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시 : 2024. 03. 29 (금)
참 가 : 나홀로
코 스 : 봉황산자연휴양림 등산로
3일 연산 계획을 세우고 오늘 마지막 산행을 하는날이다. 어제는 하루 종일 비가 왔는데 오늘은 다행히 아침에 일어나니 비가 멈춘 상태다. 그런데 일기예보에는 비 소식이 있다. 어디로 가야 하나 고민을 한다.
미인봉, 신선봉이 바위가 많은 산인데 어제 종일 비가 와서 바위에 물기가 많을것 같고 오늘도 역시 비 예보가 있으니 아찌가 산행은 그만두고 주변 관광을 하고 집으로 가자고 한다.
알았으니 그럼 휴양림에 등산코스가 있던데 봉황산을 올라갔다 오자 제의를 했는데 아찌는 안간다고 혼자 다녀오라고..
그래서 혼자 휴양림 사무실 뒷편으로 올라 간다.
혼자 빈몸으로 나서며 돌아다 본 야영장 모습.. 텐트가 젖어 있어서 빨리 말랐으면 좋겠다 ㅎ
어제는 캬라반 이용객도 있었는데 아침 일찍 떠나가고 텐트도 어제 아침 떠나가고.. 완전 나의 천국이었다.
산에 올라가보니 여기가 봉황산이 아니고 을궁산이던데 휴양림 이름을 왜 봉황이라고 했을까? 봉황산은 따로 있던데..
그러고 보니 휴양림이름도 봉황산이 아니고 봉황이구나.. 나혼자 산이라고 착각했는갑네 ㅋ
관리사무소 뒤 등산로로 올랐다가 을궁산 정상에서 우측 등산로를 따라 내려 온다.
사무실 뒷쪽으로 오르는 코스는 악산이라고 표기 되어 있고 우측은 너른 임도로 되어 있는데 나는 좌측 악산으로 간다.
등로가 확실해 혼자 올라가도 걱정은 안해도 될것 같다. 그런데 산 모양새가 어째 으시시하다 ㅎ
쓰러진 나무 아래를 지나고.. 조용한 산속에 처음 들어 보는 새 소리가 앙칼지게 들린다.
오름이 엄청 가파르다. 이래서 악산이라고 하는것 같다. 중간 중간에 저런 천 조각을 매달아 놓아 길잡이 역활을 한다.
진달래야 반갑다 ~~ 어제, 그제 이틀 동안 봄꽃 구경을 못했는데 여기서 진달래를 보네..
이곳 경사도 엄청 심하다.
곳곳에 저런 쇠판이 있어 무언가 설명하는가 하고 들여다 보니 붙여 놓았던것을 일부러 땐것 같은 모양새다. 암껏도 없다.
옆 조망도 없고 무조건 앞만 보고 올라간다.
내리막에 아래가 조금 보일랑 말랑 하지만 흐린 날씨탓에 여전히 볼것이 없고..
이곳이 정상인지 꼬리표가 달려 있다. 정상을 알리는 아무런 표시도 없다. 좌측으로 가보니 지맥길 연결하는것 같고 뚝 떨어졌다 앞에 엄청 높이 보이는 산을 다시 올라야 하는것을 보아 오늘 가야 할 코스는 아닌것 같아 다시 이곳으로 와 우측으로 진행한다.
혼자 휴대폰 타이머 맞춰 놓고 찍었는데 핀트가 좀 안맞았지만 이것밖에는 없어서리 ㅋ
관리사무소에서 올라 밤나무골 방향으로 간다.
좌측으로는 시그널이 많이 달려 있다. 저 끄트머리까지 갔다 되돌아 왔다.
나무 사이로 무쇠봉이 보인다. 이곳이 오늘 본 유일한 조망이 아닐까 ㅋ
빡시게 올라온 만큼 내리막도 가파르다.
가는잎그늘사초(산거울)
앞을 막어선 봉우리를 또 올라야 하나 생각하며 내려 왔는데 우측으로 등산로 안내판이 있다.
정상에도 없던 을궁산을 여기에 표시해 놨다. 설마 여기가 정상? 저 봉우리를 올라가 볼걸 그랬나? ㅠ
앞에 철탑이 있는데 좌측으로 등로가 보여서 가보았는데 절개지 사면에 발짝 하나 간신히 딛을 만한 땅을 허락한 터라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조심해서 내려 갔는데 내려가서 보니 철탑을 통과하면 편하게 올 수 있더라는..
요렇게 길이 있어서 따라 갔다.
측면 빠져 나와 보니 철탑 아래 길이 있었다.
이곳은 진달래가 이제 봉우리를 펼치려고 애쓰는것도 있고 만개한것도 있고.. 암튼 진달래가 제철인것 같다.
