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시 : 2022. 05. 17 (화)
참 가 : 아찌랑 나랑
코 스 : 흑석산자연휴양림- 가리재- 전망대- 바람재- 깃대봉- 흑석산(노적봉)- 가래재- 가학산- 휴양림
어제는 해남의 금강산 산행을 하고 오늘은 작년 봄 별뫼산, 흑석산, 가학산 산행을 계획하고 산행을 하다 아찌가 가래재에서 부상을 입어 별뫼산만 산행을 하고 흑석산기도원으로 퇴각을 했던터라 그때 못간 가학산, 흑석산을 오른다.
5월 중순 화창하고 산행하기 좋은 계절인데 낮으로는 한여름 처럼 무덥고 아침 저녁으로는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일교차가 심한 요즘이다.
흑석산자연휴양림 입구 주차장에 주차를 한 후 산행을 시작한다.
대체로 산행 들머리에 화장실 시설이 있는데 이곳은 아무리 둘어 봐도 찾을수가 없더니 올라가다 보면 좌측으로 숲속의집 옆에 화장실이 있다. 아마 휴양림 이용객의 편의를 위한 시설인듯 하다.
휴양림 동을 확장하는지 여러곳에서 공사가 한창이다.
휴양림에서 올라 가리재에서 우측으로 진행하여 바람재, 깃대봉, 문턱바위를 지나 가학산으로 진행하는데 가학산 위치에 두륜봉이라고 표기가 되어 있는것 같다.
흑석산도 노적봉이라고 칭하는것 같던데 1山 2名 이거 헷갈린다.
입구에서 오르다보면 좌측에 숲속의집과 화장실이 있고 산행은 우틀한다.
단풍나무
등산로 방향으로 진행
때죽나무
흑석산 치유센터앞에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 된다.
가리재로 올라 좌측은 두억봉, 우측은 흑석산 방향이다.
예쁜 쉼터도 있고.. 휴양림 시설을 잘 만들어 놓은듯 하다.
가리재 도착. 우측 전망대 방향으로 진행
골체미 넘치는 월출산의 모습이 보인다.
두억봉의 모습을 뒤돌아 보고..
어제는 많이 힘들었는데 오늘은 몸이 풀렸는지 오름이 다닐만하다 ㅎ
광주 출장을 오면 숙소~근무지만 왔다 갔다 하니까 운동량이 없어서 산행 첫날은 항상 힘들더라는..
서울은 지하철 출퇴근만 하여도 계단 걷는게 많아 운동 하기 싫어도 저절로 운동이 된다 ㅋ
아래 휴양림이 보인다.
그늘은 바람도 불고 시원한데 능선에 오르면 햇살이 따끈따끈하다. 벌써 땀이 줄줄.. 한여름은 우짤까 ..
학계리 전경
저기 깃대봉이 보인다고 아찌가 설명 한다. 깃대봉과 흑석산 정상이 보인다.
양쪽으로 낭떠러지를 이루는 암봉으로 이루어진 능선길이다.
뒤돌아 본 내가 걸어온 길이 보이고 그 뒤로 두억봉이 보인다.
바위가 시커멓게 보여서 흑석산이라고 한다고 하던데 역광으로 보면 시커멓네 ㅎ
월출산이 계속 시선을 끄는데 박무가 심해 시원하게 보이질 않아 답답하다.
애기나리
전망대 도착
지나온길을 뒤돌아 보고..
깃대봉으로 진행
깃대봉 아래 조망바위에서.. 계속 호미동산의 위용이 시선을 잡는다.
바람재
흑석산은 봄이면 철쭉동산을 이룬다 하는데 지금은 시기가 지나 조금 남아있는 정도다.
뭐든지 타이밍이 중요한데 그걸 맞추기가 쉽지 않다. 살다보면 이렇게 뒷북치는게 다반사다 ㅠ
이제는 방향이 바껴 호미동산과 뒤로 별뫼산이 보인다.
지나온 전망대를 뒤돌아 보고..
