 공사중이라 폐쇄되어 못보겠구나 아쉬었는데 등로 옆으로 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갈림길 우측 화개산약수터 방향으로..

 

1월1일부터 출입을 금한다고 줄을 쳐놨는데 오늘은 12월31일니까 넘어 간다 ㅠ

 

고구리 조선시대 한증막

선조들의 치병과 목욕시설의 하나인 이 한증막은 조선 후기부터 1970년대까지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황토와 돌을 이용하여 축조하였고 둘레가 15m, 높이는 3m이다.  소나무로 불을 지펴 그 열기로 가열하고 일정한 온도가 되면 물을 뿌려 불을 끄고 이때 발생하는 수증기로 공기가 가습되면 입욕자는 헝겊이나 가마니를 두르고 들어가 땀을 내는 방법으로 탕욕을 하였다.

교동 한증막은 이 곳뿐만 아니라 수정산과 봉소리를 비롯하여 여러 곳에 있었다.

이곳은 2008년 마을 정비사업의 일환으로 복원되어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한증막과 유배지를 바라보며 등로를 오른다.

 

연산군이 최후를 맞은 위리안치 유배지로 전해오는 곳이다. 위리안치 상황과 소달구지를 타고 유배 온 연산군 모습 등을 재현해 놓고 전시관을 세웠다. 전시관에서 유배형의 종류, 교동도 유배 역사를 알아볼 수 있다고..

 

쉼터

 

무너지고 있는 성벽

 

 

교동대교를 건너 면사무소로 올때 지나왔던 저수지의 모습이다.

 

화개약수는 산성내의 유일한 약수로 주둔하던 병사들이 사용하였다고 한다.

 

계단을 올라가면 쉼터 우측으로 효자묘가 있다.  자그마한 봉분 하나가 있는데 설명처럼 삼국시대의 묘라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이 바위덩이 위가 정상이다.

 

정상에 다녀온 뒤 화개산봉수대로..

 

탁 트인 정상의 모습

 

투명 아크릴판에 지명을 적어 놓아 사진으로 볼 때는 그림의 지점 이름인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라는것 ㅋ

방향만 제시해준것 일뿐..

 

강화의 산줄기가 날씨가 좋아 뚜렷하게 보인다.

 

별립산과 뒤쪽의 고려산 혈구산이 보이고..

 

석모도의 상주산이 우뚝하고..

 

망원경이 있어 바라보았는데 안보이고.. 멀리 보이는 곳은 이북땅이라고 한다.  황해도 연백

 

추워서 털모자로 얼굴 꽁꽁 싸매고 다니고 ㅎ  손가락 시려 ㅠ

 

화개사와 향교가 있는 마을 모습

 

정상에서 내려와서 봉수대 방향으로..

 

화개산 봉수대

화개산 봉수대는 화개산과 잇대어 있는 연봉 정상에 자리 잡고 있르며 현재 낮은 석단만이 남아 있는데 가로 4.6m, 세로 7.2m이고 잔존높이는 1.2m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남쪽으로 본도의 덕산봉수에서 연락을 받아 동쪽으로 하음 봉선산 봉수로 응한다고 되어 있다.

 

소나무 뒤로 정상

 

전망대 조성사업 안내판인데 소장이 여자인가? 것도 외국여자?

 

화개사로 내려가는 길은 약간의 바위구간이다.

 

우측 나무 아래도 면사무소와 초등학교가 보인다

 

화개사로..

 

이 사립문을 나와 화개사로..

 

화개사

 

고려때 목은 이색이 공부 했다는 작은 암자이다. 이 소나무는 200년된 보호수이고.. 높이 14m의 키큰 소나무

 

화개사에서 나와 교동면사무소로..

 

강화나들길 꼬리표가 많이 달려 있다.

 

고라니 조형물

 

마을길 한바퀴 돌고 면사무소로 갈라켔는데 아찌가 앞서 면사무소 방향으로 가버려서 차로 한바퀴 돌았다는 ㅋ

 

 < 교동 대룡시장을 찾아서 >

대룡시장은 6.25 전쟁 때 황해도에서 교동도로 월남하였던 실향민들이 휴전 이후 북으로 갈 수 없게 되자, 황해도를 추억하는 마음으로 황해도 연백군에 있다는 연백시장을 본따서 만든 재래시장이다. 

시장에서 중멸치 똥 갈라 매콤하게 볶아 놓은 가게에서 뜨꾼한 국물 얻어 마시고 고마워서 멸치 한박스 사고 해물다시포도 사고 아주머니가 추천해주시는 떡집으로 가서 가래떡도 만원어치 사서 차 안에서 요기도 하며 시장구경을 마친다.

 

이제 1차 산행을 마치고 마니산으로 이동.

마니산 함허동천 주차장에 도착했는데 입구에 12월15일부터 무한정 산행을 금한다는 표지가 도로를 막고 있다.

전화를 해보았는데 마니산 어느 구간도 산행을 할 수 없다고 한다.

계획에 차질은 생겼지만 그렇다고 그냥 후퇴 할 수는 없는 일.. 강화에서 세번째로 높다는 진강산으로 간다.

코로나 여파로 사람이 모일수 있는곳은 사전에 모두 차단한다는 얘기다. 

사람이 안 모이는곳으로 다니려고 노력했는데 마니산이라니.. 내가 잘못했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