아래 휴양림 시설이 보이는것 같다. 간만에 외지 혼자 걸으니 심장이 쫄깃한 맛이 난다 ㅋ
아래가 내려다 보여도 아직 오르락 내리락이 남았다.
이제 마지막 급경사구간 내리막인듯 하다.
내려와서 올려다 본 날머리 모습이다. 설렁설렁 산책길은 아닌듯..
이런곳이 산책길이지 ㅎ 아짐씨 두 분 산책하는걸 보니 이곳에서 주무신듯..
산책로 따라 좌측으로 내려 간다.
우측은 참나무골 휴양림
산책로에는 산수유가 활짝 피었다. 혹시나 하고 가지를 꺽어 보니 생강냄새가 안난다 ㅎ
산수유
보훈요양원 건물이 보인다. 휴양림 들어 오는 입구에 있다.
과수원을 하는 가정집인지 펜션인지 한적하고 아름답다.
이곳이 처음 악산 옆 등산로 표시인데 안 올라가봐서 길 상태는 모르겠고 우측 빨간 화살표 방향으로 내려 왔다.
내려온 길
한바퀴 돌고 오니 아찌가 짐정리는 다 마치고 텐트만 남겨 놓았다. 아직 물기가 남아서 집에 가서 말려야 한다.
이틀 봉황자연휴양림에서 잘 묵고 사무실에 키 반납하고 잘 쉬었다 간다는 인사를 남기고 이제 아찌가 말한 관광모드 첫번째 중앙탑으로 간다.
< 중 앙 탑 조각공원 >
< 중원의 꿈 1999년 김경화 작 >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 국보제6호
중원문화를 대표하는 유산인 이 탑은 신라석탑 중 유일한 7층 석탑으로 통일신라기에 우리나라의 중앙에 세워져 '중앙탑'이라고도 한다.
건립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주장이 있으나 대체로 8세기 후반~9세기 초로 추정되고 있으며 10개의 크고 긴 돌로 지대석을 마련하고 2중 기단을 쌓아 올렸다. 탑 전체의 높이는 12.95m 정도로 높이에 비해 너비가 좁아서 가늘게 치솟은 느낌이 강하여 안정감보다는 상승감이 두드러지는 탑이다.
1917년 해체, 복원시 6층 탑신에서 훼손된 고서류 일부와 구리거울 2점, 목제칠합과 은제사리합이 나왔고 기단부에서는 청동합이 발견되었는데 구리거울은 고려시대의 것으로 이 때에도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탑은 여러 차례 해체. 복원과정에서 원형과 달라진 부분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온유한 사랑 1999년 황영숙 작 >
< 새 1999년 김봉구 작 >
< 바다의 하늘 >
< 신전 1999년 유영교 작 >
< 명상 1999년 김태덕 작 >
< 숲 1999년 지경수 작 >
꽃다지 군락
중원탑에서 결국 비를 만났다. 아찌 말대로 미인봉, 신선봉을 안가길 잘한것 같다.
날씨가 서늘해 근처에서 뜨끈한 국물이 있는 음식을 먹고 싶었는데 아찌가 귀찮다고 차안에서 간단하게 요기를 하자고..
만만한 빵과 커피, 과일을 입다심하고 이제 탄금대로 간다.
< 탄 금 대 중원문화길 산책 >
육당 최남선의 탄금대비
주차장에서 바라보는 야외공연장
충주 탄금대(彈琴臺) 명승 제42호
탄금대는 해발 108m 정도의 야트막한 대문산에 위치하며 남한강과 달천이 합류하는 지점(합수머리)에 자리하고 있다.
'탐금대'라는 명칭은 악성 우륵선생이 가야금을 연주한데서 유래하였다.
우륵선생은 원래 가야국 사람이었는데 신라 진흥왕이 가야지역을 차지한 후 사민정책에 따라 충주로 이주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조선시대 선조25년(1592) 4월 임진왜란시 신립장군은 탄금대에서 8천여명의 병사들과 배수진을 치고 고니시 유키나가군대에 맞서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한 옛 전쟁터이기도 하다.
탄금대는 남한강과 달천이 합쳐지는 지점에 위치하여 경관이 아름다워 2008년 명승 제42호로 지정되었다.
탄금정 인근에 고대 토성의 흔적이 남아있으며 충혼탑과 팔천고혼위령탑 등의 현충시설을 갖추고 있다.
안내글을 읽어 보고 안내도를 따른다. 크게 한 바퀴 돌아볼 예정이다.