흑석산 정상과 가학산 정상이 보인다.
깃대봉 650m 이곳이 흑석산의 정상이라고.. 대삼각점이 있다.
가야 할 흑석산과 가학산 능선
흑석산과 가학산을 다녀오면 이곳에서 휴양림으로 하산하게 된다.
흑석산의 단애
바람이 시원하여 바람 맞는중 ㅎ
흑석산(노적봉)650m 정상석은 없고 이정목이 정상석 역활을 한다.
호미동산의 위용이 대단하다.
진행해야 할 가학산과 뒤로 별뫼산 능선이 보인다. 작년 별뫼산 산행시 가학산 아래에서 하산했는데..
이제 가학산으로..
정상에서 내려온 로프구간
바람골이다. 이곳이 문턱바위인가? 시원한 그늘에서 앉아 점심을 먹고 쉬어 간다.
호미동산은 위험하다고 하니 엄두가 안난다. 호미동산을 가려면 빽해야하고.. 날도 덥고 힘들고..
이제 가학산으로 간다.
가학산 정상의 위용
정상 오름 로프구간
가학산에서 바라보는 호미동산
아래 흑석기도원이 보이는 별뫼산 능선
가학산 정상도 이정목이 정상석을 대신 한다.
오늘 걸은 능선이 한눈에 보인다.
장구채
큰꽃으아리
다시 왔던길 빽해서 휴양림 갈림길로 간다.
두번만에 흑석산을 왔으니 만세를 부르라고 ㅋ
이제 하산이다.
가학산, 흑석산 안녕 ~~
내리막길은 쪽돌이 많아 미끄럼 주의가 필요하다. 몇번 넘어질뻔 했다.
지나온 능선의 뒷편이다.
은굴 갈림길
휴양림 방향으로 진행. 계속 콘크리트길로 내려 간다.
아름다운 화단을 보며 오늘 산행을 마친다. 벼르던 해남의 명산 흑석산, 가학산 산행을 마치고 밀린 숙제를 마친 느낌이다.
광주 출장을 다닌 덕택에 호남의 산행을 많이 했는데 너무 편중된 느낌도 든다 ㅎ
내일은 강진 수인산을 갈 예정이라 강진으로 이동한다.
시간이 많이 남아 수인산 들머리 홈골저수지 답사를 왔는데 이곳도 호젓한 산행을 할 것 같다.
이곳은 작약을 대단지로 심고 있는데 화려하고 아름답다.
해가 중천이라 시간이 많이 남아 강진군 병영면에 위치한 전라병영성 구경을 간다.
< 전라병영성 >
사적 제397호. 일명 ‘설성(雪城)’ 혹은 ‘세류성(細柳城)’이라고도 한다.
1417년에 지금의 광주광역시인 광산현(光山縣)에 있던 병영을 지금의 터인 당시 도강현(道康縣)으로 옮기어, 당시의 병사 마천목(馬天牧)이 쌓았다고 하며, 둘레가 2,820척이고 높이가 10척 8촌이라 하였다.
1599년에 병영을 일시 장흥(長興)으로 옮겼다가, 5년 만에 성곽을 수리하여 다시 병영이 되었고, 1894년의 동학농민전쟁으로 폐허화되자 이듬해에 영을 폐지하였다.
특히 이 성에서는 1656년부터 1663년까지 네덜란드인 하멜(Hamel, H.) 일행이 억류되어 생활한 바 있다. 성벽은 둘레 1,060m이고, 높이가 약 3.5m로 남아 있으며, 남북으로 길다란 장방형에 가까운 평면이다.
동서남북에 옹성(甕城 : 성문의 앞을 가리어 빙 둘러친 성문을 방어하는 작은 성)을 갖춘 문터, 그리고 4개의 모서리와 동벽 및 서벽에 2개씩의 치성(雉城 : 성벽에서 돌출시켜 쌓은 성벽)의 흔적이 남아 있고, 남서쪽에 두 곳의 배수구 시설이 있다.
