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서울 서울

멋진 가을 날 고궁 나들이 (덕수궁, 경희궁)

by 아 짐 2024. 11. 6.

일 시 : 2024. 11. 05 (수)

참 가 : 나홀로

코 스 : 시청역 -덕수궁- 덕수궁돌담길- 정동교회- 캐나다대사관- 경교장- 돈의문박물관마을- 경희궁- 광화문역

 

 

 

 

함녕전은 고종이 거처하던 침전으로 1919년에 이곳에서 승하하였다.  1904년에 화재로 소실된 후에 다시 지었다.  

대청마루 양 옆으로 온돌방을 들였고 사방 툇간에 방을 두른 전형적인 침전 건물이다.  함녕전 뒤편에는 계다식 정원을 꾸몄고 전돌로 만든 유현문과 장식적이 굴뚝들을 설치했다. 

 

 

덕홍전

다른 궁궐과 달리 덕수궁에는 황후의 침전이 따로 없는데 그 이유는 명성황후가 1895년 을미사변으로 경복궁에서 시해된 후 고종이 다시 황후를 맞이하지 않았기 댸문이다.  황후의 침전을 대신하여 명성황후의 신주를 모신 경효전을 세웠다. 

경효전은 1904년 화재로 불타 없어지고 그 자리에 덕홍전이 전해온다.  

덕홍전은 외국 사신을 접견할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외관은 전통식이지만 내부는 서양식으로 꾸몄다.

 

 

함녕전 뒷모습

 

 

정관헌(靜觀軒)은 1900년경 고종의 침소인 함녕전 후원에 지어진 동양과 서양의 건축 양식이 절충된 독특한 건물이다. 

건물의 동. 서. 남 세 방향에 지붕이 돌출된 포치 형태로 나무 기둥과 금속 난간이 세워져 있다.  기둥 윗부분과 난간에는

모란과 박쥐, 소나무, 사슴 등 한국의 전통 문양이 새겨져 있다.

이곳은 역대 왕의 초상화인 어진을 모셔 두기도 했고 고종의 어진과 순종의 황태자 시절 초상화인 예진을 그리던 공간으로 쓰이기도 했다.

 

 

즉조당과 석어당은 선조가 임시로 거처했을 때부터 사용한 유서 깊은 건물이다.

즉조당은 대한제국 초기에 정전으로 사용되었다가 중화전이 완성된 이후 편전으로 활용되었다.

 

 

석어당은 덕수궁에 남아 있는 유일한 중층 목조 전각이다.  1904년에 불타 없어졌던 것을 1905년에 다시 지었다.

석어당(昔御堂)은 선조가 거처하다 승하한 유서 깊은 건물이다.  석어당은 현존 유일의 목조 2층집으로 단청을 입히지 않아 소박한 살림집 같다.  1623년에 대부분의 전각과 땅을 원 주인에게 돌려주었으나 이 두 건물만은 보존하여 경운궁의 상징으로 삼았다.  

 

준명당(浚明堂)은 고종이 업무를 보던 편전이며 즉조당과 복도로 연결되어 있다.  현재의 세 건물은 1904년에 불에 탄 것을 같은 해에 다시 지은 것이다.

 

 

석조전은 1897년 대한제국 선포 후 건립을 계획하여 1900년 착공하였고 1910년에 준공하였다.  엄격한 비례와 좌우대칭이 돋보이는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내부에 접견실, 대식당, 침실과 서재 등을 갖춘 근대 건축물이다.  황실의 공적 공간인 1층은 중앙홀, 접견실 등을, 황실의 사적 공간인 2층은 황제 침실, 황후 거실 등을 재현하였다.

석조전은 일제강점기에 다양한 용도로 사용하면서 훼손되었지만 2014년에 1910년 준공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하여 석조전 대한제국역사관으로 개관하였다.

 

 

석조전 앞에 커다란 나무는 가시칠엽수 나무(마로니에)로 수령 100년 정도로 예상한다.

 

 

돈덕전은 대한제국의 서양식 외교 건물로 1902~3년에 고종 즉위 40주년 기념 예식에 맞추어 대규모 국제행사장으로 지어졌다.  이 건물은 국제교류를 실현하고 열강과 대등한 근대국가의 모습과 주권 수호의 의지를 세계에 보여주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프랑스 파리에서 유행한 화려한 건축양식을 사용하였고 외교 사절의 접견실이자 연회장, 국빈급 외국인의 숙소 등으로 사용되었다.  돈덕전은 1920년대에 일제에 의해 훼철되었으나 복원정비사업을 거쳐 2023년에 개관하였다.

 

 

돈덕전 앞 커다란 회화나무가 있는데 회화나무는 상서로운 나무라 하여 궁궐 주변에 많이 심었다.