< 땅 1994년 최은경 작 >
< 하늘로 1994년 정창훈 작 >
1,953위의 위폐를 모신곳
충장공 신립장군과 팔천고혼위령탑 충주시 칠금동 산1-1번지
이 탑은 1592년 4월 28일 도순변사 신립이 휘하 장졸 8천여 명과 함께 이곳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치고 나라를 수호하고자 왜적을 맞아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한 전적지임을 기리기 위한 위령탑이다.
탑 상단에 형상화 된 혼불은 산화한 영령들을 추모하는 모습으로 조국을 지키는 수호신을 의미하고 아래부분의 신립장군과 4인의 군상은 죽음으로써 국토를 지키는 불굴의 충정을 나타내고 있다.
또 바위와 바닥부분의 원반모양은 탄금대를 싸고 도는 남한강과 달천의 물결모양을 살려 구성한 것이며 탑 뒷부분의 부조는 당시의 탄금대 전투를 생생하게 느낄수 있도록 표현하였다.
감자꽃 노래비
양 진 명 소
탄금대를 감싸고 흐르는 남한강 북쪽 강변에 있는 포구입니다, 이곳은 버드나무 숲이 울창해 한낮에도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나루터로 고려시대부터 나라에서 봄, 가을에 향과 축문을 내려 제사를 지냈습니다
남한강을 오가는 배의 안전과 나라의 안녕과 풍년을 용왕님께 비는 오룡굿은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 願 1994년 이관기 작 >
탐금대기 (彈琴臺記>
이 비석은 충주의 역사와 지리, 인물과 자연환경을 예찬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비석의 높이는 183cm, 폭은 66cm, 두께는 34cm의 화강석으로 1954년에 세워졌다.
충주는 국토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고 남한강과 달천이 만나는 곳이다. 또한 땅이 기름지고 교통의 중심지 이기 때문에 삼국시대 때부터 세 나라가 서로 이곳을 차지하기 위하여 세력을 다투었다.
이 후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에는 신라의 특수행정구역이었던 오 서경중 하나인 중원소경이 설치되는 등 이처럼 충주는 예부터 중요한 지역으로 여겨져 왔다.
또한 충주는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의 고장으로 뛰어난 음악가 우륵, 대문장가 강수, 명필 김생 등이 배출되어 이 고장의 문화 예술을 꽃피웠으며 뿐만 아니라 임진왜란 중 탄금대 전투 때 활약했던 신립, 병자호란 때 활약했던 임경업 등이 배출된 충절의 고장이기도 하다.
이 비석은 이 같은 과거의 영예로움을 이어 받아 문화의 원천이 되고 인재가 모이는 고장이 되려면 지역 주민들의 끊임없는 노력과 올바른 전통이 있어야 한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비석의 글은 최남선이 짓고 글씨는 서예가 김충현이 쓴 것이다.
탄금정 우측 데크로 내려가면 열두대가 있다.
열두대는 탄금대 북쪽 남한강 변 절벽 위에 있는 바위로 임진왜란에 신립장군이 뜨거워진 활시위를 식히기 위해 이곳에서 강 아래를 열두 번이나 오르낙 내리락 했다고 하여 이름이 열두대라고 붙여졌다고 한다.
이곳은 임진왜란의 격전지였고 1592년 왜군이 선산, 상주, 문경을 차례대로 진격했다. 조선 최정예 부대의 장수였던 팔도대원수 신립이 전투에서 패하자 남한강에 투신했다고 전해진다.
얼두대에서 바라보는 남한강과 달천이 합처지는 합수점에 우륵대교와 탄금대교.
탄금정에서 내려오니 대흥사가 있어 들러 본다.
신라시대 사찰 용흥사가 있던곳인데 거란전으로 소실되었던것을 1956년에 재건하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대한불교 태고종 사찰이라고 한다.
대흥사 뒤로 비각이 있어 당겨 보았는데 무슨 비각인지 확인을 못했다.
이제 주차장으로 올라 간다.
국궁장이 있다.
선괭이눈
냉이꽃은 꽃말이 봄색시로 당신께 모든것을 드립니다
말냉이로 냉이꽃과 꽃은 같은데 잎이 다르다.
충주문화원
주차장으로 한 바퀴 돌아 왔다. 주차 공간도 넓고 한적하게 걷기에 좋은곳이며 역사공부까지 겸할 수 있는곳이다.
계획대로 다 이루지는 못했지만 꿩 대신 닭이라고 오늘 생각지도 못한 탄금대와 중앙탑 관광을 했다.
이곳이 대문산에 위치하니 아찌가 나보고 오늘 1일2산을 했다고 한다 ㅋ
충주는 멀지 않아 귀가도 쉽고.. 가는 길에 잠깐 비가 내리기도 했다.
예전에 내가 비를 몰고 다니는 여자란 별칭을 얻을 정도로 어딜 가면 비가 왔는데 다시 그럴 조짐이 보인다. 아서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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