성벽은 조선시대 읍성과 평지의 진영에 일반적으로 적용된 축조방법이 잘 남아 있다. 배후에는 해발 561m의 수인산(修仁山)에 산성이 있다.
1555년(명종 10) 을묘왜변(乙卯倭變) 때 왜구가 달량진(達梁津)으로 쳐들어오자 병사 원적(元績)이 달량진성을 구원하기 위하여 출전하였으나 전사하고 성은 함락되었으며, 임진왜란 직전인 1581년까지에 대대적인 수축이 있었다. 1894년 12월 4일에 동학농민군이 장흥성을 함락하고, 이어 10일에는 병영성이 함락되었다.
병영성은 인근 4개면 57개 마을을 관할하는 도회로서 성안에는 객사인 청심각(淸心閣)과 그 후신인 망미루(望美樓), 문루인 공무루(共武樓)를 비롯하여 아사(衙舍)인 운주헌(運籌軒)과 그 문루인 제승루(制勝樓), 남문인 진남루(鎭南樓)와 군기고를 비롯한 각종의 공공건물이 즐비하였고, 9개의 우물과 5개의 연못이 있었다. 하마비(下馬碑)를 비롯한 3개의 병사 선정비가 남아 있다. -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펌-
병영 마당에 그득한 보랏빛 등갈퀴나물
망루에 올라 뒤쪽 치 으슥한곳에 자리 깔아 놓고 편히 누워 휴식도 취하고 ㅋ
오늘도 텐트를 안치고 차박을 하기로..
2019년에 친구들과 강진 여행 왔을때 이곳 병영성을 왔었는데 그때는 없던 양궁장이 생겼는데 저녁 늦게까지 운영을 한다. 7시가 지나니 넓은 병영에 우리 부부만 남아 일몰까지 구경하며 호젓한 시간을 보냈다.
월출산으로 해가 넘어 가고 있다.
병영 돌고 시간이 남아 읍내도 돌아 보고.. 장날이었으면 좋았을텐데..
하멜기념관
우리 속담에 ‘한 냥짜리 굿하다가 백 냥짜리 징 깨뜨린다.’라는 말이 있다. 효종, 현종 연간에 동인도회사의 선원 하멜 일행을 억류했던 조선 위정자들의 행태가 바로 그랬다. 서세동점의 기운이 무르익던 그 시절 조선은 북벌이라는 허망한 명분에 집착하여 국고를 탕진했을 뿐만 아니라 백해무익한 예송논쟁으로 허송세월하느라 백성들의 삶을 외면했고, 서구와 접촉하여 그들의 우수한 과학문명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까지 놓쳐버렸기 때문이다.
17세기 아시아 시장 개척에 분주하던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선박이 제주도 근해에서 난파되면서 하멜이라는 벽안의 이방인이 조선사에 의미심장한 족적을 남겼다.
한데 그 무렵 연이은 흉년과 기근으로 국가 파산사태에 직면하고 있던 조선은 하멜 일행의 억류사실을 대외적으로 은폐하는 데 급급했다. 그 때문에 하멜은 동료들과 함께 13년의 세월 동안 갖은 고초를 겪은 뒤 조선을 탈출했고, 《하멜표류기》로 알려진 보고서를 통해 조선의 실상을 알렸다.
하멜의 보고서를 통해 조선의 실체를 인식하게 된 동인도회사에서는 장차 중국시장 개척의 교두보로서 조선과의 직교역을 원했지만 불안한 내정에 얽매인 조선 위정자들의 외면과 일본 막부의 지능적인 방해공작 때문에 무산되고 말았다. 그 후 일본은 양학과 난학을 발전시켜 장차 메이지유신으로 이어지는 개혁 개방의 토대를 쌓아간 반면 조선은 유교근본주의에 매몰되어 서학이나 북학조차 포용하지 못하고 소중화 논리에 목을 맨 우물 안 개구리가 되었다.
- 다음 백과사전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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