조선시대 선비들도 이 나무를 좋아하여 마을 주변에 많이 심었기 때문에 학자나무라고도 한다.

정동 주변은 조선 중후기 학자들이 많이 살던 곳이어서 크고 오래된 회화나무가 많다.

돈덕전이 들어서기 전부터 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 회화나무는 1670년경 식재된 것으로 추정된다.

 

 

돈덕전 내부로 들어가 구경하며 거울에 내 모습 ㅎ

 

 

대한제국에서 대한민국으로..

 

 

진관사 태극기 복제품

 

 

이범진은 한국 국권이 피탈된 지 세 달 후인 1910년 11월 28일 경성청년회에 지원금과 한 통의 편지를 부쳤다.

"한국이 패망해도 구미 열강은 도와줄 생각 없이 방관하고 있다..

일본에 복수하고 나라를 되찾을 가장 시급한 방책은 청년교유이다 "

 

 

대한제국기 고종이 사용했던 어새로 러시아. 프랑스 등 각국 원수들에게 보낸 친서와 특사들에게 발급한 위임장 등에 사용하였다.  사각형의 인판에 거북 모양의 손잡익 있고 명주실로 된 끈을 달아서 전통적이 어보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이 족자는 화가 양기훈이 그린 혈죽도로 대한제국에 대한 민영환의 충절을 대나무에 빗대어 표현하였다.  족자의 상단 오른쪽에 '대한제국 광무9년(1905년11월30일) 충정 민영환이 순국하였고 1906년 7월 4일에 그가 숙국할 당시에 입었던 피 묻은 옷과 칼을 모셔 둔 마루방에서 유족이 네 줄기의 푸른 대나무가 자란 것을 발견했다'라는 문구가 있다.

 

 

열강의 세력 싸움에서 자그마한 대한민국이 이렇게 살아 남아 작은고추의 저력을 발휘하며 경제대국으로 발전하고 있는 모습이 얼마나 대견한가 !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해시계 모습인데 현재 시간 1시23분이었는데 그림자가 1과2 사이에 있는것으로 보아 정확하다.

 

 

중화전

고종은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한 후 황제국의 위상에 맞게 덕수궁을 정비하였다.  정전인 종화전 기단의 답도에는 용 문양을 새기고 창호를 황금색으로 칠하여 황제국의 위용을 갖추었다.  중화전은 1902년 지었을 때 중층이었지만 1904년 화재를 겪고 1905년 다시 지으면서 단층으로 축소되었다.  중화전 남쪽 중화문을 둘러싸고 사방에 행각을 둘렀는데 일제 강점기 이후 주변 행각과 전각이 헐리고 정원이 생기면서 현재와 같은 모습이 되었다.

 

 

수문장 교대식이 있었던것 같은데 지났는지 교대식은 안하고 수문장만 대한문을 지키고 있다.

서울 왕궁수문장 교대의식 시간을 알아보았다.

매주 월요일을 제외하고 연중 상설로 진행되고 교대의식은 11:00 /14:00 1일 2회이며

수위의식은 10:00~15:40 (12:00~13:00 휴식)

 

 

< 덕수궁 돌담길을 쓸쓸히 나홀로 >

정동교회

 

구 신아일보 별관

 

 

이화학당 사주문

 

이화백주년 기념관

 

 

창덕여중

 

 

캐나다 대사관 앞을 지키는 수령 500년이 넘는 회화나무

 

 

경교장 (현 삼성병원 응급실이 붙어 있음)

 

 

 

< 서울100년 시간여행 놀이터 돈의문 박물관마을 >

돈의문박물관마을의 새로운 소식과 다양한 프로그램 등 마을 이용 관련 정보를 전달하는 종합안내센터

 

 

한옥체험관 체험  프로그램시설로 멋진 한옥에서 만나는 예술가들과 함께하는 한국 문화 체험을 할 수 있다.

이곳은 수공예품과 굿즈를 판매하는데 사람이 없다.  

 

 

조선시대부터 현재까지 돈의문 일대의 역사와 문화를 비롯해 도시재생을 통해 돈의문박물관 마을로 재탄생한 새문안동네의 과거 모습과 사람들의 기억을 다양한 형태로 전시했다.

 

 

1919년 3.1만세운동 장면을 사진으로 담아 해외에 알린 민족대표 34인 프랭크 스코필드 박사 기념관

 

 

서대문여관이라는 이름으로 운영하던 여관의 외관과 내부 구조를 살려 새롭게 조성한 상설 전시관

 

 

그 시절 다방의 정취를 느끼며 휴식과 추억의 DJ 프로그램을 경험 할 수 있는 공간

화~일요일 10:00~18:00.  DJ운영 매주 토요일 12:00~15:00

 

 

우리 영화 한 편 어때요?

1960~80년대 영화관을 재해석해 1층에선 한국 영화의 역사와 실제 필름을 전시, 2층에선 그 시절 추억의 영화를 상영

 

 

에티크한 분위기의 영수증 사진기를 통해 특별한 추억을 남길 수 있는 사진관 내부에 포토리움스튜디오 위치

 

 

삼거리이용원

아빠는 어릴 때 여기서 머리 했었다 !  단정한 우리네 아버지의 스타일 전문 숍이던 옛 이발소

 

 

 

 

 

 

< 경희궁 >

흥화문은 경희궁의 정문이다.  원래 경희궁으로 들어가는 문은 5개로 정문인 흥화문 외에도 동쪽에 흥원문, 서쪽에 승의문, 남쪽에 개양문, 북쪽에는 무덕문이 있었다.  창건 당시 경희궁은 창경궁의 제도를 따라서 규모를 작게 하여 정문도 단층으로 세웠다.

경희궁 근처 얕은 고개를 야주개라 하였는데 이는 흥화문의 현판 글씨가 명필이라 밤에도 빛나 그 광채가 고개까지 훤하게 비추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흥화문은 원래 지금의 구세군회관 빌딩 자리에서 동쪽인 종로를 향하게 지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들어 1915년에 도로가

확장됨에 따라 홍화문은 원래 위치에서 약간 뒤로 옮겨지면서 문의 방향도 도로와 나란하게 남향으로 바뀌었다.

1932년에는 이토 히로부미를 위한 사찰인 박문사로 옮겨 정문으로 사용하였다.  광복 이후 박문사 터에 차례로 들어선 영빈관과 신라호텔의 정문으로 쓰다가 1988년에 옛 개양문이 있던 지그의 자리로 옮기면서 궁궐 정문으로서의 역사성을 되살리고자 하였다.

 

 

숭정문(崇政門)

 

 

숭정전은 경의궁의 정전이다.  경희궁 창건 당시에 건립되었다.  국왕이 신하들과 조회하거나 궁중 연회 등 공식 행사가 이루어졌다.  특히 경종, 정조, 헌종 세 임금의 즉위식이 이곳 숭정전에서 거행되었다.  

현 위치의 숭정전은 복원한 건물이고 원래 숭정전은 동국대학교 정각원으로 쓰이고 있다.

일제가 경희궁을 훼손하면서 1926년 숭정전 건물을 일본인 사찰에 팔았는데 현재 동국대학교 정각원이다.

 

 

숭정전 내부

 

 

자정전과 태령전이 있는데 지금 공사중이라 출입금지인듯 하다.

 

 

숭정전을 나와 뒤로 돌아 가니 이런 아담한 공원이 있다.

 

 

뒤에서 바라보는 자정전의 모습이다.

자정전은 경희궁의 편전이다.  국왕이 신하들과 회의하거나 경연을 여는 등 공무를 수행하던 곳이다.  숙종이 승하여였을 때 빈전으로 사용되었으며 선왕의 어진이나 위패를 임시로 보관하기도 하였다.  현재 건물은 복원한 것이다.

자정전에서 영화 사도와 KBS드라마 장희빈에 내부가 나오기도 했다고 한다.

 

 

공원 끝으로 오니 인왕산이 보인다.

 

 

공원에서 다시 궁으로 돌아 나오는데 태령전이 보인다.

 

 

태령전은 본래 특별한 용도가 정해져 있지 않았던 건물이다.

1744년 영조 어진이 완성되자 태령전을 중수하여 그곳에 보관하였다.  

 

 

전차 381호

이 전차는 1930년경부터 1968년 11월까지 약 38년간 서울 시내를 운행하였다.  서울에서 전차운행이 처음 시작된 날은 대한제국 광무 3년인 1899년 5월 17일이었으며 운행구간은 서대문에서 청량리까지였다.

이후 전차는 1960년대 초반까지 서울시민의 대표적인 교통수단이었다.  그러나 1960년대 중반이후 버스와 자동차 운행에 오히려 방해가 되자 서울시에서는 1968년 11월 전차운행을 일제히 중단하였다.

이 전차는 서울에 마지막 남은 2대의 전차 가운데 하나다.  2007년 12월에 서울역사박물관으로 옮겨온 후 1년간의 보존처리 과정을 거쳐서 전시하고 있다.

 

 

가운데 은신군신도비는 정조가 직접 글을 짓고 손수 글씨를 써서 세웠다고..

 

 

서울역사기념관

 

 

광화문역에 도착했다.  다른 궁도 가보려고 했는데 어슬렁 돌아다니는것이 산에 가는것 보다 더 피곤하다. ㅎ

힘들어서 그만 집으로 귀가 한다.